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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랑 다로랑> 경계에 서 있을 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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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2/08 [17:10]  최종편집: ⓒ 일다
 
iamgreen 10/12/08 [20:48] 수정 삭제  
  이번 만화 역시 공감 공감 ㅎㅎ
있는 그래도 보기에는 아프지 않지만 심적으로 괴로울 수도 있는 데 말이죠 ㅎㅎ
당근 10/12/08 [21:13] 수정 삭제  
  루이보스 티가 다 떨어졌어요 아아........... 포악해지고 있다 어쩌지;;;;;;;;;;;;;;;
차미소 10/12/09 [00:22] 수정 삭제  
  결명자차 드셔보세요 색깔도 루이보스랑 비슷하고요^^ 결명자차는 눈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하니 만화 그리고 공부 하느라 피로해진 눈에 도움이 될 거에요 @.@
당근 10/12/09 [12:19] 수정 삭제  
  결명자차는 식수로 마시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차'라는 느낌이 안 들어서;; 허허;; ㅠ,ㅠ 왠지 '차'를 마시면 안온해지는 느낌이 있더라구요 *-_-*
뽀로로 10/12/15 [09:19] 수정 삭제  
  기준은 사람을 편리하게 구별하기 위해 멋대로 그어놓은 금 같아요...
재미있어요 10/12/17 [10:39] 수정 삭제  
  완전 공감했어요..ㅎㅎ 특히나 핸드폰 밧데리에 비유하신 부분에서 빵 터졌어요. 전 제가 저혈압이라서 이런 게 아닌가 추측만 하고 있답니다.-_-ㅎㅎ
11/03/18 [02:38] 수정 삭제  
  저도 체력이 부실해서 이래요. 당근님께서 생각하시는 병명이 뭔지 궁금해요.
베지밀 12/01/06 [02:36] 수정 삭제  
  걱정마세요. 재미있어요. 항상 감사하게 보고있어요^^
ㅇㅅ 13/02/24 [22:06] 수정 삭제  
  사실은 "이 정도로 장애인이라 불리기엔 억울하다"는 건 아니십니까.
성골 진골처럼 장애인이 뭐 낙인을 뼛속에 지니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비장애인 환자 아픈 사람 등등과 전혀 다른 종족도 아닙니다
당근 13/07/15 [19:14] 수정 삭제  
  그렇게 이해하실 수도 있다는 점 압니다. 다만 저는 장애학을 공부하게 된 입장에서, 나 정도 되는 컨디션 가지고 감히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내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미안함을 늘 갖고 있습니다. 퀴어 위치에서도 그런 마음이 있는데, 제가 바이이고 그간은 남자와 사귀어온 기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나는 당장 혐오폭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는데 내가 감히 퀴어란 이름을 내가 써도 되는걸까? 이런 마음이 한켠에 늘 있었어요.


무슨 뜻이냐면, 학계에선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처럼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있는 존재들을 정치적 저항과 진보의 아이콘으로 도식화하는 경향이 좀 있거든요. "나도 소수자다!"라는 외침이, 소수자와 연대하기 위해 나/너의 구분을 버리는 긍정적인 움직임으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 나 자신이 어느 정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억압과 차별과 폭력을 망각하고 나와 너의 위치성의 차이를 삭제할 위험이 있는 나이브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위험도 항상 성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완전히 장애인이나 퀴어라는 소수자 위치에 놓였을 때의 억압과 폭력과 불편함을 매일 겪지 않으면서도 내가 감히 이런 소수자 이름(낙인이기도 하지만 소수자 공동체에겐 '우리'의 이름인)을 좋은 것만 갖다 쓰듯 갖다 써도 되는가 하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외관상 비장애인으로 보이기에 자의반타의반 패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력이 남아있을 땐 건강한 비장애인처럼 움직이고 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에너지가 훅 떨어지면 집까지 걸어갈 수도 없게 되기도 하고, 어느날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까지 가져가는 일이 고되게 느껴져 음식을 질질 흘리기도 합니다. 심한 통증으로 며칠 끙끙 앓을 때도 있고 두통으로 눈이 안 보이기도 합니다. 비가시적인 만성질환과 변동하는 컨디션을 갖고 있기에 저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어느 한쪽에 제가 안착해있다고 느끼기보다는 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경계적 존재들을 장애학 논의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장애학자들(주로 미국) 사이에서 꾸준히 이론화되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저 만화를 그릴 당시엔 장애학 및 장애운동을 모르는 사람들, 주로 비장애인들에게도 이 만화가 쉽게 이해되도록 하고자 '정상인' '비정상인'과 같은 표현을 썼던 점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정상인'은 당연한 듯 정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로즈마리 갈란드-톰슨의 the normate 개념(우리 말로 하자면 '정상'이라는 위상을 차지한 사람들 정도로 풀어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을 가리킨 말이긴 했지만, 항상 이런 논의를 만화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느라 많은 내용이 여백 뒤로 사라지곤 했지요.


지금은 눈이 더 나빠져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어 만화를 그만두었습니다만 아직도 제 만화를 보고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있다는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장애인에 대한 낙인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낙인에 문제제기하기 위해서, 그리고 '퀴어'란 용어처럼 장애인 또한 '우리'를 위한 힘을 가진 이름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밑바탕으로 깔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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