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유가어라는 언어를 들어본 적 있냐고 물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니”라고 답할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계에서 카유가어를 현재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고작 20명도 안 되는 상태이며,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이제 2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카유가어는 이로쿼이 연맹 카유가족 언어로, 현재 사멸 위기의 언어이기도 하다. 비록 이렇게 아주 소수의 언어지만, 놀랍게도 이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 바로 〈팬시 댄스〉(Fancy Dance, 2023)다.
사라져가는 언어
미국 선주민 세네카-카유가족 일원인 에리카 트렘블레이 감독이 프로듀서로서 각본과 연출까지 담당한 〈팬시 댄스〉는, 작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의 주인공 릴리 글래드스톤이 주연을 맡았다. 릴리 글래드스톤이 연기한 잭스는 오클라호마주 세네카-카유가 보호 구역에서 자매인 타위와 그의 딸 로키와 살고 있는데, 영화는 타위가 사라진 이후부터 시작된다.
〈팬시 댄스〉의 주인공 잭스와 로키는 영화 속에서 종종 카유가어를 쓴다. 영어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잭스와 로키, 잭스의 남자형제 JJ 등 몇몇 사람들이 카유가어를 쓰곤 하지만, 사라져가는 언어인 이 카유가어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영화 속 이야기에서도 많지 않다. 잭스의 아버지이지만 백인인 프랭크도 모르는 언어니까, 가족끼리 통하는 언어도 아니다. 그렇기에 잭스와 로키 자매는 종종 둘만의 ‘비밀’을 나누고자 할 때 영어가 아닌 카유가어를 택한다.
영화를 만든 에리카 트렘블레이 감독은 세네카-카유가족 일원이었지만 카유가어를 쓰며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카유가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마지막 사람이 에리카 감독의 유년 시절 사망했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배우지도, 사용하지 못했던 에리카 감독은 그것이 너무 비극적이라 생각했고, 성인이 되어 따로 카유가어를 공부했다. 카유가어를 배우면서 감독은 이 언어를 유창하게 쓰는 젊은 세대가 있는 사회를 상상했는데, 그것이 〈팬시 댄스〉의 아이디어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사라지는 여성들
잭스는 자매인 타위가 사라진 후,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고정적인 직장도 없는 전과자인 잭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사람을 찾습니다’ 포스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잭스의 요청에 성심껏 응답하는 사람은 타위와 같은 스트립 클럽에서 일했으며, 잭스와 종종 섹슈얼한 관계를 맺는 샤파이어 뿐. 잭스와 타위의 형제이며 지역 경찰인 JJ 또한 타위를 찾고자 하지만 잭스를 못 미더워한다. 형제도 이런데 공권력은 오죽할까? 잭스는 경찰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걸 알기에, 거의 연락을 끊은 아버지 프랭크에게 연락한다. “당신은 백인이니까, 경찰에 말 좀 해 달라고.”
선주민 여성, 퀴어 여성, 전과자 등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잭스는 사회에서 별로 신뢰받지 못하는 존재다. 실종된 타위도 마찬가지다. 선주민 여성, 싱글맘, 성산업에서 일하는 스트리퍼. 타위의 사라짐은 사회의 문제나 놀라움, 충격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타위의 실종은 이후 백인인 프랭크의 ‘보호’ 아래 있다가 잭스에게 ‘납치된’ 것으로 여겨지는 로키의 사라짐과 크게 대비된다.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고 하는 말이 현실에선 얼마나 허무맹랑한 거짓인지, 왜 소수자 운동에서 ‘특별히’ 어떤 존재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외칠 수 밖에 없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내 선주민 여성의 실종/살해 사건은 엄청 큰 문제임에도,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선주민 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이를 MMIW(Missing and Murdered Indigenous Women, 사라지고 살해된 선주민 여성)이라 부른다. MMIW 운동에선 입을 가린 붉은 손이 상징으로 쓰이는데, 오랫동안 이들의 목소리가 침묵되었음을 의미한다.
2016년 미국 내에서 MMIW로 신고된 사람은 전체 5,712명이지만 실제로 법무부 내 실종자 명단으로 등록이 된 건 고작 116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선주민 여성들의 사망 원인 중 세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다름 아닌 ‘살해’다. 선주민 여성은 백인 미국 여성보다 폭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1.7배 높고, 강간을 당할 가능성은 2배, 살해될 확률은 3배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타위의 실종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엄마, 딸, 언니/동생, 여자친구 등을 잃은 많은 선주민 여성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함께 그 모든 여성들을 기억하자고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아름다운 동시에 힘차다. 잊고 나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자, 정말 구분할 수 있을까
〈팬시 댄스〉는 미국 선주민 여성인 에리카 트렘블레이 감독이 만들었고, 선주민 여성으로서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릴리 글래드스톤이 주연을 맡았다. 릴리 글래드스톤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주인공 로키를 연기한 이사벨 데로이-올슨 또한 캐나다 선주민이다. 이 두 사람의 이모-조카 케미는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더 있다. 잭스와 로키, 그리고 사라진 타위까지. 영화 속 여성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때로 ‘범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고, 이들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악한 존재인 건 아니다. 잭스, 로키, 타위는 어떤 지점에선 피해자이지만, 어떤 부분에선 범죄자 혹은 전과자이고, 또 어떤 면에선 생존자다. 이 위치는 수시로 변하고, 어떨 땐 그 정체성이 같이 존재한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헷갈리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타위는 왜 스트리퍼로 일했을까? 잭스는 왜 마약 유통을 했을까? 여자 셋이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선주민 여성은 왜 다른 인종 여성들보다 위험 노출 빈도가 높을까? 이것은 선주민 여성들에게 책임이 있을까? 역사적으로 선주민, 특히 선주민 여성들은 사회에서 어떤 존재였나? 이들의 사라짐과 죽음은 왜 침묵되었나? 그것은 과연 ‘정당’한가? 사라지고 살해당한 5,712명의 여성 중 ‘진짜’ 피해자는 116명이란 말인가?
영화는 잭스와 로키에게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을 선사했다. 그것은 선주민 퀴어 여성으로서 감독이 잭스와 로키에게 주고 싶었던 장면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화면 밖 우리들은 과연 잭스와 로키에게 어떤 미래를 선사할 수 있을까?
※ 참고 자료 베벌리 극장 홈페이지 “Fancy Dance (2024) - DIRECTOR Q&A”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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