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 성희롱 근절 위한 제언

직장 내 성희롱, 사용자 책임 강화해야-끝

국미애 | 기사입력 2003/12/22 [01:37]

효과적 성희롱 근절 위한 제언

직장 내 성희롱, 사용자 책임 강화해야-끝

국미애 | 입력 : 2003/12/22 [01:37]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차별을 조장 또는 방치한 경우에 대해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사회에서도 예방교육 의무 이외에 사용자가 취해야 할 성희롱 예방 조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제재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효성 없는 예방교육‘만’ 그것도 1년에 한번‘만’ 해도 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해야

사용자에게 성희롱 조치들을 마련하는 것은 일단 비용의 문제로 환원돼 버린다. 고충처리 전담창구를 마련하고 담당자를 지정해 교육훈련을 지원하는 것, 그 운영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 등
은 기업활동을 위해 소요되던 기존의 비용에 인력과 예산이 추가돼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임원은 “성희롱 등 지나친 여성보호 조항들은 오히려 기업들로 하여금 여성고용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한국여성민우회)”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사용자로 하여금 실효성 있는 성희롱 예방조치를 실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방하지 않았을 때 드는 비용’을 ‘예방에 필요한 비용’보다 더 높게 부과하는 방식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매우 적절한 방법이다. 어마어마한 배상액 판결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미국 법원에서 계속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유는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행위의 재발을 막는데 있어서 그 어떤 구제수단보다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고의적인 행위에 대해 과중한 처벌을 부과함으로써 그와 유사한 행위의 발생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를 가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희롱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하고 성희롱 발생시 적절한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용자의 행위를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을 방치한 ‘악의적 고의’로 해석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근거는 충분하다.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 방관자적인 태도를 갖거나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유, 무형의 불이익을 묵인하고 가해자를 계속 고용하는 사용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다면 사용자의 문제 해결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가장 강력한 예방 정책이며 사용자의 예방 의무를 강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성희롱 행위자 범위 확대필요

현행 법률은 성희롱 행위자의 범위에 거래처 관계자나 고객 등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에 대해서는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는 현행 성희롱 관련법이 갖는 매우 중대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의 전체적인 증가와 3차 산업 중심으로 전체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특히 판매, 서비스 직업군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기 시작했고 실제로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이며 점차 증가해왔다. 서비스직 여성들의 경우 상사나 동료 등 직장 내
구성원에 의한 성희롱과 고객에 의한 성희롱의 빈도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고객에 의한 성희롱이 규제되지 않는 이상 이들 직업군의 여성들은 여전히 성희롱에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사용자는 가급적 고객이나 거래처 관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한 조치에만 신경을 써왔고, 이는 우리의 기업문화에서 관행처럼 굳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고객 및 거래처 관계자를 가해자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들에 대한 사용자의 주의의무가 이행되도록 강제해야 한다.

‘사실 확인’ 전제로 하는 규정 폐기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 문제화될 경우 사용자는 일반적으로 ‘사실 확인 전까지는 어떤 조치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식의 대응태도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법에 이미 문제가 있다. 사용자가 발생 사실을 알고도 사실 확인 전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성희롱 발생이 확인된 경우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그밖에 이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1항)”는 근거법이 있기에 위법 행위가 아닐 수 있다.

사용자가 이행해야 할 사후 조치 의무는 피해 주장이 사실일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 주장이 제기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사무실에서 혹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이미 사용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현행법은 ‘사실 확인’을 전제로 하는 규정 자체를 폐기하고 예방 의무와 시정 의무가 서로 맞물리면서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실효성을 갖도록 개정돼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 원칙의 확립과 이의 이행은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임을 명시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일’이면 막아야

우리 나라와 미국 법원 모두 불법행위의 ‘예측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측가능’이라는 모호한 용어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업무 과정 중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일을 예상 가능한 행위로 보고 있다. 우리의 경우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문제 삼으면 “직장생활 하다 보면 으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비난을 듣게 마련이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미국에서는 사용자 책임의 부과를 가능케 하는 “예측 가능한 행위”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위계를 중심으로 한 관계형성’이 지배적인 조직구성 원리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사실 ‘직무 행위 관련성’이라는 판단 기준은 우리의 조직문화에 적합하지 않다. ‘직무 행위와의 관련성’이 우리 사회에서 현실성 있는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위계를 중심으로 한 관계 형성’이 지배적인 특성을 보이는 조직문화를 고려해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의 경우 직무 행위 관련성을 인정, 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엄중하게 부과해야 한다.

