가사, 육아, 간병, 통역, 감정노동하는 ‘영케어러’ 수면위로초고령 저출생 사회, 돌봄의 공공성 확보 시급최근 일본에서는 ‘영케어러’(Young Carer)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정부와 지자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케어러 관련 공무원 연수 등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지자체에서 현황 파악도 충분하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 사회와 지역에서는 어떠한 지원이 필요할까. ‘일본케어러연맹’ 이사이자 사회복지사인 나카지마 케이코(中嶋圭子) 씨에게 들었다.
일본은 지금, 2024년까지 영케어러 인지도 향상 집중주력기간
일본 법률에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른이 책임져야 할 가사노동이나 가족 돌봄, 감정적인 서포트 등을 수행하는 18세 미만을 이른다.
2020년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학교 중 ‘(학교에) 영케어러가 있다’고 답한 학교의 비율은 중학교가 46.6%, 전일제 고등학교(평일 주간에 수업하는 학교)가 49.8%, 정시제 고등학교(야간, 혹은 특별한 시간이나 시기에 수업을 하는 고등학교)가 70.4%, 통신제 고등학교(방송통신 고등학교)가 60.0%였다.
또한,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족 중에 당신이 돌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있다’고 대답한 학생의 비율이 중학생에서는 5.7%, 고등학생에서는 4.1%였다. 2021년도의 초등학교 6학년과 대학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이 6.5%, 대학생이 6.2%의 결과를 보였다.
‘영케어러’라는 말이 확산되어 그 존재가 주목을 받고, 지원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케어를 맡는 아동/청소년들은 외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곤경에 빠져 있거나, 본인의 성장과 교육에 영향이 생길 가능성이 있지만, 가족 안의 일이기 때문에 그간 영케어러 문제는 표면화되기 어려웠다.
최근 일본 정부는 실태조사를 하고 지원체제를 갖추기 위한 시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을 영케어러 인지도 향상을 위한 ‘집중주력기간’으로 정했다. 지원체제 강화 사업으로 각 광역, 기초지자체에 실태조사·연수 및 코디네이터 배치, 상담온라인살롱 등을 운영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하기로 했다. ‘집중주력기간’ 첫해를 보내며 영케어러 문제가 언론 등에 자주 언급되어 인지도는 높아졌다.
‘일본케어러연맹’에서는 영케어러를 포함한 모든 케어러(돌봄자)를 지원하고 국가나 지자체에 관련 정책를 요구해왔다. 현재 전국 지자체와 사회복지협의회,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영케어러에 관한 강사 의뢰와 문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케어러연맹 이사인 나카시마 케이코(中嶋圭子) 씨는 “영케어러라는 말만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올바른 이해를 요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선 알아줬으면 하는 점은, 영케어러는 다양한 케어러 중 일부로, 기본적으로는 전 세대 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나카시마 이사는 강조한다. “그 중에서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청소년은 교육을 받을 권리도 있고, 어린이/청소년 고유의 니즈(needs)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또한, 일부 언론 등에서 “영케어러에 대해 과잉반응을 하며 ‘비참한 가정환경에 있는 아동’이라는 식으로 쓰거나, 어린이는 피해자이며 가족 안에서 케어를 맡는 것이 나쁜 일인 것처럼 표현하는 경우”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가족 안에서 서로 도움이 필요해 케어를 맡고있는 것이기에, 어린이가 하는 케어를 전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가 케어를 못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지원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영케어러라는 말에서 18세 이상의 ‘청년 케어러’에 대한 지원이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카지마 씨는 말한다.
“18세가 된다고 더이상 지원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영케어러부터 시작되는 빈틈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 케어러에게도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다. 간신히 구한 직장에서, 돌봄이 필요한 부모님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휴가를 내자 ‘대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며 해고당한 청년 케어러도 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진학이나 취업, 커리어, 결혼 등 자신의 장래에 대한 선택을 체념하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서포트가 필요하다.”
남성들의 돌봄도 늘었지만, 젠더 격차는 여전…
영케어러는 학교에 지각하거나 조퇴가 잦은 경향이 있어 동아리 활동이나 친구들과의 시간에 끼지 못하고 공부할 시간도 없지만,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케어 부담의 정도와 초-중-고 성장단계에 따라서도 각자의 고민과 과제는 다르다.
