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파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더 쓰이고 더 팔려야 할 것은 가난이다.” -책 『일인칭 가난』(안온 지음, 마티) ‘프롤로그’ 중
『일인칭 가난』을 편 후, 1분 만에 미소를 지었다. 저자의 말이 너무 반가웠고 당차서 좋았다. 이 책은 분명 재미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역시 틀리지 않았다. 『일인칭 가난』은 1997년생 청년여성,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는 안온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초등학교 시절 멸균우유 배급받던 이야기부터 지금 내가 선택한 식구와 함께하는 이야기까지. 하지만 가난을 ‘팔아먹는’ 이야기치곤 꽤 담담했다.
안온 작가는 가난을 이야기하지만 가난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난을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가난 ‘극복’을 독려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가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의 삶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가난을 이야기할 뿐이다.
석사 수료생, 문학(특히 시) 덕후, 학원 강사, 집사 그리고 작가. 부산에 살고 있는 저자와 온라인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의 반려고양이 등단이도 인터뷰 동안 잠든 모습으로 함께 하며 따뜻한 인터뷰를 만들어 줬다.
-안온이라는 필명을 쓰셨어요. 이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로 데뷔를 할 때 꼭 필명을 쓰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본명을 썩 좋아하지 않거든요. 일단 성은 엄마 성을 따와서 안 씨를 쓴 거에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보면, 소설 속 캐릭터인 심시선의 딸이 엄마 성을 따라서 심 씨를 쓰거든요. 그걸 보고 내가 모계로 이어진(영향 받은) 사람이라는 걸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엄마 성을 쓰는 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름은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요. 엄마가 그래도 이름인데 철학관에 가보라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재미 삼아 갔는데, 거기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름인 ‘온’을 말하더라고요. 운명인가 싶긴 했어요. 의미는 따뜻할 온으로 하려고 했는데, 편안함이 깃들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편안할 온으로 하게 됐습니다.
-프롤로그의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약간 통쾌한 기분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직접 이야기를 쓰는 입장에선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소수자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걱정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자칫 이 이야기가 그냥 ‘불쌍한’ 이야기가 되진 않을까 하는 것들이요. 글 쓰면서 고민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 꼭지를 쓸 때, 기승전결이 있잖아요. 가난이 기승전의 소재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 같아요. 결이 가난이어야 했어요. 기승전이 가난이고 결이 내가 생각한 것이나 감정으로 끝나면, 나조차도 가난을 도구적인 측면으로만 다룬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글 쓰고 나서 문장 배치를 바꾸기도 하고, 아예 다시 쓴 적도 많아요. ‘이러이러해서 참 슬펐다.’ 아니면 ‘이러이러해서 부정적인 것 같다’는 늬앙스만 주고 끝나지 않도록 노력했고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 어떤 질문이나 혹은 답을 하기 힘들 땐 솔직하게 ‘모르겠다, 알 수 없다, 답답하다’는 말로 끝맺는 걸 택하기도 했어요.
-글쓰는 과정은 어땠나요?
원고 마감이 열흘에 한번씩 있었어요. 오늘이 1일이고, 10일까지 써 주세요 하면 한 4일까진 안 써요(웃음) 그냥 중간 중간 생각나는 것들 핸드폰에 메모하는 정도? 그리고 4일부터 6일까지 쓰고, 또 한 이틀 안 봐요. 내가 쓴 글을 바로 보면, 너무 잘 썼다고 생각되거나 너무 못 썼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조금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어떤 부분은 감정이 과했다 혹은 글에 설득력이 없다, 미사여구에 신경을 많이 써서 본질을 말하지 못했다는 등의 부분이 보였어요. 편집장이 글을 엄청 꼼꼼하게 봐주기도 했어요. 원고와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추천해 주기도 했고요.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책을 마무리할 때까지 과연 이것이 나의 가난을 다 담은 것인가 혹은 타인의 가난을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가 약간이라도 있는가, 전혀 없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며 (글쓰는) 2년을 보냈어요.
개인이 노력하면 가능한 것처럼 구조적 차별 감춰
-새해 들어서 『일인칭 가난』 말고도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이소진 지음, 오월의봄), 『미국이 만든 가난』(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아르떼)을 읽었는데, 메시지가 일맥상통하더라고요. 노력하면 되고 능력 있으면 된다는 능력주의의 함정과, 불안이나 불행 그리고 가난을 개인 탓으로 돌리면서 구조적 차별을 감추는 문제요. 이 사회는 자꾸 ‘가난에서 벗어나라’고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노력 만으로 가난을 벗어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어요.
