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에 시달리며, 선풍기나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런 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기도 어렵고, 혼자선 집 계약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보호’라는 명목 아래, 나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도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난 2월, 창립 파티를 통해 활동 시작을 알린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은 사실 당연한 권리여야 함에도 아직 낯선 ‘청소년 주거권’ 운동을 하는 곳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편안하며 적절한 환경이 갖춰진 주거가 필요하다, 그 ‘모두’에 청소년도 포함된다는 말을 전하고자 활동에 박차를 가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이하 청주넷)의 두 활동가, 미혜와 쏭쏭을 온라인 줌으로 만났다.
미혜: 청소년들 상담하고 지원하는 곳에서 일하다가 2011년, 들꽃청소년세상을 알게 되면서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엑시트)’라는 이름으로 거리의 청소년들을 만나는 아웃리치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청소년복지시설, 쉼터에서 살기 어렵거나 거기서 살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랑 거리에서 만나다 보니까, 그들이 마주하는 위험한 상황들도 접하게 됐고요.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뛰어다녔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더라고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 자리 잡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아동·청소년은 가족이 돌봐야 한다’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걸 보면서 화도 났고요. 처음 이 일 할 때만 해도 청소년 지원을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누구 한 명을 지원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건 사회 문제다,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쏭쏭: ‘청소년자립팸 이상한 나라’(들꽃청소년세상이 운영한 ‘엑시트’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여성청소년들의 대안적 주거공간)에서 일했는데, 지원 현장에서 개인들을 지원하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결국 제도와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청소년은 소수죠. 거기다 지금의 지원 환경이 그들의 실제 삶과 너무 다르게 만들어져 있어서, 제대로 지원되지도 않고요. 어떤 지원을 더 늘리는 게 아니라,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엑시트와 자립팸 사업이 종료되는 걸 보면서, 청소년 주거권에 대해 이제 막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사라지는 건 안 된다, 청소년들의 삶을 함께 지켜본 사람으로서 뭐라도 해야겠다, 침묵하지 말아야겠다 결심했죠.
미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지원 현장의 활동가들의 관점이나 태도가 너무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청소년을 지원하는 복지가 ‘권리’로서 지원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뭉치기 시작했어요. 일종의 연대체처럼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청소년 주거권’이라는 이야기가 모아진 거죠. 주거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의 자립을 이야기할 수 없더라고요.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고, 청소년 인권운동 단체, 법률 활동가 단체 등을 초대하면서 시작됐어요. 지금은 17개 단체가 함께하고, 청소년 당사자 등을 비롯한 개인 활동가들도 같이 하고 있어요.
쏭쏭: 흔히 ‘가출’했다고 하는 경우,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존엄과 자유. 그걸 찾기 위해서 집을 나오게 된다는 거죠. 집에선 인간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탈출한 거에요. 그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가족과의 갈등이고요.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1년 위기청소년 실태조사〉에서도, ‘집을 나오게 된 이유’(복수응답)에서 가장 높게 나온 게 ‘가족과의 갈등’(69.5%)이에요. 그 다음이 ‘자유롭게 살거나 놀고 싶어서’(44.3%)인데, 사실 이것도 이들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보면 가족과의 갈등을 경험한 일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보호대상아동’이라고 하죠. 아동 양육 시설에서 지내는 아동·청소년인데, 사실 이들과 가정 밖 청소년들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보호대상아동’이 되는 경우의 많은 부분이, 가족 중에 이 아동·청소년을 보살필 적절한 양육자가 없거나, 학대나 방임을 겪는 경우에요. 이게 발견이 되면 보호대상아동이 되는 거고, 그렇지 않거나 그 아동·청소년 스스로 집을 탈출하면, 흔히 말해 ‘가출 청소년’이 되는 거에요. 이런 상황임에도 사회가 자꾸 이들을 구분 짓는 것도 문제라고 봐요.
미혜: 꼭 물리적인 폭력이 있어야만 폭력이고, 학대인가 하는 문제도 있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같은 경우, 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정해서 겪는 고통이 있거든요. 남들이 보기엔 심각한 폭력이 없어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사자가 겪은 고통과 상처는 엄청 크죠. 그 고통을 버틸 수 없어서 집을 나오게 되는 거에요.
