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과 범죄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아홀로틀 로드킬

이연숙(리타) | 기사입력 2024/05/08 [17:20]

인용과 범죄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아홀로틀 로드킬

이연숙(리타) | 입력 : 2024/05/08 [17:20]

[필자 소개] 이연숙. 닉네임 리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 소수(자)적인 것들의 존재 양식에 관심 있다. 기획/출판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일원으로서 웹진 ‘세미나’를 발간했다.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블로그 blog.naver.com/hotleve를 운영한다. 2015 크리틱엠 만화평론 우수상, 2021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시각문화와 퀴어 부정성을 다룬 책 『진격하는 저급들』, 일기를 모은 책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을 썼다. 공저로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크래시–기술·속도·미술시장을 읽는 열 시간』, 『미친, 사랑의 노래』가 있다.

 

▲ 중고로 산 『아홀로틀 로드킬』(헬레네 헤게만 지음, 배수아 옮김, 열린책들, 2010). 겉표지는 내가 벗겼다. 중앙의 얼룩은 정체를 모르겠다. ©이연숙(리타)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이라는 제목의 청탁서를 받았을 때 나는 말 그대로 내 “머리맡에” 있는 책을 떠올렸다. 바로 독일 작가 헬레네 헤게만의 『아홀로틀 로드킬』이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상류층 망나니, 학대당한 틴에이저, 동성애, 마약, 테크노 클럽 파티… 광기와 천재성이 뒤엉킨 열여섯 소녀 미프티의 삶”을 다루는 이 책은 작가 배수아의 번역으로 2010년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글이 나를 온 힘을 다해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중고로 구매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완독하지 못하고 마치 숙제처럼 침대 옆 협탁에 두고 자게 된 것인데, 이따금 생각이 나면 자기 전에 몇 페이지를 뒤적거려 보지만 역시나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싫은 책도 나쁜 책도 아니다. 책에서 몇 문장을 발췌해 보겠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건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다.” (좋다.) 

“나는 야성적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야성적으로 살고 싶다.” (역시 좋다.) 

“(나는 감히 내일을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절대로, 감히 생각이란 것 자체를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좋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맹렬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리멸렬한 문장들이 종이 위로 마치 융단폭격처럼 줄창 투척되는 걸 보고 있자면 10분도 안 되어 내 집중력은 항복 선언을 하고 만다. 어찌 되었든 쉬운 책은 아니다. 작가가 여성 파트너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또 본문에서도 여성 간 관계가 중요한 소재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성소수’ 의리로 어떻게 비벼보지 못할 만큼이나 이 책은 난해하다. 아니 그보다 ‘진짜’ 젊은, 거친, 펑크한 이 책의 스타일에 쉽사리 감응하지도 접속하지도 못하는 내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 몸으로 읽기 위해선 읽는 몸을 바꿔야만 하는 법. 쉽지는 않다. 30대 중반인 나는 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 처음처럼 이 책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렇게 곤혹스러워 할거면서 왜 심지어 중고로 구하기까지 했냐고? 답은 간단한데, 나는 이 책이 출간 직후 휘말렸던 표절 논란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절! 항상 가슴 두근거리는 주제다. 마치 아직 정체가 발각되지 않은 범죄자가 동료 범죄자를 뉴스에서 발견했을 때처럼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오프닝곡 〈RUN, RUN, RUN〉의 번역 가사를 고스란히 베껴 ‘시’랍시고 제출하고 난 뒤, 당시 담임이던 허동엽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숙아, 정말 네가 쓴 거 맞니? 혼내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 다오. 당시 진례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체벌하지 않는 교사이자 인격자였던 그는 부드럽고 자비롭게 내게 고백을 종용했다. 나는 대답했다. 정말 제가 쓴 거란 말이에요. 우에엥. 나는 최대한 억울해 보이기 위해 눈물을 쥐어짜내기 시작했고, 허동엽 선생님은 더는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그 일로부터 큰 교훈을 얻게 되었다. 잘은 몰라도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RUN, RUN, RUN〉을 검색해 보신 게 틀림없으니, 앞으로는 그 어떤 검색에도 걸리지 않도록 살살 베껴야겠다고….

 

▲ 도서 리뷰 사이트 ‘굿리즈(goodreads)’에서 『아홀로틀 로드킬』의 평점. 2010년 표절 논란 이후 남겨진 별 한 개짜리 악평이 대부분이다. ©이연숙(리타)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늘 스스로를 표절 범죄자라 여기고 살았다. 그러니 표절 논란 이후 한 매체의 표현처럼 작가로서의 명예가 “추락”한 헬레네 헤게만에게 흥미와 연민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만 17세에 첫 소설을 낸 ‘천재 소녀’의 벼락같은 등장은 그 자체로도 좋은 기삿거리였겠지만, 한 블로거에 의해 작가가 소설의 ‘상당 부분’을 이미 출간된 남의 작품으로부터 고스란히 베꼈다는 사실이 폭로된 뒤에는 더 그랬을 것이다. 인터넷 문화에 기반한 새로운 문학의 기수로 주목받던 대형 신인 작가의 표절 사건에 독일 문단과 언론은 한순간에 돌변했다. 논란이 어느 정도 소강 상태가 된 시점에 이뤄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갑자기 그들은 책 전체를 쓰레기로 만들었다. 나에게 찬사를 보내던 비평가들은 완전히 나에게 거리를 두었다.” 소설의 ‘상당 부분’, 그러니까 총 “열네 문장”의 허락받지 않은 “차용과 수정”, 즉 표절 때문에 말이다.