이 책이 나왔기 때문에 ‘저 사람은 가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사람’으로 규정 받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건 피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가난했지만 책을 쓸 정도의 교육을 받았고, 특히 책을 쓸 정도로 시간 자원이 있다는 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거 아니냐고요. 근데 전 항상 너무 궁금했어요.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고 표현을 했을까요? 자세히 보면 ‘가난을 겪었다, 가난했었다’는 말보다 ‘가난을 극복했다, 벗어났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단 말이죠. 가난이라는 단어에 엄청난 마이너스 값이 있다는 건데, 사회에선 그런 의미로 규정된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어떤 단어를 부정성에 근거해서 자꾸 묘사하면, 그 단어가 가지는 부정성을 해체해 나가는 주체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되더라고요. 또 그 말을 누가 더 부정적으로 썼냐에 초점을 맞추지, 그 말이 언제부터 부정적이었는지 귀 기울이거나 들여다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미소의 세상〉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미소의 유치원 선생님이 당근을 싫어해요. 근데 남자친구랑 결혼하려고 상견례를 하는데, 그 자리에 당근이 나온 거에요. 남자친구 가족은 다 당근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 때 난 ‘그냥 당근이 싫다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선생님 혀에 와사비를 뿌려서 혀를 거의 마비시키는 방법을 택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방법도 가능할 거 같거든요. 이 사회에서 당근에 대한 장벽을 좀 낮추고자 스테비아 당근(달달한 당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난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개인의 혀를 마비시키는 게 훨씬 시간도, 품도 덜 든다고 생각하는 거죠.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는 쪽이 가난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드는 쪽보다 빠르다고 보는 거에요.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한 사람을 보여 주는 것, 그건 임시방편이라고 봐요.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거, 누군가에겐 가능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가능한 사람만 보여 주는 건, 이미 불가능의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쉽게 “가난을 벗어나라”고 말하는 건, 그 가난의 원인을 단편적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난이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문제 속에서 만들어지며, 그렇기에 개인이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라서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뭐가 그리 복잡하냐고 할 것 같은데요.
누군가 어떤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이해가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청년여성들의 이야기가 나한텐 그냥 이해되는 이야기였듯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죠. 직업이 (학원에서 일하는) 국어 강사라 그런지, 어떤 질문에 대해 대체적으로 친절하게 답변하려고 해요. 내 감정을 억누르고, 말할 타이밍을 눈치 보는데 익숙해졌달까요. 누군가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 혹은 왜 모든 것에 징징거리냐고 묻는다면, 하나하나 설명할 자신이 있어요. 상대방이 질려버릴 정도로 계속 설명하는 거죠(웃음) 물론 이것도 그동안 수없이 포기하고 좌절하고 분노한 과정의 결과이긴 해요. 다만 나도 말을 해야, 이야길 들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때때론 질문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배려인데,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젠더나 빈곤과 관련된 어떤 질문들은 굉장히 상처가 되는 물음표인데, 그걸 모르는 것 같은…. 내가 설명하겠다는 건, 당신이 (더 이상 상처 되는 질문을 하지 않고) 침묵할 때까지 내가 떠들어버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가난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나 압박이 없는 사회였다면, 가난해도 괜찮다고 하는 사회였다면 작가님 삶도 조금 달랐을까요?
분명 ‘가난에서 벗어나라’는 말이 영향을 미쳤죠. 지금 이 책이 관심 받는 건, 1997년생 청년여성이 썼기 때문인 부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세대론으로 나눠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이 가난을 겪었던 과거와 달리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엔 누구만 가난한 게 잘 보였어요. 아마 지금은 더 그럴 거에요. 그래서 이 사회에 ‘가난해도 괜찮다’는 말이 과연 통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말이 있었다면 삶이 좀 달라질 수 있었겠죠. 다만 여성으로서의 삶엔 별로 영향이 없었을 것 같아요. 여성으로 겪는 차별은 그대로니까요. 가난이라는 상황을 빼더라도, 소수자로서 소수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아요.
-문학을 무척 좋아하는 덕후이신데요. 주변에서 ‘돈이 될 수 있는 걸 하라’거나 ‘이런 걸 좀 좋아해봐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나요?
엄청 많았죠. 근데 그러면 전 문학 안에서 그나마 뭐가 돈이 되지? 생각했어요(웃음) 그래서 소설이나 극본/시나리오를 써야 하나 생각했던 것 같고, 책에도 썼지만 그나마 문학과 연결되고 취업 준비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게 학원 국어 강사나 과외여서 그걸 하게 된 거죠. 엄마가 추천했던 직업도 첫 번째가 국어 선생님, 두 번째가 작가 말고 작사가, 세 번째가 책 옆에서 일할 수 있는 사서였을 정도에요. 딸이 어떤 애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거죠(웃음).
