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은 동성애로 인해 걸리는 병이라는 것과 ‘문란한’ 성관계로 인해서 걸리는 병이라는 것이다. 지난 달 30일 그러한 우리의 ‘무지’를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발표됐고, 지난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에는 에이즈 예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는 기사들 역시 각 언론을 장식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HIV 감염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한 내용 역시 여러 곳에서 언급됐다.
‘누구나’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문화일보엔 영남대학교 배영순 교수의 ‘도둑의 개는 도둑을 보고도 짓지 않는다? 2’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에이즈'라는 균은 아주 약한 것이지만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그런 병든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들, 그런 동성연애자들에게서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더라도 자기 교란과 면역 결핍증과의 상관성이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도둑의 개는 도둑을 보고도 짓지 않는다-2’, 문화일보 2003-12-2) 이 글은 첫째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둘째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셋째 세계 에이즈의 날 바로 다음날 실렸다는 점에서 실로 놀랍다. “에이즈라는 균이 아주 약한 것”만 빼고 모두 잘못된 정보이며 위험천만한 가정이다. 동성‘연애’자는 병든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에이즈가 동성‘연애’자들에게서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얘기가 대학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누구나’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 에이즈는 주로 HIV 감염자(이성이든 동성애든)와의 성관계를 통해 전염된다. 콘돔 사용 등 성병 예방을 위한 안전한 섹스를 하느냐의 문제이지, ‘덜 문란한’ 사람은 사소한 성병 정도만 걸리고 ‘많이 문란한’ 사람은 에이즈에 걸리는 식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더욱이 ‘동성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다. 성매매 종사 여성을 조심하라?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에이즈에 대한 태도와 접근법은 조선일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면서도 ‘에이즈=성매매와 성개방 풍조의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성매매가 만연돼 있고, 성 개방 풍조가 점점 심해지는 등 여건을 고려하면 확산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性개방 풍조 만연… 한국도 에이즈 확산’, 조선일보 2003-11-30) 중국의 심각한 에이즈 확산율에 대해 언급한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아예 한 술 더 뜬다. “이건 이웃인 우리로서도 보통 일이 아니다. 중국과의 교류 폭이 넓어지면서 작년 한 해 중국을 다녀온 방문객 숫자가 170만명을 넘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구이린(桂林)이 있는 광시성(廣西省)의 경우 성매매 종사자의 20%는 감염자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베트남도 요(要)주의 국가로 꼽힌다고 하는데, 문제는 이런 사실이 우리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국내 감염자의 18.8%는 외국에서 성접촉을 가졌다가 감염된 경우라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알려 해외 여행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에이즈 확산 남의 일 아니다’, 조선일보 2003-12-1) 외국까지 나가서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을 아예 보편적으로 ‘우리 국민’이며 ‘해외 여행자’라고 지칭하는 문제는 일단 넘어가자. 세계 에이즈의 날에 조선일보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성매매 되는 여성들 중에 에이즈 감염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안전한 성구매를 하게 하는 것이 사설로 쓸 만큼 가장 시급한 문제였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위험집단’을 색출해서 낙인 찍고 격리하는 것을 에이즈에 대한 최선의 대책인 양 여기는 것. 그것이 현재 에이즈와 관련된 최악의 문제라고 전 세계가 경고하고 있다. 동인련, 동성애자의 헌혈할 권리 주장 현재 한국에서 이런 식의 편견에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첫째가 에이즈 감염자들이고 둘째가 동성애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동성애=에이즈’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있는 근거는 한국 에이즈 감염자들의 감염 경로 중 1/3 정도가 동성 성접촉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이유뿐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은 지난 1일 사실상 동성애자들에게 헌혈을 할 수 없게 하는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문진표 15번 3항 ‘동성이나 다수의 불특정 이성 또는 외국인과 성접촉이 있었다’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국가인권위에 제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적십자사의 헌혈문진 중 ‘동성 혹은 다수의 불특정 이성과의...’ 라는 부분은 건강한 한 명의 동성애자가 그의 동성 파트너와 안전한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이 문진에 대해 ‘예’ 라고 표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문구를 그대로 따른다면, 단 한번이라도 동성과의 성접촉이 있는 사람은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헌혈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동성애자는 헌혈할 권리도 없는가?’, 동인련) 불특정 다수와의 성접촉이 에이즈 감염 위험을 높이는 것이어서 문제라면, 왜 문항에 동성/이성의 구분이 있느냐는 것. 이 문항은 사람들에게 ‘동성애=에이즈’라는 등식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동인련은 이 문진항목을 ‘‘다수의 불특정 이성, 동성 또는 외국인과 성접촉이 있었다’로 즉각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언급한 배영준 교수의 칼럼에서 맞는 말이 한 구절 있다. 에이즈가 기실 ‘약한 균’이라는 것이다. 공기와 접촉했을 때 곧바로 균이 죽을 뿐 아니라, 에이즈가 감염된 주사바늘에 찔려도 감염될 확률이 0.3% 미만이고, 감염경로(혈액, 체액) 역시 명확하기 때문에 다른 전염병들에 비해 예방이 더 쉽다. 그 약한 균이 그것을 ‘하늘이 내린 벌’ 취급을 하며 전혀 엉뚱한 대책들만 세우고 있는 우리의 무지와 편견 때문에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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