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사무직 5급-대졸이상, 76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
한국전력공사, “사무직-대졸이상, 28세 미만” 금융감독원, “신입사원-4년제 대졸이상, 74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 예금보험공사, “5급 신입사원-4년제 대학 졸업자, 78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사무직, 기술직-대졸이상, 30세 미만” 한국석유공사, “사무직-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 74년 6월 1일 이후 출생자”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프로그래머-4년제 대졸이상, 신입-73년 1월 1일 이후, 경력-69년 1월 1월 이후 출생자” 2003년 하반기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채용공고들이다. 모집자격을 살펴보면 학력과 연령을 동시에 제한하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차별연구회는 22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 대해 ‘사회적 신분(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과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이번에 진정 대상이 된 공기업 및 공공 기관은 예금보험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서울대학교병원, 한국석유공사, 방송위원회, 한국방송광고공사, 금융감독원, 한국마사회, 한국조폐공사,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농협중앙회, 농수산물유통공사, 한국수출보험공사,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소비자보호원, 서울시 송파구시설관리공단, 경기도 고양시시설관리공단, 새마을금고연합회 등이다. 전문대졸 이하 30세 이상, 원서도 못 넣어 차별연구회는 인권과 차별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는 연구모임이다. 차별연구회 회원들은 올 하반기 기업들의 채용모집공고들을 모니터링하면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은 어디 원서도 못 넣게 돼있다”고 지적했다. 진정 대상이 된 기업들은 사무직, 행정직, 전산직, 또는 기술직 등의 직종 지원 자격으로 4년제 대학 졸업이상의 학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업무를 하는데 반드시 4년제 대졸 학력이 필요한 것인가? 차별연구회 측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산직의 경우,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사람 혹은 전산 자격증이 있는 사람 중에 4년제 대졸 학력을 가진 사람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무직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업무의 내용상 반드시 대학을 졸업해야만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학력을 기준으로 채용공고를 냈다면, 그것은 ‘학력에 의한 차별’에 해당한다. 30세 미만의 연령제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차별연구회는 “나이가 능력을 결정짓는 것이 아님에도 일정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만 입사 지원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나이에 의한 차별”이라고 밝혔다. 대다수 기업들이 사실상 연령제한을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 사회에선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겐 아예 입사의 자격 자체를 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 학력과 연령을 제한하는 이유 기업들이 사원 선발기준으로 학력과 연령을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기준이 사원 선발의 합리적 잣대가 될 수 있는가. 5년 차 직장인 유모 씨(여, 29세)는 “사실 기업들은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거래처 등 사람들을 만날 때 그만큼 학맥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또 “회사에 ‘명문대 출신이 몇 명’이냐 하는 것을 마치 회사의 질을 대변하는 것처럼 여긴다”고 지적했다. 명문대생의 ‘능력’이 아니라 명문대라는 ‘타이틀’이 중요하단 얘기다. 이는 학연과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연령제한 역시 위계적인 직장문화, 구조와 관련이 깊다. 3년 차 직장인 김씨(27세)는 “내가보기에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밑으로) 들어온다면 힘들 것 같다. 지금처럼 위계적인 조직질서에서 아래 직원이 나이가 많으면, 팀워크가 깨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회사의 수직적인 질서 속에서 직급의 위계와 나이의 위계가 엇갈렸을 경우, 조직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나이주의가 팽배한 사회,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이처럼 불합리한 연령제한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부터 불합리한 채용관행 깨야 차별연구회는 인권위 진정서를 통해 “(기업 측에서) 학력과 연령 제한이 위법한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특정 직무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진정직업요건’이나 ‘사업상 필요성’이 제시돼야 한다. 그러나 진정 대상이 된 기업과 기관들은 대졸 이하의 학력 소지자나 특정 연령 층 이외의 사람들은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연구회의 회원인 조순경씨는 “학력과 연령대신 실무 테스트를 거치는 등 보다 더 효율적인 선발 방법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고, 전문직의 경우 자격증을 통해 실무능력을 선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단순히 학력과 연령을 제한하는 것이 기업의 채용비용을 줄이거나 기업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학력과 연령을 조건으로 한 차등 대우의 합리적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특히 이러한 차별적 모집공고를 낸 기업들 중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인권위 진정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 기업들이 국민의 세금과 공적 자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중하기 때문이다. 차별연구회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은 우리 사회에서의 고용 차별을 수정하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향후 민간기업에서의 고용차별을 수정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학력 차별과 연령 차별로 인해 좌절하고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이와 같은 채용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별연구회는 앞으로도 정부기관을 포함해 공기업 및 민간기업에서의 다양한 차별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계획이다. 더불어 공공시설 이용에 관한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한 차별, 가족상황과 혼인상태에 의한 차별 등 차별사례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여론화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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