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미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가?

다른몸들이 읽는 다큐멘터리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

조한진희(반다) | 기사입력 2024/09/04 [17:09]

누구도 미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가?

다른몸들이 읽는 다큐멘터리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

조한진희(반다) | 입력 : 2024/09/04 [17:09]

[기획의 말] 주류 질병 서사를 비판하고, 새로운 질병 서사를 쓰며 질병권(잘 아플 권리) 운동을 하는 ‘다른몸들’에서 미디어 속 질병과 장애를 이야기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은 얼마나 가깝고 멀까? 우리는 둘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까? 무엇이 ‘정상’인가는 논쟁적 주제이고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여전히 자주 간과된다. 주지하다시피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여성, 특정 종교가 있거나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은 과거 비정상 혹은 ‘정신병자’였다.

 

또 한편 우리는 동일한 환경에서도 다른 감각을 느낀다. 여성과 남성은 같은 밤길을 다르게 걷고,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는 화장실 앞에서 다른 고민을 한다. 밤길을 걷거나, 화장실 앞에서 긴장감을 느끼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은 ‘비정상’일까? 긴장과 해방감을 어느 정도로 느끼는 게 정상인지 혹은 비정상인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 마르크 슈미트(Marc Schmidt) 감독의 다큐멘터리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영문 제목: If only night wouldn't fall, 제작국-네덜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상영 시간 82분, 2023년, 배급-Andana Films) 중에서.


마르크 슈미트 감독의 다큐멘터리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은 ‘웰빙 라이프 스타일 연구 프로젝트’를 따라간다. 이 프로젝트는 노르웨이, 네덜란드, 미국에서 진행되는 정신건강 증진 프로젝트로, 인간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호기롭게 광고한다. 누구도 아프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개인의 심장박동수, 수면 시간, 집 온도와 습도, 불안을 느끼거나 부정적 생각이 드는 빈도 등을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스마트홈 시스템 등을 통해 낱낱이 수치화한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네델란드 청년은 이 프로젝트에 의해 그가 이동하는 속도와 공간부터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속도와 빈도까지 모두 기록된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긴장하고 불안했는지, 별다른 의미 없이 개수를 세어보고 있지 않은지, 쉽게 겁에 질리는지 등의 질문을 일상적으로 받고 기록하며, 주기적으로 뇌 사진을 찍고 의사를 만나 상태를 점검 받는다.

 

영화에 나오는 열 살 남짓한 노르웨이 어린이는 잠드는 데 오래 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든다고 말한다. 그의 일상은 ‘문제적 증세’로 데이터화 돼서 집적된다. 불안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조기 개입’ 차원이다. 그 어린이는 교사에게 말한다. 자신이 잠드는 데 오래 걸리고 자주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과 같은 팀이 되고 싶다고. 아마도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웰빙 라이프 스타일 연구 프로젝트’는 모든 ‘비정상’을 제거해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인류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부정적’이라고 느끼는 순간을 모두 제거한다면, 삶은 ‘긍정’으로 가득 차오르고 행복으로 충만해지는가? 그런 삶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인가?

 

▲ 마르크 슈미트(Marc Schmidt) 감독의 다큐멘터리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영문 제목: If only night wouldn't fall, 2023, 배급-Andana Films) 중에서. 이 작품은 제26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앞서 말한 노르웨이 어린이의 불면과 불안을 다시 생각해 보자. 자신의 특성이 사회적으로 ‘문제’로 인식되거나 병리화 될 때, 자기 낙인화가 생성된다. 사회가 그 어린이의 특성을 ‘문제’라고 규정하지 않고 ‘고유성’으로 수용했다면 어땠을까? 자기 낙인화가 발생했을 때 정신건강은 더 쉽게 손상된다. 바로 이 지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해당 건강 프로젝트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정한 현상이 몸에서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구조적 맥락을 살피기보다, 그저 비정상적 ‘증세’만으로 포착한다. 그것을 생의학적으로 치료하거나 교정하려고 드는 것은 ‘질병의 개인화’를 심화시킨다. 건강을 개인 몸의 세포나 숫자에 한정시키며, 건강의 사회성과 연대성을 휘발시키는 것이다.

