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흉기난동’…왜 누군가의 울분만 폭력이 되는가

젠더 관점에서 본 ‘흉기난동’과 치안, 그리고 안전을 위한 모색

박주연 | 기사입력 2023/11/03 [13:10]

잇단 '흉기난동’…왜 누군가의 울분만 폭력이 되는가

젠더 관점에서 본 ‘흉기난동’과 치안, 그리고 안전을 위한 모색

박주연 | 입력 : 2023/11/03 [13:10]

지난 여름, 특정한 대상이 없이 일어나는 ‘흉기난동’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그러자 정부와 경찰은 “흉악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며,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시내에 기동대, 특공대, 장갑차까지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시민들의 안전은 보장됐을까?’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나?’ 질문이 남는다.

 

사실 여성들에게 이런 불안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비롯한 여성혐오 범죄, 직장에서의 성희롱·성폭력, 화장실 불법촬영, 디지털공간에서 불법촬영물 유통, 스토킹, 친밀한 관계 내 폭력 등. 일상에서 계속해서 ‘안전하지 않음’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가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외쳐왔지만, 그 외침은 ‘예민함’, ‘과도함’, 때론 ‘과격함’으로까지 평가됐다. 그리고 이번 여름의 일들이 벌어졌다.

 

이 사건들을 되짚어 볼 필요를 느낀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라운드테이블: 잇따른 ‘흉기난동’,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 젠더 관점으로 들여다보기〉를 열었다. 10월 26일 저녁, 서울 마포에 위치한 일터문화공간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선 시민들이 함께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무엇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 지난 10월 26일 서울 마포구의 일터문화공간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주최 〈라운드테이블: 잇따른 ‘흉기난동’,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 젠더 관점으로 들여다보기〉가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해로운 남성성과 남초 커뮤니티, 폭력의 상관관계

 

먼저, 이런 범죄가 왜 연이어 일어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왜 가해자는 남성인가? 추지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는 이를 젠더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울분’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울분은 “자기 고립에 빠져 망상을 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피해의식이나 분노를 담아내는 개념”으로, “답답하고 분한 마음이 드는데 정확히 왜 그런지 모르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사실 울분은 특별한 누군가에게 생기는 건 아니다. “누가 나를 툭 치고 갔을 때와 같은 일들이 ‘보통의’ 많은 이들에게도 생기고, 그게 쌓이면 울분이 된다.” 문제는 이 울분이 어떻게 표출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다.

 

많은 언론이 ‘흉기난동’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들이 갖고 있는 울분이 표출되었다는 식”으로 거론했다. “이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왜 이런 대응 방식이 나오는가?” 질문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추지현 교수는 “이 울분이 내적으로 쌓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우울이 되고, 심해지면 자살 시도나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외적인 표출은, 긍정적인 방향일 땐 ‘변화를 위한 목소리 내기, 혁명 등’으로 이어지지만, 부정적인 방향일 땐 혐오범죄, 자기파괴 등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등을 겪으며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쌓인 울분을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며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표출했다면, 지금의 이 ‘이상동기 범죄’들은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울분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표출한 사례라는 것이다. 추 교수는 이를 “주변부 남성성의 문제”라고 짚었다. 그렇기에 “이것(남성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남성다움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남성 주체에 있어서 자신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요인이 되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이성애 질서”라고 설명한 추지현 교수는 “여러 이유 속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기꺼이 보여줄 수 없고, 또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을 때, 남성들이 본인 스스로 남성성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 하는 최후의 수단이 폭력”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그 폭력을 행하고자 했을 때 “그 대상은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다. 물론 여성이나 약자가 대상일 때도 있지만, “싸워서 이기겠다, 내 힘을 보여주겠다는 방식으로 자신의 남성됨을 과시하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구가 중요하면, 그 대상은 중요치 않”다는 것. 결국 이 해로운 남성성은 정말 모두에게 해롭다는 거다.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라운드테이블: 잇따른 ‘흉기난동’,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젠더 관점으로 들여다보기〉 사회자와 발제자 가 테이블을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일다

 

또한 추 교수는 이번 범죄가 모방의 영향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주목해야 하는 건 범행 방법이 아니라 “소위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라 강조했다. 그곳에서 “남성들이 자신이 더 열등해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남성 그리고 여성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과시하고 보여줄 수 있는지 이야기된다”는 점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남성 집단이 그런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추지현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시민을 양성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라고 덧붙였다.

 

사회구조적 문제는 방기하고, 가해자만 격리?

