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여자’를 무시해도 용인하는 사회〈책방에서 밑줄 긋기〉 오브리 고든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날씬함이라는 잣대
“내게 몸이란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내 몸이란 막중한 문제를 드러내는 존재 같다.” (오브리 고든 지음, 장한라 번역, 책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 9쪽)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보면, 나는 외모를 꾸미는 데 별로 관심도 없고 그것이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내 몸무게와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을 깊이 내면화하게 됐을까? 누구에게 날씬해 보이고 싶은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갖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잣대를 스스로의 몸에 들이대게 됐을까? 만약 그것이 이 사회의 집단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면, 날씬함이라는 아름다움의 틀은 우리를 얼마나, 어떻게 가두고 있는가.
“나는 뚱뚱한 여자가 사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살아오면서도, 미디어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데이트하는 동안 뚱뚱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자기주장을 똑바로 하며, 파트너에게 존중받는 뚱뚱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234쪽)
뚱뚱하다는 말의 다면적 의미
나는 성평등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자”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나 역시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외모와 살을 보며 자신에게 몰래 실망한다. 이 모순은 자괴감으로, 위선은 부끄러움으로 이어지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몇 곱절 더 크게 만든다. 답답하고 끝이 없는 자기분열을 멈추기 위해, 자꾸 의식적으로 나에게 속삭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고, 외모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게 말해주지 않는다.
얼마 전 중학교에서 성평등 수업을 하던 중, 한 학생이 “솔직히 외모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럼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도 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반문했을 때 학생들은 모두 “아니오”라 답했다. 머리로 ‘옳다’고 아는 것과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모두가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 뛰어난 외모, 날씬한 몸이 ‘자기관리’ 능력으로 인정받고 출세의 자원이 되기도 하는 사회에서, 그것을 동경하지 않고 홀로 거스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맥락을 논하지 않은 채 외치는 ‘Love yourself’나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몸 긍정주의 캠페인) 구호는 나에게 자존감을 채워주기보다, 헛헛함을 더해줄 뿐이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몸을 ‘자기애’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작가이자 활동가(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에서 ‘유어팻프렌드 @YrFatFriend’ 계정으로 소통 중) 오브리 고든은 저서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뚱뚱한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차별과 낙인, 폭력의 경험을 낱낱이 폭로하며 뚱뚱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의 시선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 책도 ‘바디 포지티브 body positive’ 캠페인의 대중화가 간과하고 실패한 부분을 지적한다. “우리가 겪는 가장 큰 난관이란 우리의 몸에 관한 내면의 해로운 생각이라는 전제”가 “몸을 거부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까지는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팻포비아 사회…체중 낙인, ‘비만 벌금’, 그리고 팻콜링
‘팻포비아’(fatphobia, 비만 또는 비만인 사람을 향한 두려움이나 혐오 또는 차별)가 만연한 사회는 고든으로 하여금 일상에서 끊임없는 무례와 조롱, 침범을 경험하게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 다이어트를 권하고,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며 장바구니 넣어둔 과일을 빼고, 거리에서 욕하거나 위협하고, 비행기 좌석을 바꿔달라며 화를 낸다. “낯선 사람이 내 몸·음식·옷·성격을 놓고 참견하는 일”에 평생 시달린 고든은 이를 ‘팻콜링’(fatcalling, 길거리 성희롱을 이르는 캣콜링 catcalling에서 따옴)이라 부르기로 한다. 팻콜링은 “뚱뚱한 사람들의 삶을 집어삼키는 끝없이 밀려드는 말·평가·명령”을 뜻하며, 고든은 “몸 때문에 표적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이토록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뚱뚱함’을 개인의 잘못이나 실패라고 보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뚱뚱한 사람을 비웃거나 무시해도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일부에서 아무리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해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뚱뚱하거나 몸집이 큰 사람을 ‘먹보’ 캐릭터로 쓰거나 그의 외모를 놀리는 것이 웃음 포인트가 되는 풍경은 여전하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날씬해진 연예인에겐 “긁지 않은 복권이었다”고 찬탄하며, 상업 광고와 방송 기회 등의 보상이 뒤따른다.
“다이어트 문화는 체중 감량이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인격을 강인하게 만들고, 사회적 특권에 접근하는 방식이라며 권위를 부여한다.” (31쪽)
고든은 동네 수영 팀에서 학생 코치로 활동할 만큼 건강했지만, 아동 비만이라는 이유로 부모에 의해 다이어트를 강요당했다. 그는 ‘살 빼기 캠프’에 참여하고, 음식 일기를 쓰고, 몸 관리를 받고, 다이어트 약까지 복용한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날씬한 몸과 건강이 아니라 체중 낙인으로 인한 상처와 망가진 신진대사였다. 고든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뚱뚱한 사람들은 불완전하다고, 음식을 두려워하고 의심해야 한다고, 내 몸은 실패작이라고, 나 같은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삶다운 삶이 절대 아니라고 가르쳤다”며 비판한다.
2000년대 미국 보건 제도의 이슈이자 국민 캠페인이 된 ‘비만과의 전쟁’은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이어트 산업의 흥행만 불러왔다. 특히 고든이 참여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한 회사 ‘웨이트워처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무료 회원권을 기획하며 큰 수익을 얻게 된다. 다이어트 상품과 약물이 건강을 해침에도 불티나게 팔리며 대기업이 몸집을 불리는 동안, 체중 낙인으로 인한 편견과 성차별은 더욱 심화되었다.
최근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남성은 몸무게에 따른 임금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과체중 여성의 급여는 다른 여성 동료에 비해 10% 낮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날씬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이 같은 ‘비만 벌금’(The penalty for an obese woman)이 여성과 소녀들을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으로 몰아넣는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아시아경제, “男 비만해도 상관없지만… 女 과체중만으로도 급여·승진 기회 적어져”. 2023년 10월 2일 보도)
심지어 “2013년 예일대학교의 연구는 동일한 범죄가 벌어졌을 때 남성들은 뚱뚱한 여성이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뚱뚱함은 실패가 아니다, 날씬함도 성취가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산업을 장악한 ‘뚱뚱한 몸에 대한 차별’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몇 년 전 ‘외모주의와 젠더’를 주제로 한 중학교에서 성평등 수업을 했을 때, 몸에 대한 평가에 맞서기 위한 아이디어를 학생들과 모아본 적이 있다. 누군가 “모든 몸은 아름답다고 하자”고 제안했는데, 다음 사람이 “우리는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어 말했다. 다른 학생들이 박수를 쳤고, 순간 뭉클함을 느꼈다.
“뚱뚱함은 실패가 아니며, 그러므로 날씬함도 성취가 아니다.” 우리의 몸은 실패가 아니며, 누구도 실패라 부를 수 없다. “인간이 존엄성을 누리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은 없”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그렇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146쪽)
[필자 소개] 달리. 에세이집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의 작가이며,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에서 프로그램과 모임을 기획한다. 지역에서 여성들과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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