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독자의견

기사본문으로 돌아가기

  • Tilly 2003/10/13 [02:10]

    수정 삭제

    갯살림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연재 기사 즐겁게, 꼼꼼히 보았습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무엇 보담도 갯살림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redArrow 2003/10/13 [05:10]

    수정 삭제

    새만금 벌써 죽어가는데..ㅜㅡ.
    아 정말 열받죠.
    삶의 터전이자 자연의 보고인 갯벌을..
    들인돈이 아깝다고 더 훼손하고..

    정말 무슨 생각으로 하는건지..
  • 블루 2003/10/14 [21:10]

    수정 삭제

    새만금의 여성들
    갯벌의 여성들이라고 해야하나요?
    기사를 통해서 갯벌의 여성들의 경험과 노동과 투쟁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새만금 공사는 중단되고, 바다와 갯벌은 살려야 한다는 메시지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연재기사 잘 보았어요


  • 미완 2003/10/18 [04:10]

    수정 삭제

    빚지며 사는 삶
    자연과 닮은 여성, 자연은 자궁처럼 모든 것을 키워낸다.
    그점에서 자연은 그것을 모태로 인간인 여성과 남성,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갈 터로 존재하고 있다.

    자연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 공존을 위한 생각의 전환이
    더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땅을 아스팔트로 막아버리고
    산을 깍아내리고 갯벌과 물길을 막아 인간이 살 땅을 늘린다 한들
    개발이라는 괴물을 만족시킬 방법이 있겠는가.
    소통없이 개발이라는 한쪽 방향으로의 추구가 먹히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는가

    이익창출이라 한들 자연만큼 영원한 것이 있겠는가
    자연에 비하여 하잘 것 없는 한시적인 이익을 위해
    인간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고 자연의 이양권을 쥔양
    거스려 짓밟으려는 집착과 우월성에 끝이 있겠는가
    덜함이 없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서있고 누리고 있는
    주변을 보면 알것이다.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그 배수가 아닌 몇곱절의 파괴를
    자연을 향해 해야 하는 인간의 생활권, 항상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가.
    결정권을 자연으로부터 이양해 오는 과정이 평화와 공존이었는가.

    원주민에게 몇푼 쥐어주고 그들을 장구한 세월동안 먹여주고 입혀준
    자연을 치라고 한쪽 손에 칼을 들려주는 것이 지역 발전인가
    실업을 줄였다고 말할 수 있겟는가. 일시적인 일자리가 아닌
    끊임없이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겠는가.


    그들의 눈을 막고 귀를 막아 자연과의 소통을 차단한 오염물질은
    자연의 심성과는 먼 인간의 악마적 본성이다. 자신만의 순이익을
    계산해 내게 하여 반목하게 하는 개발과 그에 따른 번지르르한
    이익창출의 유혹이 뱀의 혀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한 이미 특혜라면 특혜일 수 있는 가진자들의 방관은 새만금이 없어지던
    아니던 상관없는 수구집단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며 여전히 가지지 못한자들의
    생존 몸부림은 걸림돌로 치부되어 치워버려야 하는 또하나의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새만금 갯벌을 메우기 위해 그 주변 해창산을 깍은 것은 또하나의
    폭력이며 파괴다. 이렇게 줄줄이 엮이며 끊이지 않는 파괴의 연속을
    잔잔한 물위에 이는 작은 파문이라고 여길 수가 없다.
    멈출것이라 말 할 수가 없다. 이 기세로라면 이러한 인간의 오만으로라면
    일파만파로 결국 후손들에게 죽음의 땅을 물려줄 수 밖에 없다.

    노을이 지는 드넓은 갯벌이 도시인들에게 녹녹하며 배부른 낭만적 배경이라면
    그곳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생활터전이며 목숨줄이라는 것이다.
    하루 갯벌체험으로 자신의 즐거움만을 채우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이 그렇게 하잘것 없는 것이겠는가

    이렇게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일 것 같았던 사람들속에서
    작은 움직임 하나. 시작은 미비했으나 그 파문은 멀리 멀리 퍼져
    전세계적으로 유일무일한 삼보일배를 이끌어 내었다. 그것을 통한
    저항의 힘, 각성의 힘, 분명 그들은 자연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연과 닮은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피흘리며 마비되어 가는 그들의 감각을 일으켜 세운 자연의 울음소리...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그힘은 양심이었으며
    굽힐 수 없었던 것은 자연을 향한 인간을 향한 그들의 넓고 깊은 사랑이었다.
    몸으로 정신으로 보여준 자연을 향한 겸손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 새만금만큼의 갯벌이 있는데다가 나를 그냥 아주 이주만 시켜줬으면 쓰겄어. (아, 새만금..) 갯벌만큼만, 이 뻘이 있는 데만큼만. 거그다 나를 이주만 시켜주면 나는 더 이상…만약에 그럴 경우에는 현금도 필요 없고…진짜 나는 그러고 싶어. 그래 가지고 내가 죽을 때까지 바다에서 그냥 조개 잡고 그것 먹고, 나 그러고 살고 싶어. 아무 필요 없어. (…) 진짜 바다하고 같이 뭐 대답은 못 들어도 그냥 바다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냥... 진짜 그러니까 나는 그러고 살고 싶어서...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속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E씨)

    이처럼 자연과 하나되는 마음이 있을까.
    어떤 거창한 말도 이 여성의 말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이것이 자연과 코드가 맞는 여성의 심성이다. 동화된 그자체로
    자연이 되어 버린 여성...

    그러한 여인들이 있는 곳 새만금 두레마을과 해창산 하리마을
    몸으로 '생명살리기 운동' 으로 전개하는 투쟁..우리는
    앉아서 그들의 절실함을 얼만큼 느낄 수 있겟는가.
    바라보며 얼만큼 공감할 수 있겟는가.
    우리모두는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관심조차도 두지 않는다면 그 빚을 어찌 갚을까..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이미 새만금은 시뻘건 흙에 덮혀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약진(?)하는 건설의 현장으로 뒤바뀌어,
    죽어간 생명체의 비명과 그곳을 터전으로 한 사람들의 한숨은
    들리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것도 소외시켜서는 안되는 공존은 정말 어려운가.
    개발의 주도자들이 진정 고뇌하며 살펴보앗는가 묻고 싶다.
    과업이 뭐 그리 중요하관대 업적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국책으로
    세습되어 대업이라 명명했는가....


  • 이얌 2003/10/18 [18:10]

    수정 삭제

    감동적인 기사네요.

    예전에 새만금에 대한 TV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보다 더 감동 받았습니다.
나름 빅뉴스 아주의 지멋대로
고수와의 만남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퇴비 제조기를 손수 만들어야 하는 이유
메인사진
. ... / 이민영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도망은 ‘도망이나 치는 것’일까?
메인사진
. ... / 최하란
반다의 질병 관통기
질병과 장애는 구분되어야 할까?
메인사진
. ... / 반다
독자들의 영상 메시지
메인사진
일다소식
[뉴스레터] 노메이크업, 찌찌해방…‘#탈코르셋’ 침묵을 깬 여성들
[뉴스레터] ‘페미니즘 교육’ 정말 준비됐나요?
2018년 5월 <일다> 독자위원회 모니터링 모임이 열렸습니다!
[뉴스레터] 한국정치는 ‘50대’ ‘남성’이 과다 대표된 게 문제죠
[뉴스레터] ‘성 긍정주의’ 페미니즘에 날개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