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배움이 있다면, 여행은 끝나지 않은 거야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최종편: 부산 산복도로 근처 ‘우리 동네’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나는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로컬 여행에 몸을 맡겼고, 마을과 사람을 연결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하면 제법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해 온 여행의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타인을 궁금해하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볍게 초대하고 가볍게 초대에 응한다. 일단 움직여 시도해 본 후 경험을 기록해 둔다. 그게 다다.
오노미치와 부산을 잇고 싶다던 ‘말’이 진짜 ‘현실’로 일본인 친구 소라에게 ‘우리 동네’ 카페, 비건 식당, 맥줏집을 소개할 차례
일이 끊기고 몸이 묶였던 코로나 시절의 위기를 일본어 공부의 기회로 삼은 건 두고두고 자랑스러울 것 같다. 들을 준비를 갖췄더니 이야기로 가득한 친구들이 나타나 주었다. 일본 도시 재생의 대표 마을 ‘오노미치’와의 인연은 다시 생각해도 신비롭다. 마을에 작은 가게를 만들고 사람과 이야기를 모으는 젊은 이주민 친구들에게서 활력과 성실을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런던에서 함께 공부한 영화감독 ’토시’를 다시 만날 줄이야! 오노미치가 담긴 토시의 다큐멘터리 〈슈퍼 로컬 히어로〉를 서울의 작은 책방에서 상영한 기억은 난롯가에서 함께 귤을 까먹던 따뜻한 오렌지색으로 남아있다.
며칠 전, 오노미치에서 활동하는 여성 펑크 밴드 ‘오파이 캣츠’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싶다며 기획을 부탁해 온 것이다. 오노미치와 부산을 이어보자고 함께 외쳤던 ‘말’은 부메랑처럼 오고 있다.
딱 일 년 전 나의 생일날 시작된 인연, 일본인 친구 ‘소라’와의 작당에는 언제나 가속도가 붙는다. 자칭 사가현 ‘아리타'의 홍보대사인 소라 덕분에 지역 커뮤니티에 은은한 불을 밝히고 있는 단체 ‘토모스야'(灯す屋 )를 만났고, 일본에서 일본어로 공연까지 했다!
이번에는 호텔이 아닌 우리 집에 머물기로 했다. 긴 팔다리를 씩씩하게 움직이며 책방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소라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훤하다. “부산의 친구들 모두 만나고 싶어!” 소라가 말한 친구들은 우리 동네 카페 ‘유씨', 우리 동네 비건 식당 ‘오붓한', 우리 동네 맥줏집 ‘담담’에 가면 있다. 눈에 불을 켜고 딴 동네 로컬 여행을 쫓아다녔는데, 돌아와 보니 내가 사는 마을에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얼굴들이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
동네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 앞에서 외제차를 긁었더니∙∙∙ ‘행복과 파랑새’,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파랑새는 집에 있다는 불변의 서사를 경험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최근 20년 넘은 장롱 면허를 꺼내 운전을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인 술집 ‘담담' 앞에 주차하다가 외제 차를 긁고선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게에 들어갔다.
우선 앞뒤 차에 끼여 옴짝달싹 못 하던 나를 구해준 건 친구1이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긁힌 차의 사진을 찍고, 차주에게 연락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친구2는 천만 원쯤 나오지 않겠냐며 겁을 주었고, 친구3은 빠르게 차종을 검색해서 평균 수리비를 조사했다. 친구4는 하얗게 질렸던 내 얼굴에 대해 “자기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귀여운(?) 표정을 하고 가게에 들어왔다”는 농담으로 기분을 풀어주려 했고, 친구5는 피해 차주와 만나 보험사에 신고할 때 옆에 있어 주었다. 친구6은 우리나라 ‘보험’ 제도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전혀 마음 쓸 것 없다고 호방하게 웃으며 나의 사고 데뷔를 축하했다. 다음 날, 악몽 꾸지 않았냐며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준 건 내 표정으로 농담을 던졌던 친구4였다.
친구들의 다양한 반응을 일기장에 적으며 부서지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각자 다른 기질과 다른 경험으로 채워진, 모두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든든해서 행복과 파랑새를 떠올렸다. 실수를 통해 실력을 키워나가기로 결심했더니, 두렵기만 하던 운전에 자신감이 붙는다.
새로운 만남과 경험은 새 길을 연다. “만나고 만들다”라는 새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만들고 불러온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다른 음악가에게 협업을 요청해 한 곡 한 곡 배우며 만들어 나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응원과 후원을 받기 위해, 팬클럽도 (스스로) 만들었다. ‘만나고 만들다’의 앞 글자를 딴 #만만클럽, 멤버의 애칭도 정했다. ‘만'과 영어 ‘do’를 합친 ‘만두'라는 귀여운 이름이다. 60여 명이 낸 가입비 만 원씩을 모아 첫 곡 「빗방울 편지」를 완성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https://youtu.be/IAiOgvmSvyk?si=5UeSu3FLAEahLbZ1 음악뿐 아니라 사진, 영상,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등 다채로운 작업을 ‘만나서 만들어’ 나갈 작정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협업을 배우기 위해 시작했고, 시간과 몸의 근육을 다르게 쓰는 중이다. 막상 시작하니 상호작용은 험난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마주침 혹은 어긋남의 순간에 혼자 격정적이 되기도 한다. 「지금 여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순간주의자이지만, 괴로운 순간을 잘라서 그 단면만 보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멀리 보았다가 가까이 보았다가 자유자재로 시야를 오가는 조리개가 필수다. 다행히 인간은 카메라보다 훨씬 빠르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조절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새 앨범에 들어갈 「너와 나」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배운다는 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대.” 어디서 흘러온 문장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만나고 만들다’ 프로젝트가 엄청 새롭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돌아보면 배움과 같이 태어난 이후 줄곧 해 오고 있다. 어디선가 나에게 흘러 들어온 것, 내 안에서 시간을 보낸 것, 그래서 다시 흘러가는 것의 반복으로 내가 존재한다.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되고 싶은 노래』,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 「걷는 섬」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inesbriz
이 기사 좋아요 6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문화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