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는 젠더정의다

기후우울 시대, 다른 내일을 만드는 여성들⑤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

서연화 | 기사입력 2024/04/24 [11:31]

기후정의는 젠더정의다

기후우울 시대, 다른 내일을 만드는 여성들⑤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

서연화 | 입력 : 2024/04/24 [11:31]

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8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우리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틈새를 만든다”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 서연화 여성환경연대 기후정의팀 활동가. 여성환경연대에서 주관한 제8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우리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틈새를 만든다”에서 강연하는 모습. (출처-여성환경연대)


[강연자 소개] 서연화(사라). 여성환경연대 기후정의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아남기 위해,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기후위기 대응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하루 애쓰며 뭐든 해보려 노력 중입니다.

 

‘젠더정의’ 없이 ‘기후정의’도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제가 속한 여성환경연대 또한 열심히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후정의(Climate Justice)란,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를 가져온 것에 큰 책임이 있는 국가/사람들과, 그로 인한 피해에 더욱 취약한 계층/사람들 사이의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후정의는 젠더정의다”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왜 기후정의와 젠더정의를 교차해서 생각해야 할까, 왜 페미니스트 기후정의를 외치는가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기후위기는 지구상의 공통의 문제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기후정의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국가, 인종, 사회적, 경제적 지위뿐만 아니라 젠더에 따라서도 피해는 다르게 구성되는데요.

 

▲ 세계 인구의 소득집단 별 누적 탄소 배출량 비율을 나타낸 그래프(1990-2015). 출처-옥스팜 〈탄소 불평등에 직면하다: 기후정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 2020.09.21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에서 2020년 발표한 보고서 〈
탄소 불평등에 직면하다: 기후정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에는 경제소득에 따른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나타낸 그래프가 나옵니다. 전세계 경제소득의 상위 10% 인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비중은 50%를 넘습니다. 그에 반해 빈곤층 50%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전체의 7%에 불과하죠. 그러나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빈곤층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간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기후환경단체 ‘카본 브리프’는 2020년 11월 1일 세계 기후위기 관련 논문 130건을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여성과 소녀들이 남성과 소년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위험에 놓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습니다. 130건의 연구 논문 가운데 89건(68%)이 기후변화로 인한 사상자, 식량불안정, 정신질환, 출산과 모성보건 등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많은 피해를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겨레, 「‘기후 재앙’ 600배 증가 속 “여성에게 더 가혹한 기후위기”」, 2020-11-02 참조)

 

여성들이 더욱 많은 피해를 받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들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 일상에서 굉장히 많은 실천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수치화되지 않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관해 언급할 때, 과학적인 수치가 중요한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상승온도, ppm, 목표기간 등 통계나 과학, 숫자에 근거한 정책들로 접근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수치화되지 않는 다양한 실천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환경을 위해서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들, 가정 내 혹은 마을과 공동체를 위한 돌봄들은 수치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기 어렵죠. 이렇게 비가시화 된 실천들이 주로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 2023년 9월 10일 에코페미니스트 기행 중 ‘해변 줍깅’ 후 만든 플라스틱 만다라. (출처-여성환경연대)


반면, 여성의 정치적인 의사결정권은 현저히 낮습니다. 국회의원 비율도, 정부 주요 부처의 장관의 비율도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이는 단순히 여성의 수가 적다는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권에서 특정 성별이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정 성에게 피해가 더욱 치중되고, 특정 성의 경험이 비가시화되고, 특정 성의 정치적인 의사결정권이 배제되는 사회에서 ‘기후정의’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후정의와 젠더정의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젠더정의 없이는 기후정의 없다’는 목소리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성평등하게’

 

여성환경연대는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한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여성과 기후위기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최전선인 현장에 있는,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로 합니다. 여성농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돌봄 제공자, 지역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력하는 풀뿌리 활동가, 그리고 기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운 재난취약자 등 총 18인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를 토대로 〈여성의 관점으로 말하는 기후위기 정책 제안집〉을 발행했습니다.