-그렇게 집을 잃은 청소년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어떤 게 있나요?
쏭쏭: 일단, 그게 과연 ‘선택’인가? 질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건 청소년 쉼터인데, 쉼터에 가지 않거나 못 가는 일들도 있어서 청소년 홈리스가 생각보다 많아요. 홈리스하면 다들 중장년을 생각하지만, 현실엔 청소년 홈리스도 있다는 것. 그리고 친구, 지인 집을 많이 가죠. 근데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니까 오래 있진 못하고요. 그나마 돈을 조금 가지고 있으면, 고시원 혹은 피씨방, 찜질방 등. 가출팸을 꾸리는 경우도 있어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이 있다 보니 나름의 경제 공동체를 꾸리는 거죠. 이제 성년이 된 사람이 월세 계약하고 돈을 나눠서 내는 등의 방식으로.
근데 단지 집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일을 구하는 것도, 통장을 개설하는 것도 다 쉽지 않고. 학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많죠. 주거가 불안정하니까 뭐든 꾸준히 할 수가 없죠. 사회적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집을 찾아 옮겨 다니느라 관계망이 계속 단절되고, 그렇다 보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요.
최근에 문제가 되는 건,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에요. 본인들을 ‘헬퍼’(Helper)라고 하는데, 사실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죠. 1:1로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팸처럼 여럿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해요. 근데 이들의 대부분이 성인 남성이고, 주로 여성 청소년에게 잘 곳을 제공해 준다고 해요. 여러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죠. 성착취부터 명의 도용 등.
-그런 사람들을 신고하거나 저지하기도 어렵잖아요. 어떤 범죄 행위가 발각되었을 때라야 가능한 거죠?
쏭쏭: 그쵸. 호의로 집을 제공해줬다는 걸로 신고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청소년 성착취에 대응하는 단체에서도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긴 한데,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긴 하죠. 이런 점만 봐도, 청소년에게 안전한 집이 정말 필요하다는 거에요.
쏭쏭: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청소년들이 가족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쉼터에 가면 72시간까지만 친권자한테 연락 없이 보호할 수 있고, 그 이후론 무조건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쉼터에 갔다가 그런 일을 겪고 집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게 되면, 다신 쉼터에 안 가죠.
미혜: 72시간도 못 미치는 곳들도 많아요. 민법의 거소지정권 때문에, 미성년자가 집 아닌 곳에서 지낼 경우 친권자가 동의해야 하거든요. 쉼터에 있다가 다시 집으로 끌려가는 경우, 심지어 폭력적으로 끌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리고 쉼터는 여럿이서 지내는 공간이잖아요.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지내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갈등이 생기기 쉽고, 그런 점에서 안전하지 않기도 하죠. 규칙도 너무 많고요. 긴 시간 지낼 것도 아닌데, 온갖 개인정보를 줘야 하는 것도 문제죠.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지 등도 알려줘야 하는 곳도 있어요. 이렇다 보니, 자유와 존엄을 찾아서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쉼터에 갈 리가 없는 거죠. 쉼터가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상, 집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설사 잘 지내게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에요.
-역시 모두에게 주거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재차 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직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서’라는 말이 따라나오는 것 같아요. 청소년 주거권 운동을 하면서 가장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쏭쏭: 지금의 구조는 개인의 존엄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게 아닌 것 같아요. 제도를 집행하는 사람들 편하게 만든 거 같거든요. 집행하기 쉽고, 통제하기 쉽게.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집 계약을 할 수 없는데, 그걸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면, 청소년인데 쉽게 사기 당하면 어떻게 하냐, 명의도용 당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요. 그런 게 걱정되면 그런 일이 안 생길 수 있도록 보호망을 만들어야 하는 거지, 그 권리를 뺏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함께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데 그냥 편한 방법, 통제하기 쉬운 방법을 택한 거죠.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인식이 변해야 하는 것도 맞는데, 제도가 바뀜으로서 인식이 변하는 것도 분명 있거든요. 청소년들과 함께 지원주택, 공공주택에 관련된 간담회를 한 적이 있는데, 한 분이 그러더라고요.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실행해 볼 때 되지 않았냐고.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이제 정말 해 봐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청소년이라서, 미성숙해서 집 계약하다 사기 당하면 어쩌냐고 한다지만, 지금 전세사기 문제가 어디 그래서 생기는 건가 싶고…
쏭쏭: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개인의 미성숙함이나 개인의 무지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결국 어떻게 모두가 안전한 사회 안전망을 만드느냐의 문제라는 거에요. 앞으로 그걸 어떻게 만들 것인지 논의하고, 또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봐요.
