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남선미. 플랫폼 회사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바탕으로 ‘기술-퀴어-텍스트’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1인 출판사 ‘화이트 리버’(White River)를 운영하며 기획과 글쓰기, 디자인을 겸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독자’가 되기보단 누군가와 함께 하는 ‘협업자’가 되고 싶어 1인 출판사를 시작했으며 영원히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인스타그램 @whiteriver.press.q
울면 안 돼, 프로가 아닌 것 같잖아
이러다 평생 만년 연습생으로 사는 거 아냐?
지금까지 직장 세 곳을 전전했다. 한 곳은 인턴, 다른 두 곳은 정사원이 되지 못하는 2년짜리 계약직. 세 군데 모두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였다. 내가 정사원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일을 못 하니깐. 무엇보다 말을 조리 있게 못 하고, 상사가 뭐라고 하면 툭하면 우니깐. 울면 목소리가 떨리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깐.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된 명함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고, 명절마다 정사원이 받는 명절선물과 계약직의 선물이 달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자신이 평생 만년 연습생 같았다. 이대로 데뷔도 못하고 영원히 계약직을 전전하는…
프로가 되고 싶었다. 프로가 된다는 건, 사원증을 목에 걸고 밖에 나갈 수가 있으며 부서와 직급이 적힌 명함을 친구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과 같았다. 남들은 쉽게 깨는 것 같은 퀘스트(온라인 게임 용어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뜻함)가 나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못 하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주 울지 않기 위해 연습했다. 볼펜을 물고 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발음 연습도 해보고, 왜 이렇게 감정적이냐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울어도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퇴근하는 길엔 자기계발 유튜브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딱 부러지는 사람으로 보여야 돼. 그래야 프로처럼 보이니깐.’
하지만 다짐은 번번이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기간과 함께 무너지곤 했다. 2년 계약직이지만 1년마다 팀장과 계약 연장을 할지 말지 논의를 해야 했다. “계속 할래, 말래?” 1년을 마무리 짓고 나면, 꼭 내게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2년 동안 한 번의 선택지밖에 없음에도.
상사가 폭언을 할 때, 상사가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그때마다 번번이 할 말이 있었는데 상사 앞에만 서면 눈물이 나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눈물 그치고 마음 진정되면 그때 다시 얘기해.”란 말을 들었다. 이것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는 건 프로페셔널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울면 감정적이란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깐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는 것처럼, 내가 정사원이 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수순 같았다. 봐봐, 산타 할아버지는 다 안다니깐. 네가 울어서 정사원이 못 되는 거잖아. 프로페셔널하지 못 하니깐 명함이 안 나오는 거잖아.
사회생활을 하며 눈물이 많은 내가 종종 수치스러웠다.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근데 난 상대가 조금만 다그쳐도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도 나를 안 뽑을 것 같았다. 울면 감정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무서웠다. 난 프로페셔널함과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더욱더 연습했다. 울지 않기 연습. 그리고 주술 호응 다 맞춰서 말 또박또박하기. 회사에서 선배와 차장은 팀장을 보고 ‘그날이라 예민해졌어. 조심해.’ 같은 말을 하곤 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더욱 각오를 다졌다. 생리 기간도 티 내지 말아야지.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각오를 다졌는데, 각오를 다지다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혼날 때마다 우는 나는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계약직인데도 그러면 어떡해. 우리보다 일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자기 비하는 계속됐다.
울어도 괜찮고 괜찮아서 울어도 된다면
나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불완전한, 어딘가 결함 있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최전선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페미니스트처럼 부조리한 일에 건의하고 노동 구조를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는데, 번번이 내 목소리는 팀장 앞에서 차장 앞에서 선배 앞에서 수그러들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엔 좀 모자란 사람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다 그래서 결국 번아웃이 온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말이 기를 쓰고 악을 써도 나오지 않아서. 그래서 너무 답답해서.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우니깐 너무 시원했다. 길 가다가 우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울지 않으면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내 눈물이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눈물이고 싶었다. 그럴 때 만난 노에미 볼라의 그림책은 나에게 울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지렁이가 운다는 게 이야기의 전부인데도 말이다. 스스로를 모자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힘을 내지 않아도 용기를 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오랜 시간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며 눈물은 나의 수치였다. 어딜 가나 우는 건 결함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은 책 안에서 난 자그맣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언젠가 이런 내용의 그림책을 동생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들었다. 프로가 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게 바로 페미니즘이란 걸 말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페미니스트를 만나 연대하면 할수록, 그 사람들과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슬퍼서 울어도 되고 기뻐서 울어도 되고, 울어서 우리가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천천히 페미니스트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말이다.
누군가와 연대하는 일이 울음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울보가 울보와 만나 연대하는 세계. 울어도 괜찮고 괜찮아서 울어도 되는 세계. 어쩌면 지금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누가 읽든 말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이야기를 잣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는 사람들의 연대. 그 공동체 속으로 가까이 훅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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