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8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우리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틈새를 만든다”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강연자 소개] 장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 소장. 천문학을 공부한 생태심리학자로, 노원우주학교와 서울시립과학관장 역임. 기후위기 대응을 고민하다 생태심리학과 에코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서로 『우주 산책』이 있고, 역서로는 『공동의 집』, 『자비로움』, 『경이로움』 등이 있으며, 『내 안의 가부장』, 『마더피스 타로 DECK & BOOK』, 『내면작업』 등을 공동번역했다.
천문학을 공부한 생태심리학자라고 저를 소개하면, 어떻게 천문학을 하다가 심리학까지 왔을까 궁금해할 텐데요. 대학에서 천문기상학 수업 시간에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에 대해 배우게 되었는데, 이게 더 심각해지면 지구가 금성처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 이후 줄곧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지금은 생태심리학이라는 틀 안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후우울의 파도타기’라는 주제로, 기후 이슈와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파괴된 열대우림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당신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의 사진을 보거나, ‘지구 열대화’라고도 이야기하는 초대형 산불이 호주, 미국 등 지구곳곳에서 수개월이나 지속되는 뉴스를 접할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가슴이 꽉 막힌 느낌처럼 몸으로 반응이 올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파괴된 상태 역시 심각한데요. 원래는 산림이 산소를 만들어내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데 생태계가 파괴되어 그 정도가 심해지면 탄소흡수량보다 배출량이 많아져서 일산화탄소, 즉 독극물을 뿜어내는 곳이 될 거라는 경고를 과학자들이 해왔어요. 그런데 대규모 산불이 잦았던 2023년에 열대우림이 일산화탄소를 뿜어내는 게 관측이 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런 정보를 접하면 안타깝고, 답답해지죠. 저는 때로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기도 하는데요.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에 오신 여러분들은 아마 공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답답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극지방의 빙하가,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그것과 연결감을 느끼는 생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기후위기와 관련해 내가 들었던 가장 속상한 말
그런데,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답답한 마음을 옆의 누군가와 나누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나와 같지 않아서 당황했던 경험도 있지 않나요? 별종 취급당하는 거죠. 아마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 대부분에서, 우리는 별종이 맞을 겁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면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얘기를 많이 할 거예요. 들은 얘기 중에, 정말 속상했던 말은 어떤 걸까요?
저는 과학관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과학관에서 일하기로 한 이유 자체가, 기후위기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는데 혼자서 하기엔 한계가 있어서 과학관을 통해서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거였죠. 그러려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먼저 나누어야 하니까, 저는 4년을 일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많이 설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후위기 주제를 과학관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싶어서 열심히 발표를 했을 때 듣게 된 이야기는 놀라웠어요. ‘종말론자 같으세요.’ 하더라고요. 그곳 일을 그만두고 몇 년 후에 다시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충격적인 반응을 들었습니다. ‘아니, 이런 얘기 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협박을 해요?’ 그러더라고요.
여러분이 들은 말 중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유난 떤다. 참 피곤하게 산다. 이런 얘기, 불편해. 네 인생이나 제대로 살아. 네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이런 비슷한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았을 겁니다. 여기 오신 분들, 서로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따뜻하게 눈 한번 마주쳐 보세요. 나만 들은 게 아니다, 너도 들었구나 하면서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같이 듣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조금 낫죠.
기후위기와 관련해 내가 나에게 하는 말?!
그런데, 이런 얘기를 바깥에서만 듣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서도 들어요. 솔직히 ‘나 하나 실천한다고 뭐가 바뀔까?’ 이런 생각할 때가 있지 않나요? 심지어 ‘나만 왜 이렇게 별날까?’ ‘나만 왜 이렇게 예민하지?’ 이런 식으로 자기 비난을 하게 될 때도 있죠.
기후위기, 생태위기를 생각하면서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정말 뭐가 달라질까. 때려치울까. 그래도 뭐라도 해야만 하지 않을까? 20년, 30년 뒤에 폭염과 한파에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인류에게 정말 미래가 있을까? 아, 죽고 싶다.
그러다 재작년 연말에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 시리즈를 보게 되었어요. 24부작이나 되는데도 두 번을 연달아 보고, 나를 이렇게까지 이끈 게 뭘까 궁금해서 몇 달 후에 한 번 더 봤어요. 그 답을 찾았습니다. 대한제국 시대 의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친일파나 무관심층은 주로 ‘너 하나 뭘 한다고 달라지겠어? 편하게 살아.’ 이런 식이에요. 조선이 일본에 넘어가는 건 정해진 일인데, 허튼짓 말라는 거죠. 주인공 고애신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적어도 하루는 늦출 수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 그 말이 제 가슴을 울렸어요. 기후위기를 하루라도 늦추고 멸종되어 가는 생명 하나라도 더 살리고 싶은 게 내 마음이구나.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울컥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데, 보통 이 감정을 그냥 ‘기후우울’이라고 해요. 그런데, 우울이라고 하면 뭔가 가라앉고 억지로 힘내야 할 것 같고, 내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사실 우울한 것만은 아니죠. 거기에는 정말 많은 감정이 있어요. 화가 나기도 하죠. 이런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과 제도와 정치에 화가 나고요. 또 한편으로는 뭔가를 하겠다고 다짐해놓고, 그 약속을 제대로 못 지키고 비틀거리는 나 자신한테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슬픔도 있죠. 절망하고 두렵고 무기력하고, 또 이렇게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고 수치심이 들기도 합니다.
기후우울의 파도가 밀려올 때
이러한 감정들이 마구 밀려올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후우울의 파도가 밀려들 때, 그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거나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내 감정이 지금 어떤지, 내 에너지 상태가 어떤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뭉뚱그려서 느끼는 게 아니라,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자기돌봄’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되니까요.
근데, 이게 쉽지 않아요. 왜냐면 다 부정적인 감정들이기 때문입니다.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죠. 그런데 회피할수록 그 감정들은 더 커져서 결국 우릴 집어삼키게 되죠. 하지만 슬픔이 왔네, 내가 왜 슬프지? 그러면서 그 감정을 마주해 가만 들여다보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감정은 작아지고 그 밑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어요.
그 보물이 뭐냐고요? 왜 내 마음이 슬프고, 힘겹고, 아플까. 그건, 내가 사라져가는 것들과 연결된 존재임을 아는 감수성이 있기 때문이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죠. 저한테는 큰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 말인데, 조안나 메이시라는 생태심리학자가 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는 자연과 뭇 생명뿐 아니라 나 자신과도 연결되어야 해요. 또한 홀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연결되어야 하죠. 이처럼 기후우울의 감정만을 보는 게 아니고, 그 밑에 있는 보석을 보게 되면 또 살아가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결
황조롱이가 ‘정지비행’을 하는 모습 보셨나요? 날개를 엄청 빨리 움직이고 있는데, 부리는 놀라울 정도로 가만히 있어요. 날고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안 움직이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강하게 부는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똑같은 속력으로 열심히 날갯짓을 하기 때문이에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도 매일 밀려드는 힘든 소식을 마주하고 있잖아요.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데, 일상의 내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애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수고한다고, 알아주고 다독여 주고 자기연민을 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면 좋겠습니다.
나의 감정과 몸과 연결되고, 이런 감정을 나눌 친구를 찾고, 자연과도 연결되고,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 이런 게 우리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이 거대한 기후우울의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틈새를 만들어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이, 살아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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