미혜: 맞아요. 지금도 여러 개의 단톡방이 있죠.(웃음) 일단 주거권 운동하는 단체들과 함께 하는 게 있죠. 작년 정부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 엄청 줄였을 때도 함께 시위했고요. 거리에서 사는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와 관련해선 여성운동 단체들과 함께 하고,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돈 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권 운동과도 함께하죠. 성소수자인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거든요. 성별 이분법적인 쉼터의 문제라든지, 종교 단체들이 운영하는 쉼터가 성소수자를 대하는 문제도 있고요. 그에 대응하기 위해 성소수자 단체와도 함께하고요.
청소년이라고 하면 뭔가 사회에서 좀 떨어진, 그리고 비청소년과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주거권 또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청소년 주거권이 어떻게 취급 당하는지는 결국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청소년 주거권’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목소리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말해주신 것 같네요.
미혜: 결국 이 사회는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내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라는 거죠. 또 당사자만 운동을 해야 한다면, 사실 이 운동은 좀 힘들어요. 탈가정 청소년들은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 뭘 먹을 수 있나, 돈은 어디서 벌어야 하나 등 하루하루 고민하는 것만으도로 벅차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우리 사회가 어떠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겪고 있는 건 이들만의 어려움이 아닌 우리 사회가 겪는 어려움이니,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요.
쏭쏭: 우리 사회에, 이 청소년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시민으로서, 나의 동료잖아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언제든 나의 어려움이 될 수 있다는 거에요. 사회는 결국 다 연결되어 있고, 힘을 모아야 빨리 바꿀 수 있어요.
쏭쏭: 요즘 집중하는 것 중 하나는 경기도교육원과 함께하고 있는 <2023 국가인권위원회 가정 밖 청소년의 주거권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요. 이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거든요. 주로 시설 안에 있는 청소년들의 인권상황 정도가 조사됐는데, 이번엔 시설 거주 유무를 떠나서 가정 밖 청소년들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해요. 이런 조사가 돼야 정말 청소년들의 상황에 맞는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 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청소년 주거권’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낯설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는 계속 현장에 있어서 몰랐거든요. ‘청소년 주거권’이 무엇인지 좀 더 열심히 많이 알려야겠다 싶어요. 그래서 캠페인 활동도 하고 있고, 연극 〈모두에게〉(청주넷의 2019-2023년도 청소년 수다회 기록을 통해 구성된 청소년주거권 연극. 작/연출 송김경화)도 만들었고요. 책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앞으로 계속 사람들에게 “이런 청소년들이 있고, 청소년에게 주거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볼 생각입니다.
-청소년들의 동료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미혜: 청소년 주거권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 이것이 보장되고 있지 않는 현실을 알아보는 것. 청소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나이가 어리다. 보호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통제나 당연하다’가 아니라, 어떻게 이들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 봤음 좋겠어요.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주거의 형태에 대해서도 같이 상상력을 보태 주시면 좋고요. 청주넷을 후원으로 동참해 주셔도 좋습니다.(웃음)
쏭쏭: 지금 우리 사회가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데, 그렇기에 청소년들이 살기 더 어려운 세상인 것 같아요. 서로를 환대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음 좋겠어요. 그리고 ‘자립에 필요한 게 무엇일까?’ 했을 때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 좀 그만하자고요.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 의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 주셨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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