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다리 너무 아파요!” “선생님, 목 말라요~” “선생님, 화분이 쏟아졌어요….”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어린이들이 하나둘 주저앉았다. 어쩌자고 초등 3학년들을 데리고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생태 체험을 왔는지….
출근 길은 사람이 많으니 학교로 돌아올 때 어린이들이 만든 박스 피켓을 들고 지하철 캠페인을 하겠다는 나의 야무진 꿈은 다리 아프고 목마르고 짐이 주렁주렁인 어린이들에겐 무리였다. 어린이들이 들고 있던 피켓을 받아서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생수나 시원한 거 하나씩 먹고 여기서 쉬었다 갈게요!”
집에 돌아갈 에너지를 보충한 어린이들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우리 고장의 교통 중심지 신도림역에서 인증샷을 찍고 학교로 돌아왔다. 집에 있는 것보다 재미있을 거 같다며 한마당에 가겠다고, 반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함께 한 ○○이에게는 너무 미안했다. 이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교육농’ 누구나 농업을 사유할 수 있도록
나는 10여 년 전부터 학교 텃밭과 텃논을 매개로 한 생태전환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교육농 협동조합’ 활동가이면서 초등교사다.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동식물을 사랑하자는 단선적인 환경교육을 넘어, 생태전환교육은 더 이상 지금의 삶의 방식을 지속하여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지난 2월 발표된 서울시교육청 「생태전환교육 기본 계획」에서 생태전환교육을 “기후위기 비상시대,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개인의 생각과 행동양식 뿐만 아니라 조직문화 및 시스템까지 총체적인 전환을 추구하는 교육”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개념이 나오기보다 먼저, 이러한 교육을 위해 실천하는 교사와 시민들이 모여서 ‘교육농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유기농업의 중심지인 충남 홍성에서 농업과 교육을 연결해보고자 한 교사와 시민들이 ‘교육농’이라는 개념으로 2013~2014년 모여서 만든 단체이다.
학교 텃밭의 감자에는 OOO이 담겼다
넷플릭스 영화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 : 2020년)은 기후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토양과 농업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가 초고속 발전을 하며 파헤친 땅 속의 탄소가 밖으로 나왔고, 지구 온도 1.5℃ 상승을 막을 대안은 우리 발 밑 즉 땅 속에 있음을 역설한다. 탄소를 포집하는 토양, 탄소를 전환하는 식물 그리고 순환의 관점에서 농사를 짓는 세계인들을 영화로 만나며, 학교 텃밭이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배우는 야외 교실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학교 텃밭 작물로 세 가지를 꼭 심는다. 컬러 감자, 향기 나는 허브, 십자화과 무.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역시 감자이다. 교육농은 여건이 되는 한 무농약, 무비닐, 무화학비료를 실천하고자 한다. 우리 학교는 땅이 부족해서, 3년 전 내가 이 학교로 오면서 보도블록 위에 작은 틀밭을 만들었고, 3월 초에 유기농 퇴비를 뿌려둔다. 올해도 인터넷에서 구매한 강원도 왕산종묘의 컬러 씨감자 4종(수미, 자영, 홍영, 백작)을 관찰하고 감자의 역사를 공부한 다음 3월 말에 감자를 심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감자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남미 안데스 지역이 고향인 감자는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데, 영국에 전해져 악마의 작물로 배척당했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프로이센 왕국에서 감자 재배가 대중화되어 독일이라는 국가로 강력해졌으며, 상당수의 아일랜드 인구의 사망과 아메리카 이주의 원인이 된 ‘감자 역병’은 한 품종만 심어서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텃밭에서 식탁까지’ 음식 시민교육
향기 나는 허브 가운데 바질과 애플민트 등은 심고 가꾸기도 쉽고 차, 페스토, 피자 등 손쉽게 요리할 수 있어서 “텃밭에서 식탁까지(From Farm To Table)”를 실현할 수 있는 작물이다. 교육농 모임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농사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허브로 요리를 해먹는 ‘허브 데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이 채식과 퍼머컬처(Permaculture, 지속 가능한 농업과 삶의 방식)를 체험하는 활동을 해왔다.
십자화과 무는 2학기 주요 작물인데, 수많은 무 씨의 종류를 살펴보고 십자화과 작물의 다양성을 관찰하고 접하는 시간이다. 물론 무도 수확하여 피클이나 깍두기를 담아서 먹어보며 노동과 수확의 기쁨을 느끼는 음식 시민 교육을 병행한다.
이 학교에 오기 전에 있었던 서울천왕초등학교는 이런 교육농의 가치와 의미를 공부한 학부모와 주민들이 초등학교에서는 보기 드물게 학교에 ‘함께 배움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마을에서 생태전환교육과 교육농을 매개로 어린이-청소년들과 만나고 있다. 마을에 방치된 연못을 텃논으로 바꾸고, 봄에 손 모내기, 가을에 벼 베기 행사를 하고, 7~8월에는 논생물 관찰 수업을 열고 있다.
대재앙의 두려움보다는, 지구를 사랑할 시간이 필요해
최근에는 어린이들에게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 관련하여 “북극곰을 살려 달라”, “지구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교육에 대해 되돌아보고 있다.
