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KBS 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세가 상승 원인 중 하나로 임차인들의 ‘과소비’를 언급해 논란이 됐다.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신설된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부의 저금리 대출 지원이 전세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나온 이야기다. 박 장관은 “정부가 서민을 도와주기 위해서 저리의 자금을 빌려줬더니, 이것이 오히려 전세에 대한 과소비를 불러일으켰다”며, “(이런 걸) 이용해서 예를 들면 15평 집에 전세를 얻어야 될 걸 20평 집에 사는 과소비 현상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각으로 시장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완화’도 아닌 ‘폐지’해야 하며,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대차 2법’(2+2년 계약갱신 청구권 및 전월세 상한제)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주거 문제로 고심하는 현실의 많은 청년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과연 정부의 제도를 이용해 ‘과소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청년들은 어떤 집을 꿈꾸고 있을까?
전세만 문젠가? 높은 월세도 문제다
증언대회에서 여러 청년노동자들이 지적한 부분은 노동의 대가인 급여에 비해 주거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과 체육 수업을 하는 초등스포츠강사라 소개한 정유리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고용도 안정될 줄 알았고, 임금도 꾸준히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육청과 10개월, 11개월로 쪼개기 계약을 하다 몇 년 전 그나마 12개월로 인정을 받았고, 오랜 투쟁의 결과로 3년 전 처음 근속수당이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거 독립은 쉽지 않았다. “서른 중반이 되도록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올해 겨우 독립했다”는 유리 씨는 “월세로 독립은 했지만, 돈 모으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휴학 중인 대학생으로, 현재 보증금 1천에 월세 50만 원짜리 반지하 자취방에 혼자 살고 있다는 이도영 씨는 방을 구하기 전까진 “솔직히 서울 시내의 자취방이 이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했다. 전역 후 학교 복학 전,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방을 구해야 했던 도영 씨는 “예산에 맞추려면 2명만 들어가도 비좁은 방이거나 반지하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조금 더 넓은 반지하를 선택”했다. 벌써 여름 폭우와 장마가 걱정이다.
교사로 일하는 전승혁 씨도 주거와 관련된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전교조 청년부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전교조 부산지역 청년 교사 6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공유했다. “교사라는 일의 특성상 어디에 발령 날지 몰라 대부분 자취를 하고 있었고, 높은 금리로 전세보증금 이자를 많이 지출하고 있으며, 월세로 사는 분들의 평균 월세는 43만원이었다. 관리비까지 합치면 60만원 내외로 주거비를 지출하는데, 이는 청년 교사 월급의 1/4에 해당한다.” 경기지역 청년 교사 천여 명의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거 형태는 월세가 가장 많았고, 월세 비용으로 40~60만원 사이 지출 비율이 62%로 가장 높았다.”
높은 전세와 월세로 인해 기숙사 등의 공간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교 기숙사는 임시적일 뿐 아니라 살면서 여러 불편을 겪는다. 대학생 김태현 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학교를 다녔고, 현재 대학에서도 기숙사에 살고 있어 “기숙사 생활만 총 8년째”라 소개했다. “기숙사는 완전한 주거 형태가 아니”라고 한 태현 씨는 “다양한 사람들과 한곳에 모여 사는 만큼, (통금이나 프라이버시 등) 다양한 불편과 때로는 인권침해를 겪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단점이 있음에도 기숙사에 대한 수요는 많다. “치솟는 집값을 청년들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태현 씨는 “이런 수요 불충족, 학생들 사이에 경쟁을 통해 기숙사에 입사하게 하는 건, 청년을 주거 사각지대로 모는 것”이라 꼬집었다.
전세사기 왜 아직도 구제방안, 해결책 못 내놓나?
많은 청년이 월급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내면서도 월세를 선택하는 과정엔 전세사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청년 김진호 씨는 얼마 전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겪은 걸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높은 월세 상황에 “대출해서 전세로 집을 구해 지출 금액을 줄이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월세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는 것. “전세로 들어갔다가 전세사기 당하면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힘들고, 정부는 근본적인 구제 방안을 내놓거나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렇게 힘든 상황을 계속 겪고 있는데, 정부 대책 마련은 여전히 더디다. 영욱 씨는 “여전히 경매가 진행 중인 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나 말고 전국에 있는 피해자들도 거의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시는 분도 있으실 테고, 임대주택 가시는 분, 월세로 가시는 분 등등. 정말 결정할 시기가 다가온다. 피해자들은 이렇게 시간이 없는데 국가는 계속 시간만 끌고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정말 되돌릴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혼, 양육, 노후? 다 계획할 수 없다
많은 청년들의 주거 상황이 불안정하고, 그래서 두렵다. 이는 미래 설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유리 씨는 “내 지갑에는 여전히 돈이 모이지 않는다. 서울 집값은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등골 시린 공포라고 하는데, 청년 노동자에게 내 집 마련은 판타지다. 결혼은커녕 노후를 계획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김진호 씨 또한 “집을 알아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월세방 하나 구하기도 힘든데, 내 집은 언제 사고 언제 결혼하지?”라고 질문했다.
전승혁 씨는 교직 3년차 A교사의 인터뷰 내용을 공유했다. “월급이 입금되면 통장 잔고는 금방 0원으로 수렴된다. 밀린 학자금 대출, 주택보증금 대출이자와 원금, 주택청약 적금까지 넣다 보면 영화 관람도 부담된다. 결혼 준비를 위한 저축, 자가용 구입, 부모님 용돈은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
아직 본가에서 독립하지 못한 대학원생 차송현 씨는 “본가에 산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축을 거의 하지 못한다”며 “연구보조원으로, 활동가로, 학과 조교로, 글쓰기센터 튜터로 일해서 번 돈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쓰인다. 가끔은 내가 왜 이토록 피곤한 삶을 사는지 생각한다. 미래에 내가 살 곳에 대해서 솔직히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종부세 대상 1%가 아닌 ‘청년의 82.5%’를 위한 정치를
증언대회에 나온 이들은 입 모아 안정적 주거, 안정적 노동, 안정적 임금을 이야기했다. 이도영 씨는 “시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청년주택에 실제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운 좋은 극히 일부”라며 “지금의 자취방보다 훨씬 질 좋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고 보편화되는 것만이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집의 본질은 살자고 짓는 거지 사고팔자고 짓는 것이면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김태현 씨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거권 확보는 생존의 요구”라고 했고, 차송현 씨는 “집이 상품이자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의 안전한 삶의 기반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정영욱 씨는 전세사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 이상의 이 사회적재난을 외면하지 말고 국가의 역할을 다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동규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는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를 개악해서 대한민국의 주택 정의, 주거 정의를 퇴행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택 종합부동산세를 작년에 몇 명이나 냈는지 찾아보니 41만여 명이었다.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반면에 청년 중에 세입자 비율은 작년 기준으로 82.5%다.”
서동규 활동가는 “서울에서 보증금이 5천만 원 이하로 적고 10평 미만으로 좁은 집의 평균 월세는 약 63만 원이 조금 넘는다. 1년이면 약 760만 원이다. 17억 원짜리 고가 주택에 사는 사람에게는 종부세를 면제해주고, 청년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월세 부담은 모른 척하는 게 정의로운 정치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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