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각 분야에서 미투 운동을 해온 이들이 ‘변화의 순간’에 초점 맞추어 그 성과를 공유하고, 남겨진 과제를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교회, 이토록 단단한 목회자의 세계
내가 스무 살에 다니기 시작한 교회는 당시에는 청년부흥으로 유명했지만 이후 담임목사의 성추행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그때의 나는 작은 규모의 교회에 출석한 지 1-2년 정도밖에 안 된 새내기 교인이었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사이에서 홀로 이어가는 신앙생활이 외로울 무렵, 친구가 서울에 청년사역으로 유명한 교회가 있는데 담임목사님 말씀에 ‘힘이 있으니’ 같이 가보지 않겠냐며 나를 이끌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담임목사의 설교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는 안식년 중이었다. 누구는 그가 미국에 가 있다고 하고, 누구는 지방에서 쉬고 있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무엇도 정답은 아니었다. 그는 여러 명의 청년을 성추행 했고, 그 중 한 명이 해당 사실을 밝히자 대외적으로 안식년에 들어간 상태였다. 당시에 그런 사실을 아는 평신도는 드물었던 것 같다. 교인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돌아오기를 바랐고, 설교 녹화본을 보거나 그가 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기다렸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렴풋이 그가 이 교회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담임목사의 성추행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교회 밖에서였다. 교회 사람들은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어떤 리더가 지나가듯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시기해 이단이 교회 분열을 목적으로 일부러 접근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교회 밖에서는 그가 ‘성중독 치료비’ 명목으로 교회로부터 몇 억을 받았네 말았네 말이 많았지만 교회는 잠잠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교회는 원래 이런가?’ 싶었다.
얼마 후, 면직당한 담임목사가 또 새로운 교회를 차렸고(교회를 차렸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나는 기꺼이 이 표현을 쓰겠다), 나와 알고 지내던 리더 몇 명이 그 교회로 출석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교회에서 나와 다른 교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어 ‘실망했다’고만 말했지만, 성범죄자를 따라 나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독교 내 미투 운동, 광야에서 길을 낸 이들
한국 교회는 이토록 단단한 목회자의 세계이기에,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나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종교계 내부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웠다. ‘교회 안에서의 미투 운동은 어렵지 않을까’ 하고 진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그루밍(길들이기)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성폭행 경험을 밝히고 가해자를 지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이들이 있다.
각 교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해시태그 운동도 시작되었고, 신학생들이 신학교 내 성차별과 성폭력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담당 목회자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을 유서에 남긴 신학생도 있었다. 용기를 내어 성폭력 상담소에 상담을 신청한 이들도 있었다. 아주 오래된 폭력부터 최근의 일까지,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부터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족에 의한 성폭력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용기 낸 이들의 ‘이어 말하기’를 통해 교회에서, 각 교단에서, 신학교에서 미투 운동이 이어졌다. 그리고 성폭력 없는 교회, 안전한 교단, 평등한 신학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8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주최로 “차별과 혐오 피해자를 기억하는 기도회”가 열렸고, 공개 워크숍 “하나님이 가라사대 #Me Too”(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감리교신학대학원 총여학생회, 믿는페미, 개인기획단 공동 주최), “Me Too와 기독교”(기독교윤리실천운동 주최) 강연 등이 개최되었다. 그 외에도 교회 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가이드북 『미투, 처치투, 위드유』를 발간(기독교반성폭력센터, 뉴스앤조이)하는 등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연결하고 기억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 ‘처치투 있다, 잇다’라는 팀은 교회 내 성폭력 아카이빙을 통한 온라인 전시회(churchtooiitda.quv.kr)를 진행하기도 했다.
교회 내 가부장적 문화와 성차별에 균열을 내고자 2017년 3월 만들어진 믿는페미(현재 달밤, 오스칼네 고양이, 도라희년, 새말, 폴짝 5인이 활동하고 있다)에도 미투 운동 전후로 변화가 생겼다. 미투 이전에는 교회에서 경험한 차별을 드러내고 이를 공통분모 삼아 모임의 장을 만드는데 힘썼다면, 미투 이후에는 교회 내 성폭력 관련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게 되었다. 믿는페미 활동가들도 교회의 언어로 여성폭력을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을 받은 활동가가 기독교의 언어로 강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교회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방식도, 내가 처음 교회 내 성폭력을 인지했던 2011년과는 달라졌다. 이전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이 밝혀지면, 가해자가 ‘시험에 걸려 넘어졌다’라거나 피해자가 이단이나 ‘꽃뱀’이라서 먼저 유혹했다며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일이 만연했다면, 미투 이후에는 쉽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그 사건을 중요하게 여기는 ‘척’이라도, 무언가 액션을 취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미투 운동은 교회를 불편하게 했고, 그 불편함은 끄떡없어 보이던 권력구조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이들 덕분에 성폭력 신고 및 상담 기구를 만들고, 관련 지침서와 매뉴얼을 만든 교단도 나왔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필수적으로 듣도록 하는 교단도 생겼다.