계층, 지역, 세대의 측면에서 기후 불평등을 분석할 때, 어린이 청소년들은 ‘세대’라는 측면에서 기후 위기와 재난의 피해자인 셈이다. 대량 생산·소비·폐기, 신자유주의 각자도생, AI·금융·채굴 경제가 도래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탄소 중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울하고 절망적인 미래를 맞이할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과한 부담을 주는 것은 우울하고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4월에 열린 ‘기후 아기 소송’의 첫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서 원고 측 변호사는 “기후 위기와 재난의 일상화가 다음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환경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오히려 미래 세대가 에코포비아(환경 혐오 현상) 태도를 보일 수도 있음을 우려한 캐나다 벤쿠버 교육청은 “지구를 구해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아이들이 자연과 연결되고 지구를 사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교육 지침을 권고했다. 그레타 툰베리보다 어린 나이에 UN에서 연설한 세번 컬리스-스즈키는, 캐나다 선주민들 문화의 고유성과 아름다움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환경회의가 열리는 브라질 리우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여름이 되면 선생님이나 어린이들이 “감자 잎이 누렇게 되고 쓰러졌는데 괜찮나요?”라고 묻는다. 서늘한 것을 좋아하는 감자는 생을 마감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한살이의 끝을 하지 즈음에 겪게 된다. 전등불 밑에서 옹기종기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린이들이 감자라는 작물을 통해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지탱해 온 생명의 순환과 고마움을 서로 나누고 배웠으면 좋겠다.
옷장에서 꺼내 온 세계시민 교육, ‘옷되살림’
2022년에 하늘숲초등학교로 왔을 때, 어린이들이 심고 가꿀 만한 텃밭이 없어서 다섯 개의 1평 틀밭을 만들었고, 그 이듬해에 또 5개를 만들어 지금은 10개가 되었다. 자주꽃, 하얀꽃 피는 감자와 허브, 배추 등을 보면서 점심을 먹고, 교직원들도 텃밭을 거닐며 수다 꽃을 피웠다. 지금은 상자 텃밭도 많아져서 학교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한편, 식생활만큼이나 지구 온난화의 문제인 의생활에 관한 교육이 없었다. 티셔츠와 청바지 1개에 각각 2.6㎏ 및 11.5㎏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등 패션 산업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최대 10%를 차지한다고 하며, 이 수치는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몇 해 전에 명품 옷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팔리지 않은 B사의 비싼 옷을 몇 백억 원어치나 소각한 사건은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해부터는 한살림 활동가들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빠른 속도로 변하는 유행에 맞춰 의류를 대량 생산하고 폐기하며 심각한 환경오염과 낭비를 부르는 패션 산업) 문제를 생각해 보는 수업을 구안하여서 협력 수업도 하고 있다. 올해는 내가 맡고 있는 3학년 어린이들도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다시 재구성하여서 수업을 하고, 옷되살림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농 선생님들에게 이런 연대활동을 소개하니, 몇 곳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하여 지역 한살림과 연결해 드렸다.
투명페트병 재활용, 플로깅, 기후캠페인…생태전환 교육을!
하늘숲초 주변에는 교육 관련 협동조합이 또 하나 생겼는데, 생태전환을 주 활동으로 하는 ‘손길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이곳은 마을에서 재활용 순환 행사, 꽃차 카페, 플리마켓(중고장터) 등을 하면서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꾸준히 늘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 분위기에서, 학교도 재활용 페트병을 모아 물건을 만드는 업체와 연계하여 투명 페트병 수거 활동을 지난해부터 해오고 있다. 학교 곳곳에 걸려있는 포대에 “라벨 떼기, 비우기, 씻기, 구기기, 뚜껑 닫기” 등의 단계를 거쳐서 납작해진 페트병을 모으면 업체에서 가져간다. 전에는 몰랐는데 뚜껑을 닫지 않으면 이물질이 들어가기 때문에 납작해진 페트병의 뚜껑까지 닫아야 자원 활용이 용이하다고 한다.
또한 6학년을 중심으로 지구의 날(4월 22일) 즈음하여 미술 시간에 포스터 만들기, 디자인하기 활동과 연결하여 택배 박스로 손피켓을 만들어 천왕역까지 캠페인을 한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쭈뼛쭈뼛하고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했지만,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박수를 보내고 엄지 척 하는 것을 보고는, 용기를 내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도 지른다.
지난해에는 9월에 있었던 서울 기후행동의 날 행사 즈음하여, 교문 앞에서 등교 시간에 어린이들과 교장 선생님이 함께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였다. 형식적 봉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마을의 도로와 개웅산, 목감천 등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은 하늘숲초의 많은 학급에서 실천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다. 고학년보다 오히려 저학년이 플로깅 활동에 열심인데, 나이가 어릴수록 앎과 삶이 더 끈끈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실천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교육청과 학교장의 지원과 마을의 연대 또한 큰 뒷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교육의 사례를 여러 학교에 가서 발표하면 자기 학교에서도 해보고 싶다고들 한다.
나는 교사와 어린이들이 생태전환교육의 배경이 되는 “꽉 찬 지구 속에서 한 마리의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의 위치성”을 중심으로, 내 삶이 지구의 다른 생물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들을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 위기와 재난으로 대멸종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도록 가르치는 방향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생명과 이웃들과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교육이 기후 위기 시대 새로운 생태전환교육의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소개] 조진희. 생태, 젠더, 계급 문제에 관심이 많은 26년차 초등교사.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전문강사, 전교조 여성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교육농 협동조합’, 좋은세상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책 읽기와 교사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기록은 아름다운재단(beautifulfund.org) 지원으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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