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제일 재생력이 생기는 것 같은 거죠. 스스로가… 확실히 그 피해가 덜 오고.” (민수, 50대 여성, 대안농업 경력 5년, 제주 동드레우영공동체)
요즘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기후재난에 관한 뉴스는 일상적인 소식이 되었다. 농업에 있어서 기후재난은 단기적인 생산량 감소로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폭우와 가뭄이 빈번해지면 농업 생산량 감소로 인해 농민의 생존권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다. 토양의 유실과 훼손, 지역의 생물다양성 감소, 비인간 종의 생존권 문제 등이 함께 나타난다.
게다가 기후재난 이후 복원 과정에서 여성의 돌봄 노동, 가사노동, 재난 예방 및 회복을 위한 노동이 계속해서 투여되지만, 이러한 성별화 된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에 대응하려면 단순히 과학기술을 통한 기후 예측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 간 기후재난 위험도의 차이, 농업 간 기후재난 예방을 위한 환경의 차이 등 구체적인 차이를 논의하고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농업의 경우, 기후재난 이후 생산량 급감에 대한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지원정책을 넘어서 토양의 회복과 작물의 생물다양성,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농업 대응, 먹거리와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위한 먹거리 사슬과 먹거리 체계 수립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후재난으로 인해 발생했음에도 경제적으로 환산되지 않은 토양 손실, 생물다양성 및 종 감소, 먹거리와 농촌의 비순환, 농업 인구 감소 등 사회적, 생태적 현상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연결망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 농업 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농민들은 일상화된 기후재난으로 인해 농업 생산량과 소득 감소뿐만 아니라, 농사 노동 시간의 증가, 병해충으로 인한 감염위험, 근골격계 통증, 피부질환, 온열질환 등의 건강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래 병해충의 증가로, 한여름에도 온몸을 옷이나 천으로 감싸고 일해야 함에 따라 온열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가뭄에는 작물에 물을 대어주어야 하고, 폭우에는 물을 빼주어야 하며, 기온 차로 인한 냉해에는 부직포 같은 천을 덮어주는 등 기존에 하지 않아도 될 농업 노동을 추가로 투여하고 있다. 문제는 일상화된 기후재난에 대해 정부 정책이나 지원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후재난 시대, 농업의 대안으로 떠오른 농생태학 운동
유럽 이외 국가 및 지역에서도 다양한 농생태학 시나리오 연구를 통해 농생태학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중요한 방안임을 밝혀 왔다. 그렇다면 과연 기후위기 시대 한국 사회에서 농생태학 실천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먼저 농생태학은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형성된 ‘현대 산업형 농업’이 환경 위기를 가속화하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리고 거대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생태 논리를 기반으로 생산 과정을 재구성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농생태학은 유기농업, 퍼머컬쳐 등을 포함한다. 유기농업이 농업과 농법에 있어서 생태적이고 유기적인 방식을 추구하고, 퍼머컬쳐는 생태적인 농업 기술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과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농생태학은 기존 농업의 지배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과정과 결과 모두 정의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담론이자 과학이며 운동이자 실천으로써 계속해서 변화하고 경합하는 포괄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상주와 제주의 여성농민 공동체에서는 무슨 일이…
농생태학 운동은 2010년대 이후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자 여성농민의 식량주권 운동으로 전개되어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농생태학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다.
상주와 제주 지역 여성농민 공동체는 다양한 농생태학 농법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크게 풀을 통한 땅 살리기, 섞어짓기, 해충기피 등을 통한 생태계 다양성 증진, 토종종자와 공동체의 전통지식 활용 등을 통해 기후재난 속에서도 일부 생산성을 높이고 있었다. 먼저 농생태학 실천으로써 풀을 통한 땅 살리기의 경우 잡초가 나지 않게 보리나 다른 작물을 밭에 함께 심는 동시에 천연비료로 활용하거나 비닐 대신 풀 멀칭을 하는 등 풀을 통해 땅의 회복을 추구하고 있었다.
“(농생태학 농법을 한) 밭에 검질 메기도 되게 수월해 가지고 잘 나오고… 어쨌든 제초제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밭 생태계는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영, 50대 여성, 대안농업 경력 30년, 제주 동드레우영공동체)
두 지역 공동체의 여성농민 생산자들 대부분은 무제초, 무농약이란 원칙을 바탕으로 풀을 천연비료로 활용하고 비닐 대신 풀 멀칭을 통해 땅이 살아나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땅이 살아난다는 것은 미생물과 유기물이 증가하여 땅이 부드러워지고 물 빠짐이 좋아지는 등 땅의 생태계 다양성이 높아지고 비옥해져 농작물이 잘 성장하는 과정을 말한다. 땅 살리기는 기후재난의 회복력과도 연결되고 있었다.
