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도자기 마을’ 아리타에서 ‘여행자 마을’ 오노미치와 연결되고…
나의 일본 데뷔 공연을 주최한 단체, ‘토모스야(灯す屋)’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난번 소개한 것처럼, 도자기마을 아리타에서 마을 살리기 활동을 하는 NPO단체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맞이했던 일본은 요즘 한국에서 핫한 주제인 로컬, 도시재생의 실험도 조금 빨랐다. 지난해 여행 가서 완전히 반해버렸던 여행자들의 마을 오노미치는 알고 보니 일본에서 유명한 마을 만들기 성공 사례였다.
토모스야의 대표인 사사키 씨는 도시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아리타에 돌아와 새로운 일을 하기로 했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노미치에 견학을 다녀왔다. 그렇게 아리타에서 토모스야를 시작한 건 2018년이었다.
일단 주변에서 함께 할 다섯 명을 모으고, 법인을 세웠다. 일본어 ‘토모스’는 ‘불을 켜다’라는 뜻인데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재미있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비전을 불이 켜지는 모습으로 상상했다. 시에서 빈 집을 지원받아 일과 생활과 창작을 공유하는 장소로 만들었고, 일 년에 한 번씩 거리를 백화점으로 만드는 축제를 기획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빈 집에서 팝업 행사를 여는데, 거기에 팝업 고서점으로 참여하기 위해 소라는 매달 고향을 찾고 있다. 도쿄에서 아리타는 꽤 먼 거리인데도 흔쾌히 달려가는 이유는 소라의 특별한 고향 사랑 때문일 거다. 소라가 잘 알지도 못하고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한국인 친구인 나를 아리타에 초대한 이유가 ‘이렇게 좋은 곳을 사람들이 몰라주는 게 아쉬워서’라고 대답할 정도니까. 아리타가 위치한 사가현은 ‘가장 가고 싶은 일본 국내 여행지’ 설문조사에서 대체로 꼴찌를 담당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는데, 같은 이유로 나는 아리타와 사랑에 빠졌다.
공연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하나 둘 모여드는 얼굴이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는 거다. 그래서 좋았다. 모두들 다다미 방에 녹차를 들고 둘러 앉았다. 옆 마을에서 온 젊은이 무리가 제일 앞자리를 차치하고, 전날에 소라가 소개해준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도예가 토모야스 씨도 일부러 찾아와 주었다.
최근 도자기 교류와 전시를 위해 한국에 다녀왔다는 도예가 토요마스 씨의 공방은 소라가 태어난 집의 바로 옆에 있었다. 산책하다가 가마가 보여서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잠시 후 소라가 나를 거기에 데려갈 줄은 몰랐다.
돌을 깨고 다시 반죽해 도자기를 굽는 방식이 한국에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얘길 들었다. 그 전통을 지키려는 한국 사람들과 일본의 도예가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토요마스 씨는 종종 한국에 간다고 한다. 이번에는 무쇠 가마솥이었지만 다음에는 시장에서 돌로 된 냄비를 사 올 거라고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내 공연에 슬쩍 나타난 토요마스 씨는 자신의 공방에 있을 때와 달리 수줍음 가득한 모습으로 구석에 앉아서 노래를 들어주었다.
토모스야의 이름 덕분인지 마주친 얼굴 하나하나에 모두 불이 환하게 켜졌다. 해가 달을 비추듯, 달이 바다를 비추듯, 분명 내 얼굴에도 빛이 났을 거다. 재미있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귀여운 할머니들이 잔뜩 있는 마을 아리타와 꼭 맞는 노래, 셋 리스트에 없던 ‘오래된 매일’을 불렀다
행사가 끝나고, 마을 뒤편 공터에서 만난 토모스야의 대표 사사키 씨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혼자 예초기로 잡초를 정리하고 있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나오니 공터 한 가득 마을 사람들이 함께 풀을 베고 있다.
언젠가 전주에서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는 ‘바늘소녀’에게서 일본 시골 마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작은 마을의 도자기 축제에서 귀여운 할머니들을 잔뜩 만났다는 말에, 나도 언젠가는 일본 시골에 꼭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던 때의 일이다.
일본에 있는 동안 다른 일로 바늘소녀와 연락이 닿아 그때 말한 시골 마을이 어디였냐고 물었다. “아리타”라는 대답을 듣고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그때의 작은 바람이 이렇게 이어졌다고 마음대로 믿어버리기로 했다. 바늘소녀의 말처럼 아리타에는 귀여운 할머니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아리타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귀여웠다.
공연이 끝나고 동네를 배회하는 나에게 “우리 마을에 와서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을 걸어 온 할아버지는 바로 앞 자기 작업실을 둘러봐도 된다며 초대를 해주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이나, 도자기 기술을 가지고 터키에 다녀온 사진 같은 것들이 벽에 가득 붙어 있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직접 굽기까지 하는 분이었다.
역시 아리타는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야키모노(도자기)의 마을이다. 자기 작품의 특징은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데 있다며 이것저것 보여주시더니 작은 컵과 수저받침을 선물로 주신다. 고마운 마음에 토모스야로 얼른 뛰어가 『걷는 섬』(부산 영도를 걷는 이내의 노래사진집, 2022) 한 권을 가져와 전해드렸다.
신타 씨는 대화가 즐거운 사람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경계 따위 잊어버리고 사람으로 만나자"라는 노래 가사를 외워서 마지막 인사로 되돌려 주었다. 그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토모스야의 내일이, 아니 매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름은 잊었지만 한국어 교실에서 만나 여행 친구가 되었다는 두 사람의 얼굴도 기억이 난다. 한국어 노래에 귀를 쫑긋 기울인 얼굴이 귀여웠다. 멋진 모자를 쓰고 롱스커트를 입은 중년의 여성 관객도 CD를 소중하게 챙겨 가며 어쩐지 눈물이 나는 목소리였다는 감상을 전해주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아니라서 지난번보다 사진을 훨씬 덜 찍게 되었지만, 지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얼굴을 그림으로 그렸던 게 좋았기 때문에 얼굴 사진 만큼은 최대한 찍어 두려 노력했다. 언젠가 일상에 치여 마음이 갑갑해질 때, 아리타의 귀여운 얼굴들을 조용히 떠올리며 그림 명상을 해도 좋겠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아리타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난 건지, 어떤 얼굴들을 만나버린 건지 꿈속의 일처럼 잡히지 않는다. 3박 4일이 아리타를 만나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되고 싶은 노래』,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 「걷는 섬」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ines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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