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진송. 2020년 7월 『문장웹진』에 「남자 없는 여자들」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시, 소설,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비평을 쓴다. 비평 콜렉티브 ‘누워있기협동조합’에서 1) 생활 학문으로서의 이론에 접근하기, 2) 지식과 문제의식을 난잡하게 공유하기를 목표로 재미있는 기획을 이어나가고 있다. ‘진진송의 블로그(blog.naver.com/zinsongzin)’를 운영 중이다.
직무 개발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처음에는 그런 나를 고용해줄 것 같은 업종 위주로 일자리를 구했다. 카페 서빙, 병원 데스크와 같이 젊은 여성의 종사 비율이 높은 저강도의 서비스업들 말이다.
그런 일들은 대개 최저 시급만을 지급했다. 그럼에도 생계에 큰 문제가 생길 정도로 궁핍함을 느꼈던 적은 없지만, 심지어 더 큰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던 적도 없지만, 일자리가 만족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을 할 때마다 이 일을 언제까지고 할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이 모골이 송연하리만치 생생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젊은 여자’가 아니게 된 후에도, 별다른 자격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젊은 여자’이기만 하면 채용에 유리한 이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일을 그만두고 또 쉽게 다시 구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었다.
내가 ‘언제고 나를 피고용인으로 다시 받아줄 따뜻한 품’으로서의 서비스업과 결별하게 된 것은 2021년,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부터다. ‘사무보조’라는 직무를 공고에서 보고 찾아갔으나 뜻밖에도 내가 맡게 된 일은 바이럴 콘텐츠를 작성하고 업로드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내가 이제껏 해 왔던 일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별도의 전문 지식이나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루에 6개, 2000자~3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작성된 포스트를 직접 제작한 이미지 10개와 함께 각 1개씩, 6개의 블로그에 나누어 업로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6개의 포스트는 유학원을 홍보하는 동일한 내용을 공유했다. 나는 같은 내용의 글 6개를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일주일에 30개씩 작성했다. 퇴사할 때 업무일지를 확인해보니 업무일지가 일별로 약 270개 가량 쌓여 있었다. 270×6= …… 1620. 유학원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똑같은 말을 하는 글을 약 1600개나 작성한 것이다.
그 어떤 의미도 생산하지 않는 이 무의미한 작업이 나를 위로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불쉿 잡』에서 세상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 이런 일자리들을 ‘불쉿 잡’(Bullshit job)이라고 칭한다. 전체 직업에서 이 ‘불쉿 잡’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약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불쉿 잡’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생산을 위해 동원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상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또한 ‘불쉿 잡’은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무의미 속에서 고통받게 하며, 동시에 그들을 먹여살린다.
서론이 길었지만 내가 소개하고픈 책은 『불쉿 잡』이 아니라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다. 이 책은 경영학 서적으로, 전문가(프로페셔널)의 의미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산업 환경에서 전문성을 통해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으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는 책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더 이상의 생산은 불가능하며 그 불가능만이 나를 먹여살리리라는 것이었다.
이때 지식 근로자들은 대학의 학자나 연구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수단으로 삼고 있는 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저강도 서비스업’ 역시 이 맥락에서는 지식 노동에 포함된다. 서비스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며, 효율적인 서비스 매뉴얼, 즉 효율적인 지식 노동을 위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의 생산 수단화는 생산성 증대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의 상황을 더 많은 생산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열쇠라기보다, 지금 인류의 일부(주로 북반구 거주자)에게 주어진 지나친 풍요, 숨이 막힐 정도의 번영 속에서도 아무 이상 없다는 듯 현 체계를 굴리기 위한 묘책에 가깝다.
“30년 전 우리는 컴퓨터가 회계 및 사무직 종사자들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 오늘날 자료 처리 장비에 대한 투자는 원자재 가공 기술에 대한 투자와 규모가 비슷하다. 다시 말해, 재래식 기계류에 대한 투자액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무직 및 회계직 종사자는 정보 기술이 도입된 이래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비율로 늘어났다. 그리고 노동의 생산성은 실질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있다.”(93쪽–94쪽)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은 기계보다 느리게 일하거나 서툴게 일하는 것을 넘어서 마치 시간을 낭비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 듯이 쓸데없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붓는다. 서비스업에서 뿐만은 아니다. 드러커의 책에서 언급되기도 했던 사무직은 주로 ‘9 to 6(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의 근무시간을 뜻함)’라고 불리는 ‘풀타임 잡’ 형태로 고용 계약을 맺는다. 이토록 긴 근무시간 동안 사무직 노동자들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인류로서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거나 기계보다 더 빠르게 일하는 법을 익히는 일은 드물다. 대신 그들은 고장난 기계처럼, 쓸데없는 회의와 회식, 성과 보고의 시간 동안 생산성이 같은 구간에 체류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그저 체류된 사회 밖으로 튕겨나오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다. 열심히 일하는 동료 노동자들의 눈을 피해 넘쳐흐르는 생산성을 몰래 처분하고 낭비하기 위해서.
그러니 내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넘쳐나는 것이 생산성이요, 필요한 것은 이것을 은밀하게 소모해 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낭비와 소모는 나의 천부적인 재능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생산성의 폭주 기관차를 ‘불쉿 잡’으로 멈추는 상상을 하며, 나는 한없이 무의미한 노동의 시간 속에서 인류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비대해진 생산성을 조용히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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