“보리를 싹 뿌리고 그 보리 사이에 생강을 심은 거죠. 생강이 이제 촉이 틀려면 한두 달 정도 있어야 되니까 한 달 반 그 사이에 보리가 마이 크거든요. 보리 밑에 생강이 있는데 이것을 이기고 나가는 거예요.” (은정, 60대 여성, 대안농업 경력 18년, 상주 봉강공동체)
상주 봉강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은정 씨는 보리 사이에 생강을 심어서 보리가 생강이 크는 동안 작물을 보호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천연 퇴비가 되는 섞어짓기 농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서늘한 환경을 좋아하는 생강이 초기에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리는 그늘과 보호재 역할도 한다. 작물의 성질을 잘 활용한 섞어짓기는 땅을 살리는 동시에 작물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여성농민들은 대부분 농생태학을 오랫동안 해온 밭이 장마로 인해 물에 잠기거나 가뭄으로 인해 비가 내리지 않을 때 다른 밭들에 비해 작물이 더 잘 버티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생태학 실천의 방식은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즉 농생태학은 지역화되고 토착화된 방식의 농업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농생태학의 실천 방식은 자신의 논과 밭의 각기 다른 생태계의 조건에 맞게 농법을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선 공동체 경험과 토착적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현재의 관행 농업은 땅이 척박해지더라도 더 많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투입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해야만 투입한 비용만큼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나 고투입 관행 농업은 생산 과정에서 결국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이는 다시 기후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와 달리 농생태학을 통한 땅의 회복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집해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갖춘다.
농생태학 실천이 미래 농업이 되도록 설계해야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들은 공동체를 통해 농생태학 농사 정보와 기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같은 기후와 토양 조건을 가진 지역 내에서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 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다양한 세대가 함께 공동체 활동을 함으로써 세대 간 교류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모임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개 채종포를 공동으로 경작하면서 지식과 기술을 교류하거나, 정기적인 회의, 교육, 꾸러미 작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농생태학 실천에 관한 경험과 지식, 기술을 실천하고 나누고 있다.
지역 공동체의 경험과 지식, 기술은 전국 단위로 모여 농생태학 교육, 생산자 교육, 사업 운영 회의 등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 모임과 회의, 교육을 통해 각 지역의 실천 내용과 성과, 어려움 등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언니네텃밭은 농생태학 운동의 장기적인 비전과 방향성을 고민하고 운동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 사례로 농생태학 실습소와 농생태학 학교 운영, 농생태학 실태조사 및 연구 등이 있다. 농생태학 실습소로 정해진 지역 공동체는 1년간 농생태학 실천을 통해 개인의 농사 경험을 기록하고 실험한다. 이러한 기록과 실험은 다시 전국 단위인 여성농민회와 언니네텃밭 생산자 교육을 통해 공유되고 확산된다. 또한 농생태학 실천을 개인 단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제도화하기 위해 농생태학 참여인증 같은 논의를 확장하고 있었다.
소농들의 농생태학 실천이 산업적 탄소배출 규모에 비해서 아주 작은 비중이지만, 기후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즉 소농의 개별 대안적 실천이 공동체 활동으로 확산되고, 먹거리 시민으로써 소비자와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간다면, 장기적으로 기후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힘과 회복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농생태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적, 지역적 차원의 농생태학 기반 다층적 농업 지원정책이 요구된다. 특히 기후재난으로 인한 농가 피해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되, 농민을 단순히 기후재난의 피해자로 설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농생태학을 통해 탄소를 감축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보고 이에 대한 지원체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농촌의 세대 재생산을 위한 농생태학 교육제도 및 농생태학 실천들이 농촌 사회에 정착하도록 다양한 제도와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위 글은 2023년 한살림 생명협동연구 공모 사업 지원으로 김신효정, 홍자경이 수행하고 작성한 ⌜기후재난과 땅의 회복: 여성농민 공동체의 저항과 농생태학 실천」 연구 결과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필자 소개] 김신효정. 여성학과 개발협력을 전공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기후위기, 여성농민운동, 아시아, 지속가능 농업과 먹거리, 에코페미니즘 등이 연결된 연구와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책 『씨앗, 할머니의 비밀』,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등을 썼다.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기록은 아름다운재단(beautifulfund.org) 지원으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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