 

사회는 건강을 강조하며 개인의 몸을 정상과 표준에 맞추기 위해 치료와 교정의 잣대를 끊임없이 들이대고, 그럼에도 치료나 교정이 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낙오된 몸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다른몸들〉에서는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잘 아플 권리)이 보장 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아플 때 의료적 개입이나 치료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파도 괜찮고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말이다. 의료는 아픈 몸을 ‘실패한 몸’이라고 끊임없이 규정하지만, 우리는 치료되지 않는 아픈 몸은 ‘정상’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다른몸들〉의 구성원이자 조현병이 있는 동료 박목우 님은 수시로 환청을 듣고, 오랫동안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환청이 사라지지 않는다. 20년째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환청은 ‘실패한 몸’의 증거가 된다. 그는 〈아픈 몸 무대에 서다〉(다리아 외, 오월의봄, 2022)에서 말한다. “내가 듣고 있는 목소리가 환청이라는 것을 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는 정신장애운동의 ‘목소리 듣기 운동’(Hearing Voice Movement)과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며, 정신장애인은 ‘비정상적으로 정상적인 존재’라는 주장이다. ‘미친 사람’은 ‘미친 사람’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 살아간다. 마치 어떤 농인들은 인공 달팽이관 수술을 원하지 않고 고유한 세상을 살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난해 <다른몸들>에서는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인지증(치매) 당사자 활동가이자, 일본 오렌지도어(Orange Door) 대표인 단노 도모후미 초청 강연을 했다. 그는 도요타 자동차의 잘나가는 세일즈맨으로 살던 30대 후반, 초로기 치매를 진단받았다. 좌절과 혼란의 시간 끝에 자신의 질병을 수용한 직후부터, 인지증 당사자들의 인권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 2023년 10월 27일 <다른몸들>에서 개최한 일본 인지증 활동가 단노 도모후미 초청 강연 모습(가운데).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인지증(치매)과 함께 온전한 시민으로 존재하기”라는 주제로 이야기하였다. (다른몸들 제공)


강연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인지증 당사자를 위한 상담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지원 활동을 소개하면서, “인지증에 걸려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지증에 걸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지증에 걸렸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날 우리가 마지막에 나눴던 대화가 당시 강연에 참여했던 활동가와 연구자들에 의해, 빠르게 한국 사회에 퍼지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안심하고 치매에 걸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웰빙 라이프 스타일 연구 프로젝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카피가 있다. “인간에겐 주체성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나 건강한 질병 없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유토피아는 누구도 아프지 않고 사회가 설정한 ‘정상적인 표준의 몸’으로 교정된 몸만이 가득한 세상인가?

 

그러니까 불안하지 않고 안정된,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밤이면 금세 숙면에 들고, 아침이면 빠르게 일어나서 학교와 직장으로 정시에 달려가서, 성실하게 요구를 수행하는 생산적인 몸들만이 가득한 세상 말이다.

 

질병권 운동에서는 이런 시도와 욕망을 반대해 왔다. 오히려 개인의 고유성이 존중받고 건강의 연대성이 살아 있으며, 아프거나 미쳐도 미안해하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와 함께 치료를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왔다. 차별이나 낙인 없이 잘 아플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해방된 미래에 가깝다.

 

‘웰빙 라이프 스타일 연구 프로젝트’의 목표는 ‘누구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순백의 결점 없는 정신건강을 장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하거나 불안해도 괜찮은 세상, 미쳐도 괜찮은 세상이다. 그 프로젝트 주장대로 “인간에게 주체성과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우리는 개인의 불안 수치를 통계화하고 통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빠르게 뛰는 심박수를 비정상으로 낙인찍으며 약물이나 상담으로만 조정하는 아니라, 개인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를 ‘주체적’으로 바꿔나가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필자 소개]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고, 『돌봄이 돌보는 세계』,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비거닝』 등을 함께 썼다. 다른몸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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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4/09/13 [14:39] 수정 | 삭제
  • 인지증에 대해서나 정신장애, 자폐 등에 대해서 더 많이 대중적으로 정보가 알려지면 좋겠다.
  • ㅇㅇ 2024/09/10 [17:34] 수정 | 삭제
  •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사람들과 같이 보고 싶은데...
  • Dalia 2024/09/10 [15:33] 수정 | 삭제
  • 글쓴 분의 관점이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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