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각 분야에서 미투 운동을 해온 이들이 ‘변화의 순간’에 초점 맞추어 그 성과를 공유하고, 남겨진 과제를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아영과 나는 2018년 11월 13일, 라운드테이블 〈애프터미투 : 캠퍼스에서 마주한 벽〉(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그 포럼에는 부산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청주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의 미투 활동가 및 지지자들이 모여 있었다. 아영은 ‘동덕여자대학교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나는 ‘성폭력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모임’에서 활동하며 학교를 상대로 성폭력 전수조사 및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싸우고 있었다. 각 학교의 상황들을 간단히 공유하고 헤어졌던 그 포럼에서, 나는 이 사람들이 더 지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영과 나는 가끔 마주쳤다. 거리에서, 지하철 역에서, “저...”라고 말을 건네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고, 헤어졌다. 시간이 흘러, SNS를 통해 동덕여대 비대위에서 변호사 선임비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보고 ‘성폭력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모임’의 이름으로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2022년. 더 이상 사람들이 미투 이후의 변화에 대해 내게 묻지 않을 즈음, 나는 내년(2023년)이 연극계 #METOO 이후 5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변화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2018년 포럼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너무나 묻고 싶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유명 연예인이었던 가해자는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사망했다. 그리고 미투 활동가들에 대한 지독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SNS 계정에 찾아와 비난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 ‘너희가 죽였다’는 말. 책임지지 않은 가해자가 미웠지만, 고인이 되어버렸다는 충격에 미워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스승이기도 했다. 허망함과 비합리적인 죄책감, 2차 피해로 인한 상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무작정 찾아간 곳이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었다. 월요일마다 자조모임 형식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상황을 공유했고, 많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주고자 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노력으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통해 대학 측에 전수조사 및 진상규명 요청을 할 수 있었다. 그때 피해자 상담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이산이었다.
나는 애프터 미투의 세계로 건너가는 도중 모두의 시간과 마음을 받아 왔다. 그러니 <애프터 미투>를 사람들에게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GV를 준비하며 마침 서울여성독립영화제에서 강유가람 감독님의 〈우리는 매일매일〉(2019, 1990년대 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펼친 ‘영페미니스트’였던 감독이 40대에 접어든 그때의 동료들을 찾아가는 내용)과 변규리 감독님의 〈너에게 가는 길〉(2021, 소방공무원 나비와 항공승무원 비비안이 자식의 커밍아웃 이후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을 하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내용)을 상영하고 GV를 진행한다고 하여, 극장을 찾았다.
거기서 아영을 다시 만났다. 아영은 GV를 진행하고 있었고, 한껏 경직되고 피곤의 기운을 숨길 수 없었던 몇년 전보다 생기 있어 보였다. 나는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우리가 잘 지내왔구나 하는 일종의 확신, 혹은 그것이 주는 위안, 각기 다른 사건과 시간을 걸어온 이들이 몇 번이고 마주치며 확인하는 연대감, 같은 것이었다. 아영에게 고마웠고, 나에게 고마웠다. 우리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분명 어떤 시간들을 함께 지나왔다.
연극계에서 감지되는 제도적, 문화적 변화
연극계 #METOO 이후 5년. 수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변했고, 내 주변이 변화했다. 가끔 ‘나만 변한 것 같고, 내 주변만 바뀐 것 같은데..’ 하는 자괴감이 들어올 때도 있는데, 나는 이것을 좀 더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내가 변했고, 내 주변이 변화한 것이 자랑스럽다. 비단 성폭력 이슈에 대한 국한된 변화가 아니다. 주변에 더 많은 퀴어들이 보이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지지하는 동료들이 많아지고, 접근성 공연(한글자막해설, 음성해설, 수어통역 등)을 시도하는 공연들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미투는 전반적인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되었고, 국공립극장에서 공연을 할 시에는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이 필수 의무 사항이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준계약서에 성희롱‧성폭력 관련 항목에 추가되었을 뿐아니라, 지원사업을 수행할 시에도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서약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다. 대표자가 가해자일 경우 선정 자체가 취소될 수 있고, 참여자 중 가해자가 있다면 섭외를 재고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가 강조되고 있고, 서울문화재단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 선정 시 사건을 신고 및 상담할 수 있는 통로를 안내받는다.
올해 초, 연극계 미투 이후 5년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중점으로 신윤지 배우(연극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달콤한 노래〉, 〈툭〉 등 출연)와 배선희 배우(연극 〈결투〉, 〈2022 코미디캠프 : 파워게임〉, 〈제 1강 : 거절하는 방법〉 등 출연)를 인터뷰 한 바 있다. 대본이나 페이를 사전에 공유해주는 기본적이고도 전반적인 환경의 변화, 텍스트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와 관객들의 시선의 변화, 그리고 연습실 내부에서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자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퀴어예술잡지 them 3호에 [변화를 기록하기 : 연극계 #METOO 이후 5년, 일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기고되었다.)
나와 내 주변의 변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변화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극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5년간 창작자들은 끝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요구받았다. 변화는 마법같이 일어나지 않았다. 투쟁했고, 쟁취했다. 그 강력한 추동과 분노, 상처와 우울, 각자의 피해자성과 고립감이 몇 번이고 연대와 연결, 그리고 개인들을 흔들었다. 너무 많이 지쳤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다시 소리치며 요구해야 했고, 누군가는 무엇이 되었든 중단해야 했다.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다울 수 없었다. 지지부진했고 원활하지도 않았다. 외부의 반작용에 대응하면서도 동료들과 애증, 공포, 우울, 분노, 방법의 차이들을 나누며 아주 낯설고도 거친 길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결코 아름답지도, 기분 좋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던 그 모든 순간, 에 함께 흔들렸기에 이룩해낸 변화들이 있다.
이제는 조금씩 스쳐 지나갔거나 비껴가서 다른 길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위로 어떤 방식으로든 겹쳐 서 있고, 그래서 어떤 행사나 모임에 가면 다시금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아영과 다르지만 같은 사람들. 이처럼 아주 폭넓게 연결되어있는 사람들, 가까이 있진 않지만 분명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고 있지만 결코 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주는 사람들.
나는 미투운동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웠다. 연대와 애정이 꼭 말을 건네거나 살을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주 폭넓은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수 있다는 것. 함께했던 모든 순간과 함께하지 않을 모든 순간에 잘 지내기를 바랄 수 있다는 거대한 연결을 배웠다.
언제든 도망쳐도 좋으니, 덜 지치기를 바란다. 다른 길 위에서 투쟁하고 있을, 그럼으로 연결되어 있을 당신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변화는 끝나지 않았다.
[글쓴이] 강윤지. 극단 Y에서 〈344명의 썅년들〉 <퍽킹젠더〉 〈제 1강 : 거절하는 방법〉 등을 쓰고 연출했다. 올해 9월 8일~1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 〈오르막길의 평화맨션〉에서 넓은 단위의 연대와 연결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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