-어머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책 읽어보면 어머니도 보통 분은 아니신 것 같더라고요.
책 나왔을 때 엄마랑 제 자취방에 누워서 같이 읽었어요. 엄마가 책 읽고 이야기한 건 ‘문장이 너무 길다, 좀 재미가 없다’는 거였어요. 사실 책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는 전혀 안 하고, 문장이 너무 길다고(웃음) 멘탈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봐 온 엄마는 하룻밤 자고 나면 기분이 리셋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그의 삶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돌아가신 아빠가 한창 술 취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거실 한 켠에서 잤어요. 코를 막 골면서 자는데, 엄마는 너무 태연하게 그걸 다 치우고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며 웃었어요. 막 깔깔깔 웃는 거에요. 엄마의 그 정신력은 감히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엄마가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엄마가 태어난 지역과 가족, 환경이 엄마의 끼를 좀 누르지 않았나 싶어요. 환경이 사람을 분명 변화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절대 바뀌지 않는 고유한 영역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자신의 그 고유한 영역의 힘으로 삶을 지탱해 온 것 같아요.
-반려동물과 엄마나 친구 등 가족 말고,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게 있을까요?
일단 고양이는 정말 큰 영향을 줬는데, 그걸 빼고 말한다면… 책임감과 억한 심정?(웃음) 분노에서 시작됐지만 이것이 어떤 메시지가 될 거라는 자기 확신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읽고 또 읽었던 책들과 영화. 특히 〈소공녀〉(전고운 감독, 2018)를 좋아했고, 꽤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이런 걸 좋아하다 보니 가난해서 궁상떠는 와중에도 넷플릭스를 구독했었네요.
엄마가 사서를 추천 혹은 종용해서 부전공이 문헌정보학이라 도서관의 생태에 대해선 조금 아는 편이에요. 또 『도서관은 살아 있다』(도서관여행자 지음, 마티) 읽고 다시금 느낀 건, 아직 한국 도서관이 이용자를 열린 마음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도서관 부지는 한정되어 있고 운영의 한계도 있겠죠. 그럼에도 도서관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했으면 하고요. 이 책 쓰면서 종종 도서관에 갔는데, 3층 종합자료실에 그냥 앉아있었어요. 좀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웃음) 책 안 읽고 그냥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좋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무슨 책 읽나 보기도 하면서요. 한번은 지나가다 1층 어린이자료실을 봤어요. 아이들 셋이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었던 건 셋 다 책을 거꾸로 들고 있더라고요. 사실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인거죠. 이 모습이 도서관의 미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내 책을 만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책 내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인상적이었던 일이 있나요?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냥 ‘끝났다’하는 기분이었고요. 인상 깊었던 일은, 부산 북토크 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가 온 일이었어요. 책을 필명으로 내기도 했고 주변에 딱히 알리지도 않았는데, 그 친구가 거의 네 장이나 쓴 편지를 주고 갔어요. 감정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그 편지를 보고 엄청 울었어요. 말을 안 해도 알 것 같아서,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다고 적혀있더라고요. 그 편질 읽고, 책 쓰길 잘 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쓰길 잘 했다 싶었어요. 이외에도 다른 분들 소감을 보면서 ‘나 말고도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사람이 정말 많았구나’ 생각했고, 그걸 알게 된 점이 가장 감사할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일인칭 가난』 일정과 차기작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2월 중 서울에서 북토크가 한번 더 있을 것 같고요. 제가 글쓰기 모임 하는 공간이 있는데, ‘첫 북토크도 부산에서 했으니 마지막도 부산에서 하자! 그것이 부산 문화예술인의 간지다!’(웃음)하셔서 부산에서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3월부턴 반려고양이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학원으로 갈 예정입니다. 한 1년 정도 쉬었는데, 돌아가기 싫지만(웃음) 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다음 작품… 일단 모든 장르에, 소위 깔짝대고 있어요(웃음) 자취 경험이나 여성으로서 해야 하는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에세이도 하나 더 써보려고 하고요. 소설도 써 보고 싶어요. 혐오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체 어떤 건지 궁금했고, 이 혐오로 인해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야기를 한번 해 보고 싶고. 시는 언제나, 여전히 마음 속에 있고.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도 써 보고 싶어요. 그건 나 혼자 완성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잖아요.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다 욕심 내고 있지만, 역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건 에세이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튼 마구 써보려고 합니다.
이 기사 좋아요 57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