나카지마 씨는 고등학생 대상 조사에서 영케어러의 비율과 부담에 있어 전일제와 정시제, 통신제 학교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자신이 케어를 하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거나, 케어러라는 자각이 있어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담하기 어려워 하는 영케어러들도 있다. 이들을 지원하려면 무엇보다 영케어러를 ‘조기 발견·인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학교, 복지, 의료, 지역 등의 현장에서 영케어러를 알고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과 가장 가까운 학교에서의 노력은 필수적”이라고 나카지마 씨는 말한다.
“교직원용 리플렛을 배포하기도 하고, 영케어러 지원을 위한 보조금도 지급되기 시작해 지원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 지자체도 서서히지만 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에 케어러 지원의 자원은 아직 부족하며, 케어러 전문가도 ‘광역지자체당 몇 명’ 정도로 굉장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영케어러 출신인 당사자들도 영케어러 상담조직이나 지원단체 등을 설립해 애쓰고 있지만, “사회적인 지원과 자원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학습 지원과 심리적 케어, 가족지원 관점에서 영케어러 본인을 포함한 의료·복지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으로 당사자를 연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일본 역시 초고령·저출생 사회로, 누구나 돌봄을 하거나 받는 시대가 되었다.
나카지마 씨는 “가족 관계나 고용형태 등에서 사회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는데 돌봄 정책은 ‘쇼와시대’ 그대로, 3세대 동거(대가족)나 가족에게는 스스로를 돌볼 만한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케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가족 안에서 이를 뒷받침할 사람은 줄어 어린이나 젊은이까지 케어 역할을 맡아야 하고,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케어러가 된다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성에 의한 돌봄도 늘었지만, 최근 조사에서도 아직 전체의 35%이다.
“젠더 관점에서 말하면, ‘며느리의 돌봄’은 급감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신의 부모나 형제를 돌보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비혼이나 외동의 싱글 돌봄도 크게 늘어났다. 돌봄 동반자살·돌봄 살인의 가해자나 돌봄 자살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숫자가 나와 있다. 남성은 돌봄에 직면하면 당황하고 회피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야기이다. 젠더 격차가 심한 일본에서 돌봄은 여전히 여성이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돌봄이 정치적인 의제가 되기 어렵다. 남성에 의한 돌봄이 더욱 늘어나면 돌봄이 사회화되고 제도가 움직일지도 모르겠지만…”
초고령 사회, 사회적 노동으로서의 돌봄
초고령 사회인 일본은 사이타마현 등 ‘케어러 지원조례’를 제정하는 지자체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2022년 10월 현재 13개 지자체), 법률은 아직 없다. 나카지마 씨는 “일본에도 포괄적인 법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이타마현은 케어러연맹을 비롯한 시민단체 활동과 당사자가 목소리를 높여 ‘케어러 지원조례’를 2020년 제정했다. 그 효과로, 다양한 곳과 연계하여 케어러를 지원하는 구조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용 핸드북이 학교에 배포되고, 상담창구와 당사자였던 사람이 상담을 맡는 LINE상담창구 개설 등 세세한 대응을 한다. 한편, 고베시에서는 2018년에 20대의 직장에 다니는 케어러가 인지증의 조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고립된 영·청년 케어러 문제’가 드러나면서 지원이 시작되었다. 상담·지원창구를 개설하고 ‘어린이·청년 케어러 세대’에 헬퍼 파견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케어러 지원 법률이 있다. 독일에서는 돌봄 휴직에 수당이 지급되고, 돌봄노동을 하다가 허리통증이나 우울증 등의 질병이 발병한 경우나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산재가 적용된다.”
나카지마 씨는 또한 “가사·육아·돌봄은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개인이 직면한 방식이 다르고, 돌봄은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아니다. 국가는 돌봄·의료 비용을 줄이려고 ‘익숙한 지역·가정에서’라는 슬로건 하에 재택화, 지역이행, 조기퇴원을 권하고 있다. 이 슬로건에는 좋은 면도 있을 수 있지만, 케어하는 가족에 대한 지원이 없는 상태라면 모두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일본케어러연맹은 “영케어러에 대해서는 어린이의 권리조약과 교육기본법, 아동복지법 등에 근거하여 심신의 건강한 성장·발달을 꾀할 수 있도록, 맡고 있는 케어의 양과 책임을 줄여주고, 사회 전체가 가족 전체에 대해 지원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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