미투 운동이 지나간 듯 보이는 지금도, 교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017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범죄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3개 단체가 연대하여 시작된 ‘여성주의연합예배’는 매년 교회 내 성폭력과 회복을 주제로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함께 준비하는 연대단위도 매년 늘어 2023년에는 23개 단체가 함께했다. 예배를 통해 함께 비통해하고, 분노하고, 또 회복하는 경험과 이야기가 우리 안에 쌓여간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를 포함한 기독교 내 반성폭력 운동 단체들도 꾸준히 상담 및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교회 내 여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 벽은 견고하고, 교회문화 속에도 여성혐오가 만연하다. 각 교단 내 여성위원회나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독 여성주의 운동단체들은 교단 별로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여러 해에 걸쳐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고 있고,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 교단도 드물다. 성폭력을 저지른 신학교 교수나 목회자를 해임하라고 시위하면, 해당 목회자를 따르는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은 죄가 없다’며 막아선다. 성폭력으로 형을 받은 범죄자조차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목회를 이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교단 중 1년에 한 번, 혹은 2년에 한 번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하는 곳들이 있지만, 성폭력 예방 강의나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면서도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 이름만 걸어두고 성폭력과 관련된 실질적인 교육을 하지 않는 교회와 교단도 있다. 한 교단에서는 성폭력예방지침서를 만들어 두고는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모두 ‘성 윤리’라고 바꾸어 썼다.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부르지 않는 성폭력예방지침서, 그리고 성소수자와 장애인 같이 차별 받는 이들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 매뉴얼이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계 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고 싶어 한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진 성경 속 사람들처럼,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여자들에게,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돌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종교 집단 내 성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은 피해자들을 향해 쉽게 ‘왜 빠져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특히 ‘이단’과 관련된 자극적인 보도에는 늘 같은 꼬리표가 붙는다. 피해자의 외모나 구체적인 폭력의 내용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가해자에게도 화가 나지만 피해자에게도 화가 난다. ‘멀쩡한’ 사람이 왜 그런 종교에 빠졌는지, 왜 그것이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의아해한다. 사실상 ‘당할 만해서 당했다’거나, ‘피하지 않았으니 즐긴 것 아니냐’는 기존의 여성혐오 통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이가 누구인가, 사회적 약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복음 8장 7절, 새번역)
예수의 가르침이 말하듯, 우리 중 누구도 이 질문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매들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 말하기’
교회 내 성폭력을 떠올렸을 때 ‘왜 우리의 말하기는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연결된 실선이기를, 이왕이면 굵은 실선이라서 모두가 우리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여성폭력을 고발하고 저항하고 근절해서 교회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기를, 그래서 어떤 여성폭력도 우리의 삶과 신앙에 스미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어쩐지 계속 분절되는 것 같고, 그래서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았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할 때, 우리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타자화되는 것 같을 때, 나는 자꾸 우리의 운동을 의심했다.
그래서 미투 운동을 다시 기억에서 꺼내어 불러오는 것이 어려웠다. 힘껏 움켜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모래알이 몇 알만 붙어있는 마른 손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투 이후에 변한 게 없지 않아?’하고 말을 던져 놓고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정말 없었나? 우리의 운동은 의미가 없었나? 그동안의 변화로는 충분하지 않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면 우리의 운동은 쓸모 없어지나?
이런 질문의 끝에 명쾌한 답은 없다. 여전한 현실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분절되어 보였던 우리의 운동은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교회 내 성폭력 말하기와 반성폭력 운동의 흐름 안에서 흘러왔다. 처음 믿는페미 활동을 시작할 때는 알아보지 못했던 동료들의 이름과 얼굴을 지금은 더 많이 떠올릴 수 있다. 그렇기에 말하기를, 누군가의 ‘말하기’를 응원하기를 멈출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중략)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덜진 겁니다. 소 선생님이 던질 수 없었던 거리까지.” (정세랑, 『피프티 피플』 380쪽)
여성폭력을 근절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운동은 ‘돌을 멀리 던지는 것’이라고 되뇐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던지던 돌의 방향을 바꿔서 앞으로, 앞으로 던지는 일이라고. 그 돌이 멀리 던져지지 않는 것 같거나, 어떤 사람이 돌을 도로 뒤로 던져서 우리의 노력을 무너뜨리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살펴보면 분명 그 돌은 우리가 던질 수 없었던 곳까지 가 닿아있으리라 믿어본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 동료들은 있는 힘을 다해 돌을 앞으로 던진다.
[필자 소개] 폴짝. 2018년부터 믿는페미 활동가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성평등 없이는 하나님 나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삶과 자주 불화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삶을, 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페미니즘과 요가를 통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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