가해자가 갖는 ‘권력’에 따라 책임가중

그런데 사용자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엄중한 책임을 부과함에 있어 모든 사건에 일괄적으로 동일한 적용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 가해 행위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 성희롱에 수반되는 유무형의 불이익 등을 고려하여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

성희롱의 유형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분류는 ‘고용상 가시적인 결과를 수반하는지 여부’에 따라 나뉜다. 미국 EEOC(고용기회평등위원회,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와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분류를 채택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사용자 책임을 묻는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특히 관리 권한을 가진 직원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특별한 관리감독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업무와 관련해 사용자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에 의한 성희롱은 피해자의 고용조건에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용상 가시적인 결과는 없으나 모욕적이고 적대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하여 노동환경의 질을 떨어뜨리고 여성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용상 가시적인 결과가 없었다 하더라도 성희롱 금지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거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절차를 이행해오지 않았다면 성희롱 유형과 무관하게 사용자 책임은 부과된다는 것이다.

성희롱의 유형과 함께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것은 가해자의 사회적인 지위, 가해자가 가지는 사회적 권력이다.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대학교수라는 지위는 학문적 자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연구 활동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 학교측이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은 연구 활동을 일일이 감독할 수 없다는 점이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부수되는 권력을 고려해 더욱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수반되는 사회적 책임을 상기한다면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조교를 성희롱하고 학위 취득을 조건으로 학생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는 일반 직장에서의 그것보다 오히려 더 가중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권력을 가진 집단의 구성원은 자신이 행한 범죄를 무마시키기 위해 관계망을 작동시키고 권력을 악용하기 쉽다. 따라서 이러한 집단의 구성원이 성희롱 가해자인 경우는 그것을 예방하고 시정하지 못한 사용자의 책임을 더욱 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노동부나 여성부 또는 교육부가 기업 또는 기관에 대해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평가에 성희롱과 관련한 항목을 추가해 성희롱이 발생한 적이 있거나 재발한 적이 있는 직장 또는 학교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해 불이익을 주는 것이 현실적일 것으로 본다. 또한 성희롱 발생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사용자의 대응은 악의적인 것으로 판단해 더욱 가중처벌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직장 내에서의 낮은 지위로 인해 성희롱을 문제화하기도 어렵고 문제화할 경우 피해자로서 감수해야 할 관문이 너무나 많다.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독려되고 구성원 각자가 성희롱을 경계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성희롱의 근절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방안 마련을 위해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용자의 의무를 강화, 구체화하고 의무 불이행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묻는 것은 성희롱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성희롱 근절을 위한 사회적인 노력을 강제하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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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달 2003/12/28 [01:08] 수정 | 삭제
  • 연재 기사들 퍼갑니다.
    좋은 자료가 될 것 같군요.
  • kamel 2003/12/26 [10:23] 수정 | 삭제
  • 당장 법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해도 조직에서 성희롱에 대한 교육이나 대처를 할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체 내 규약같은 걸 만들어도 좋을 것 같군요.
  • 폴리 2003/12/24 [16:06] 수정 | 삭제
  • 호텔롯데 노조처럼 여러 명이 소송을 하면 수십배의 배상액을 물게 할 수 있지 않나요? 외국에선 그렇게 해서 회사 측이 꼼짝 못하게 한대요.
    성희롱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직장 분위기는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개인한테 또 면죄부를 주죠. -_-)
  • 2003/12/23 [16:31] 수정 | 삭제
  • 교수성폭력이 발생하면
    대학들의 대부분은 학교명예다 어쩐다 하며
    쉬쉬하거나 개인적인 일이니 학교와는 관계없다는
    태도를 취하죠.
    얼마전 티비에서도 치대 교수성폭력 교수건 관련
    학교 관계자가 그러더이다.
    "중요한 건 학교와는 관련없다는 일이다."
    왠 관계없는일.
    대학에서 책임지고 사용자처벌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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