 

이 범죄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장임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묻지마 범죄, 무차별 범죄라는 명명은, 폭력범죄 발생의 사회적 구조를 비가시화한다” 꼬집었다. “사실 이런 범죄의 패턴이나 원인이 없지 않음에도, 단순히 ‘묻지마, 무차별’이라 명명하는 건 이 범죄를 해석하지 않겠다,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이런 명명은 “막연하고 모호한 두려움을 강화”하는데도 한 몫한다. 그리고 “가해자 내지 잠재적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격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되고, 개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이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진다는 점도 문제”다. 덧붙여 이런 명명은 “악마 같은 가해자와 순수하고 순진한 피해자를 만들고, ‘피해자다움’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면,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사라지고, 가해자에겐 형사적 처벌을 해야 하고 피해자는 치료 받고 치유 받아야 한다.”는 것에만 머물게 된다. 장임다혜 연구위원은 이런 인식 속에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영원히 격리되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해결책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요즘 성희롱 사건들을 심의하는데 가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공동체/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있다.”

 

장임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하며,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여성들을 안전한 공간으로 ‘분리’시키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국 그 외 공간은 여성에게 위험한 공간이라는 인식과 두려움을 강화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인적인 공간으로의 분리는 “실제로 여성들이 가장 많이 겪는, 친족/애인 등에 의한 폭력 대응엔 실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임다혜 연구위원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완전한 분리 요구는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한 공간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공동체 전체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완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평등과 상호존중이 일상화되괴, 빈곤이 완화되며,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장갑차까지 대동한 치안활동이 시민을 안전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잇따른 범죄들 이후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는가? “아니오”다. 최원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정부가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즉시 검문하고 체포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래서 “범죄는 멈췄고, 우리는 안전해졌나?” 질문했다. 최 사무국장은 “내 옆에 장갑차와 무장한 경찰이 있다면, 내가 즉각 느낄 감각은 공포와 불안이지 안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안전은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살만하다는 감각, 다수의 좋은 시민들이 함께한다는 신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폭력에 더 강한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남성화된 공권력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걸 택했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내 주변의 누군가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두려움, 공공장소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을 증폭”했다. 그 불안을 해결해야하는 건 또 개인의 몫, “각자도생으로 귀결”된다. “우리를 다시 개인으로, 집으로, 개별화된 공간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 〈라운드테이블: 잇따른 ‘흉기난동’,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하여: 젠더 관점으로 들여다보기〉 참여자들이 “나,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 [----]이 필요하다”에 남긴 메모. “신뢰의 회복”, “공포심 조장문화 아웃”, 사람이 존엄하다는 감각을 가진 국가” 등. ©일다

 

또 다른 질문도 제기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위치에서, 누구의 감각을 ‘보편’으로 여겼냐?”는 것이다. 사실 이번 잇따른 범죄들과 이에 대한 반응은 이전의 사회와 사뭇 다른데, 그건 이 범죄의 피해자에 “성인/비장애/남성이 포함되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그토록 외쳤던 “안전”에 대해 그다지 반응하지 않던 이들까지 드디어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최원진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국가는 여성안전을 주요 현안으로 삼고 대안을 세우기보다 일부 여성들의 ‘예민함’으로 치부했고,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이것을 찬반이 가능한 쟁점으로, 정치적 편가르기와 표를 위한 혐오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안전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특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폄하하고 ‘젠더 갈라치기’로 인식하는 정치권의 행보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최 사무국장은 이번 일을 통해 “여성의 안전이 ‘특수한 요구’가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위한 ‘보편적 조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한 사회는 남이 만들어주지 않기에… 

 

박다해 한겨레신문 기자는 언론이 이번 범죄를 다루면서 “범죄를 명명하는 부분이나, 기사를 쓴 방식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특히 가해자 중심의 서사가 전달되는 방식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이는 분명 기자나 언론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범죄 사건 기사의 특성상, 경찰 수사에 의존하여 쓰여지는 한계 지점이 있다”며, “경찰 및 수사기관이 어떻게 발표를 하느냐도 중요한 부분”이라 짚었다. 예를 들어,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은 끝까지 이걸 ‘여성혐오’ 범죄라 이야기하지 않았”던 부분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 이렇듯 정부와 경찰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전달을 하느냐는 언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 최근엔 온라인 커뮤니티 의견을 참고하거나 인용하는 기사들도 있는데, 이런 지점에선 “기자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더불어 젠더 관점의 보도를 가능케 하려면, “각 언론사의 취재보도준칙, 조직문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데스크의 존재 유무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안전한 사회를 단기간에 만들 수 있다거나, 이걸 하면 된다는 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나가야만 모두가 안전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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