 

한국어판 『아홀로틀 로드킬』 맨 뒤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제목은 “이것은 실험이다”이다)에 따르면 작가는 다른 인터뷰에서 단순히 자신의 “이기주의와 무신경으로 인해” 인용 허가를 받는 것을 잊었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작가에게 분노한 노벨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는 “표절은 예술이 아니라 범죄”라며 기성세대의 작가들과 함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확실히 귄터 그라스는 헬레네 헤게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젊고, 여자고, 펑크인 예술가에게 절대 바라서는 안되는 그것 말이다. 어쨌든 고작 “열네 문장”이라 할지라도 무단으로 남의 작품을 베낀 건 잘못이다. 그런데 ‘얼마나’ 잘못일까? 『아홀로틀 로드킬』을 통째로 싸잡아 ‘표절작’이라 불러도 될 만큼의 잘못일까?

 

『아홀로틀 로드킬』에는 ‘옮긴이의 말’에 앞서 ‘인용문의 출처’가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여기서 독자는 작가가 어떻게 원문을 자기 방식대로 변형했는지 대조해 볼 수 있다. ‘인용문의 출처’를 보고 나는 헬레네 헤게만이 표절했다는 작가, 아이렌의 문장이 『아홀로틀 로드킬』에서 그다지 핵심적인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 인터뷰에서 “그녀가 내 글을 베낄 필요는 없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윌리엄 S. 버로스나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를 연상시키는 아이렌의 포르노그래피적 묘사는 독특하고 강렬하지만, 헬레네 헤게만이 미처 생각해 내지도 못할 문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작가가 베낀, 그러니까 ‘무단 인용’한 작가가 아이렌뿐만인 것도 아니다. (특히나 자주) 캐시 애커, 말콤 로리,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 짐 자무시, 좀비스, 아카이브도 ‘숨겨진’ 인용 출처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본문에서는 유명한 운동 선수나 모델의 말이나 레너드 코헨, 포티셰드 같은 음악가들의 가사도 대놓고 등장하며, 작가가 친밀한 이들로부터 받았을 “개인적인 메일” 역시 통째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아홀로틀 로드킬』의 형식은 배수아의 말마따나 인터넷 문화에 기반한 “패치워크”나 “매우 과격한 21세기형 펑크”, 또한 “초현대식 문학적 리믹스” 쯤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가? 『아홀로틀 로드킬』은 오리지널리티(독창성)의 불가능성에 대한 “실험”이고, 그러므로 “열네 문장”의 무단 인용은 아방가르드의 위대한 실험 정신에 비하면 용서해 줄 법한 실수라고?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인용이란 기본적으로 위험한 행위이고, 표절이란 인용의 위험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홀로틀 로드킬』에서 작가가 보고 읽고 수집한 텍스트들은 작품의 권위를 높이는 장식이 아니라 오히려 망치고 더럽히는 오물처럼 기능한다. 헬레네 헤게만의 “이기적이고 무신경한” 성격적 결함은 아이렌의 문장을 몰래 자신의 작품 속에 적재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작가는 ‘표절 작가’로 낙인찍혀 두 번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고의가 아니라고 해도 인용은 표절이라는 범죄적 행위가 됨으로써 자신을 남용하는 사람에게 복수한다.

 

『아홀로틀 로드킬』이 ‘표절작’인지 아닌지, 어떤 조건이 ‘표절작’을 구성하는지를 따져 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용이 처음부터 품고 있는 표절의 가능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쓰는 사람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다. 『아홀로틀 로드킬』의 출간으로부터 14년이 지난 현재,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헬레네 헤게만이 여전히 감독, 배우,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출소한 동료 범죄자의 안부를 확인한 것처럼 나는 어째서인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 한국에선 우파루파로 잘 알려진 아홀로틀은 올챙이 적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며 성장한다. “그 말은, 이놈이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야, 멋지지, 안 그래?” ©Mattias Bangues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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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4/06/27 [11:50] 수정 | 삭제
  • 표절과 인용은 다른데? 라고 생각했으나 인용은 늘 표절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에서 끄덕.
  • ㄹㄹ 2024/05/13 [09:25] 수정 | 삭제
  • 글 왜 이렇게 잘 쓰시는 것임;;; 홀린 듯이 읽었어요ㅠ
  • ㅇㅇ 2024/05/12 [08:37] 수정 | 삭제
  • 문장만 아니라... copy와 표절의 위험.. 생각하게 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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