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쓰자’…무의식을 끄집어내는 글쓰기의 신세계[자기 이해 글쓰기-나를 찾아가는 여섯 개의 물음] 시작!삼십 대 초반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떠어떠해야 해”라는 원칙이나 이상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올바른 것, 해야만 하는 것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나의 감정이나 욕구를 억압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너무 오래 그런 삶을 살아서인지, 해야만 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구분조차 쉽지 않았다.
뭔가를 억압하면 그 억압에 맞서 뚫고 올라오려는 힘도 거세지는 것일까. 우울증으로 말라붙은 일상을 살면서도 무언가 내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곧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것들은 왠지 어두운 것, 위험한 것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것들을 더 세게 눌러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누르는 힘은 점점 약해져만 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우울한 마음... 그런 감정은 깊숙이 숨겨야 할 것이며, 설사 나만 보는 일기장이라고 해도 절대 뱉어내면 안 되었다. 그건 내가 그런 ‘몹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증거일 테니까.
그런데,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저자는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라고 했다. 그 미운 마음을 품고 사느라 고생한 나 자신을 용서하라고 했다.
이런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완전히 신세계였다. 저자가 제시하는 글쓰기 주제나 기법도 신선했다. 또한 책에는 치유하는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했던 이들의 글도 실려있었는데, 평범한 이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은 그 자체로 감동일 뿐만 아니라 읽는 나까지 치유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책에 온통 밑줄을 치고 읽은 뒤, 나는 저자인 박미라 씨가 진행하는 치유하는 글쓰기 워크숍에 참가했다. 12주간 글을 썼다. 일방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던 전 애인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며 분노를 뱉어내고, 셀프 인터뷰를 통해서 내가 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으며, ‘미친년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산발한 미친년이 춤추게 했다.
막상 꺼내고 보니 내 속에 있던 그 어두운 것, 위험한 것은 괴물이 아니었다. 아니, 거기엔 내가 모르고 있었던 뜻밖의 나, 이상이나 원칙 안에 가둘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의 내가 있었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벌벌 떨고 있는 아이가 있었고, 자살한 친구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20대의 내가 있었다. 그 모든 내가 ‘나’였으며, 나는 치유하는 글쓰기로 수많은 ‘나’들을 안전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무의식을 탐험하며 나의 솔직한 욕구와 감정을 마주하고 인정하면서, 나의 우울증은 서서히 치유되어 갔다.
무의식에 접촉하는 글쓰기: 욕을 한 바닥 써도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는 한 마디로 ‘글쓰기 심리치료’다. 미술 치료는 많은 이들에게 친숙할 테고, 독서 치료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글쓰기 치료는 알려진 바가 많이 없다. ‘글쓰기’라는 단어가 붙다 보니, 글을 잘 쓰거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글쓰기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강조해도 사람들은 참여를 머뭇거리곤 한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다.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만나는 글쓰기다.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도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거나 발표하지 않는다. 맞춤법이나 문장 호응이 맞는지 등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욕을 한 바닥 쓸 수도 있고, 물음표 수십 개, 느낌표 수십 개를 써도 좋다. 글쓰기 노트 안에서만큼은 어떤 것도 가능하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할 때 필요한 건, 오히려 이 글쓰기를 통해서 발견하게 될 뜻밖의 나, 낯선 나를 향한 호기심, 그리고 스스로에게만큼은 솔직할 수 있는 용기이다.
또 치유하는 글쓰기는 무의식에 접촉하는 글쓰기다. 프로이트나 카를 융처럼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심층 심리학자에 의하면, 우리의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의식보다 훨씬 큰 무의식이 우리의 정신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무의식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서 묻어둔 충격적인 경험, ‘부정적’이라고 딱지를 붙인 감정들(이기심, 질투심, 분노 등), 이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욕망이나 충동이 들어있다. 심층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의 더 많은 부분에 빛을 비춰 의식화할수록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 동안 몰입해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의식의 틈새를 뚫고 어느 순간 무의식의 이야기가 툭 하고 올라온다. 그때 알게 된다.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아, 난 이런 사람이었구나’...... 나를, 나의 경험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기도 하고, 부분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관점으로 내 삶을 조망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치유하는 글쓰기로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더 커지고 풍성해진 나를 만나게 된다.
100일간의 셀프 치유 글쓰기
요즘 나는 열세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100일간의 셀프 치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치유하는 글쓰기 실습서인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박미라, 그래도봄, 2021)을 등대 삼아 매일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고 인증하는 모임이다. 현재 〈시즌 3〉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치유하는 글쓰기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삶의 지혜와 통찰을 길어 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놀란다.
한 참가자는 “우리가 삶의 구원자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그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해 줘요.”라고 말한다. 치유 글쓰기는 전문가나 권위자에 기대지 않고도 내가 내 마음을 셀프로 돌볼 수 있는 좋은 도구다. 경험상 오래 쓸 필요도 없이 하루 딱 15분~20분이면 적당하다. 정말 가성비 좋은 치유의 도구이지 않은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페니베이커는 연구를 통해 “적어도 3~4일 동안 계속해서 하루 2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심리적 외상의 경험에 대해 글을 쓸 때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현저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을 입증했다.”(제임스 W. 페니베이커, 존 F. 에반스, 『표현적 글쓰기 : 당신을 치료하는 글쓰기』, 이봉희 옮김, xbooks)
『아티스트 웨이』라는 저서와 창조성 워크숍으로 유명한 작가 줄리아 캐머런은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는 우리가 어깨를 기대어 울 수 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친구와 함께 한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일상을 살면서 자꾸만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힘이 들거나 뭔가 혼란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내일 아침에 글로 써 봐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처음엔 ‘5분만 쓰자.’라는 마음으로 노트를 편다. 일단 시작을 하면 한 페이지는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복잡하게 헝클어져 있던 마음이 정리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인다. 개운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켜면서 ‘쓰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이해 글쓰기를 시작하자
이렇게 좋은 치유하는 글쓰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랑 나누고 싶어서,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내가 요즘 안내하고 있는 ‘자기 이해 글쓰기- 나를 찾아가는 여섯 개의 물음’을 소개하려고 한다.
‘자기 이해 글쓰기’는 치유하는 글쓰기 중에서도 ‘자기 이해’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다음 화에는 왜 자기 이해 글쓰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프로그램의 첫 번째 파트인 ‘강점’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필자 소개] 나랑. 치유하는 글쓰기 안내자. 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기자. 14년차 인터뷰 작가. 활동가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면서 늘 한 켠에서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담 심리 석사 과정에 들어섰다. 여성과 소수자들의 의식 성장을 도우며 그 길에서 나도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hello.writing.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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