 

이 자료집에는 “기후위기”에 관해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 것인지, 어떤 지향점을 갖고 활동할 것인지가 담겨있습니다. 핵심 정책은 바로 ‘돌봄 사회로의 전환’입니다. 이미 우리는 사회재난이 발생할 때 돌봄안전망이 부재하면 어떤 상황에 처해지는지 경험했습니다. 코로나 시기 보육시설, 요양시설, 학교 시스템이 멈췄고, 이는 가정, 특히 여성의 일로 가중되었습니다. 기후재난이 점점 빈번해지면 노약자,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위험에 취약하게 노출됩니다.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양육자, 돌봄 시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나아가 비인간종까지. 기후재난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 돌보는 존재 모두가 안전한 사회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여성환경연대는 “기후정의는 젠더정의다”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여성환경연대)


기후위기와 관련된 다양한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기후위기 시대에 이들의 피해를 보여줄 수 있는 수치적인 데이터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활동이 만들어가는 의미를 말해줄 수 있는 데이터도 없었습니다. 재난안전과 관련한 성별 통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성별에 따른 피해 규모의 차이도, 피해 형태의 차이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성별에 따른 적합한 대응 방식도 마련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022년에는 일상 안에서의 피해들을 파악하고자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경제적 부담 가중, 건강 영향 피해, 주거 공간의 불안정, 기후 우울까지 개인이 떠맡게 된 여러 피해와 부담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소득, 지역(수도권과 비수도권), 성별에 따라 피해 양상은 달랐습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 농촌 거주자, 여성이 입는 피해가 더 크다는 조사결과는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우리는 성별, 장애, 직업, 소득, 거주 형태 등을 이유로 기후위기 피해가 불어나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함을 제안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

 

그 사이 2021년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또 지자체별, 정부 부처별 “기후위기 대응” 명목으로 여러 계획들을 발표하고 있죠.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젠더 관점은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성별에 따른 피해 규모 파악도, 성별에 따른 적응 대책 마련도, 기후위기 대응 정책 전반에서 성평등에 관한 고려도 포함되지 않았어요.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정책에서 젠더 관점을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의 기후대응 운동 내에서도 “기후정의는 젠더정의”라는 의제가 자리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을 기획했습니다. 여성환경연대를 중심으로 총 11개의 여성, 인권, 청년, 동물권 단체들과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기후위기 문제에서 젠더 관점이 꼭 필요한 분야는 무엇이고, 최소한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이행되어야 할 지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젠더 관점에서 한국의 기후위기 문제를 규정하고, 합의된 지향점을 선언문에 담았습니다.

 

▲ 2023년 9월 1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여성환경연대 주관으로 열린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 기자회견. 총 11개의 여성, 인권, 청년, 동물권 단체들이 함께 했다. (출처-여성환경연대)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문에서 “기후위기는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의 지구 생명체에 대한 끊임없는 착취의 결과”이며, “무분별한 착취를 가능하게 한 구조는 다름아닌 ‘가부장제적 자본주의’”라고 기후정의의 원인을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지구를 파헤치고 오염시키는 무한한 상품생산과 경제성장이 아니라, 유한한 필요와 풍요를 평등하게 나누는 ‘탈성장 사회’를 지향합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존의 성별분업에서 비롯된 ‘돌봄의 여성화’ 탈피, 연령과 성별, 국적에 상관 없이 누구나 돌보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보장,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 및 확대입니다. 또한 인간, 비인간종을 모두 포함한 공동체와 지구를 위한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의 변화,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사회로의 이행입니다.”

 

선언문과 함께 정부에 요구하는 10가지 주요 요구안을 24개의 세부안과 더불어 제시했는데요.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가 안전한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페미니스트 기후정의 선언-10대 요구안]

1.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하라.

2.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라.

3. 기후대응 정책 전반에서 젠더 관점을 반영하라.

4. 여성·지역민 등 사회적 소수자가 주체가 되는 탈중앙집권적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라.

5. 젠더 관점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6. 인간과 비인간 동물 모두가 공존하는 종평등한 사회로 전환하라.

7. 핵발전, 석탄발전 계획을 폐기하고, 근본적인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라.

8. 주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마련하라.

9. 여성 농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식량주권을 확보하라.

10.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이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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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4/04/25 [11:14] 수정 | 삭제
  • 기후정의와 젠더정의에 대해서 명쾌하게 잘 설명된 기사라 도움이 되네요.
  • 달팽이 2024/04/24 [15:10] 수정 | 삭제
  • 성별 통계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맨날 문제 터지고 나서 땜질하지 말고. 특히 기후위기는 재난인데 미리 대비했으면 좋겠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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