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청년’ 정치인을 바라보는 낡은 관점에 도전한다녹색정의당 장혜영, 김혜미 국회의원 후보를 만나다 (상)지인들과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일단 이마를 짚거나 뒷목을 잡게 된다. 4·10 총선(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누구 뽑지?”라는 말 뒤엔 침묵이 흐른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열망하는 이들조차 정치에 대해선 무기력감을 감추지 못하는 현실이 된 거다. 이번 선거에서 서로를 심판하겠다는 이야기 말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내 이야기를 대변해 주는 이가 없다’고 생각되는 점도 큰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아무 것도 없을까?
희한하게 잠시 뚝 떨어졌던 대파 가격에 대한 시시비비, 더불어 그게 대파 한 단이냐 한 뿌리냐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마주하게 될 농작물과 농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기후정치’를 강조하는 정치인. ‘페미니즘’이 금기어가 된 선거 판에서 백래시에 맞서며 ‘여성’ 의제를 내세워 성평등 집중유세를 하는 정치인, 모두가 먹고 살기 바쁘지만 한편으로 외로운 이 사회에 필요한 ‘돌봄’을 고민하는 정치인이 분명 있다.
녹색정의당(22대 국회의원 선거에 공동으로 참여하기 위해 정의당과 녹색당이 선거연대를 이룬 연합정당) 소속으로 서울 마포 갑에 출마한 김혜미 후보, 서울 마포 을에 출마한 장혜영 후보다.
김혜미 후보는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녹색당 부대표를 역임한 바 있고, 장혜영 후보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선출되어, 4년 간 포괄적 차별금지법,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 가족구성권 3법 발의 등 다양한 의정활동을 해 왔다.
소위 ‘여성 청년’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후보 평균 연령이 54.8세(21대 총선)에서 56.8세로 더 높아지고, 여성 후보는 고작 14%밖에 안 되는 현 상황에서 아주 드문 위치에 있다. 또한 존재가 희미해졌다고 평가 받는 녹색정의당에 남아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기도 하다. 걱정과 기대의 마음 모두 품은 채 두 후보를 만났다. 인터뷰 상 편엔 현 정치를 바라보는 견해를, 하 편엔 서울 마포를 한국 사회 변화의 시작으로 목표한 두 후보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이번 총선은 ‘속 빈 강정’ 같아요. 뭔가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막상 들여다 보면 알맹이가 없어서 뭐 하는 건가 싶거든요. 이런 선거판에 뛰어든 후보자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양심을 포기하는 일이 평준화되고, 오히려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선거인 것 같습니다. 그런 거라면 나는 기꺼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 모두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다, 역설적으로 굉장히 차분한 마음으로, 평정심을 갖고 선거에 임하는 중이에요.
김혜미: 현역 의원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기 좀 그렇지만, 21대 국회가 별로 잘한 게 없잖아요? 역대 최악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근데, 22대 국회는 더 걱정이거든요.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하죠. 예전에는 ‘정치인들 다 똑같다. 그래도 진보정당이 있으니까. 녹색정치, 여성정치 필요하니까 (진보정당을) 응원하자’고 했었는데, 그런 분들마저도 ‘그냥 (정치인들) 다 똑같다’ 해버릴까 봐… 그런 ‘나쁜 정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걸 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게 되죠.
장혜영: 일단 우리(정의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유권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고, 혼란을 줬기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민주대연합을 가는 정당인지, 아니면 명확하게 독립적인 노선으로 가는 대안야당이 될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줬어야 하는데, 두 갈래의 길 사이에 갈지자 행보를 했다는 비판이 가장 뼈아파요. 그것은 당 내에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비판과도 연결되고요. 저 또한 가장 반성하는 지점입니다.
김혜미: 녹색당은 2012년에 창당하고 지금까지 의회 권력을 얻지 못했죠. 그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시민들과 지지자들이 ‘녹색당이 무슨 정치를 할 수 있을까?’ 회의감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지난 21대 총선 때 위성정당 사태가 있었죠. 녹색당 내부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의 선거연합(비례연합정당)에 대해 뜨거운 찬반 논란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녹색당은 그때 함께 하지 않았고, 이후 조금 더 새로운 결과를 잘 보여줬어야 하는데… 정치가 참 쉬운 영역이 아니더라고요.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생활정치 영역에서 좀 힘을 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실패의 큰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기초 지역에서 활동을 열심히 잘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들을 수밖에 없는 거죠. 이번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이 지역구 후보를 많이 못 낸 것도 그렇고요. 진보정당으로서 지역에서, 생활정치의 역할을 좀 소홀히 했던 것 아닌가 반성하는 지점입니다.
김혜미: 녹색당 또한 리더십에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녹색당은 여성 리더십을 세우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건 당의 강령이기도 해요. 여성 리더십이 없으면 당의 강령을 어기는 거거든요. 그러나 여성 리더십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죠. 사실 그에 대한 실패도 있었는데, 여전히 그 리더십을 위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그 부분은 유권자로서도 참 아쉽기도 하고, 함께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성 정치인, 청년 정치인 혹은 여성 청년 정치인이 등장했을 때, 우리 사회가 이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나 싶거든요. 왜 자꾸 이탈하는 여성 청년 정치인을 목도하게 되는가 함께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혜미: 진보정당에서 정말 얼마 안 되는 자원으로 정치인이 된 이들이 자꾸 이탈하는 정치를 보는 게 참… 그렇죠. 일단 진보정당 또한 양대 정당이 했던 ‘인재영입’이라는 방식을, 흥행한다는 이유로 따라한 부분부터 좀 문제이지 않았나 싶어요. 작은 진보정당 안에서 정당이 목표하는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 온 사람들을 공적인 공간에 올려놓는 방식이 아니라, 외부에서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게 맞는지…. 그리고 또 짚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매번 저한테 물어봐요. 왜 양당으로 안 가고 녹색당에 있냐는 거에요. 김혜미라는 사람은 녹색당 안에서 하고 싶은 정치가 있거든요. 이 이야기를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왜 녹색당 혹은 정의당에 남아서 정치를 하는 지요. 그런 점에서 장혜영 후보가 녹색정의당으로 지역구에 출마했다는 것도, 더 주목 받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또 중장년 남성 정치인들은 ‘한동훈의 정치’, ‘이재명의 정치’ 이런 식으로 개인 리더십에 주목해 주는 반면, 여성 청년 정치인은 그냥 다 묶어버려요. 우리도 장혜영의 정치, 김혜미의 정치, 각기 다른 특징이 있거든요.
얼마 전 어느 언론에서 21대 2030의원의 청년 법안은 5%뿐이라는 기사를 냈더라고요. 법안 발의 설명에 청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분석해서, 청년 의원들이 생각보다 청년 법안을 발의하지 않았다는 비판 논조의 글이었어요. 저는 문제 의식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청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 청년 정책인가? 청년이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사실 대다수 청년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불평등 강화 정책도 있잖아요. ‘청년’을 들먹이며 코인 과세를 유예하고, 증여세를 깎아주고, ‘빚내서 집사라’ 부추기지만 전세사기 청년 피해자는 외면하는 정치요. 또 기후위기 문제와 싸우는 건 왜 청년 정치가 아닌가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는 건 왜 여성 정치가 아닌가요? 오히려 질문하고 싶어요.
‘여성 청년’ 정치인에게도 한계가 있겠지만, ‘여성 청년’ 정치인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 또한 무척 낡았다는 걸 반드시 성찰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함께 그런 반성을 하지 않으면, 이 구조적인 한계를 넘기 너무 어렵다는 거죠. 정말 ‘초인’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정치를 평가할 것인지에 관해 새로운 계획이 생길 때, 정치도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진보정당에서 제시해야 하고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낡은 것이 가고 새로운 것이 올 자리가 생기겠죠.
-거대양당 중심 정치의 폐해와 비례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으로 얼룩진 한국 정치에서, 녹색정의당의 장혜영, 김혜미 후보의 행보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번 선거, 왜 녹색정의당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장혜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혜미: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가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는다면 투표소로 가 주세요. 소중한 권리를 어떻게 쓸 거인지 한번 더 생각해 주시고, 용기 내어 달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하 편에서 구체적인 정책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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