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여성들이 겪는 ‘젠더(gender) 박해’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박해를 받는 여성들이 ‘난민’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등 일상의 폭력 인신매매와 강제결혼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박해’ 유형이다. ‘좋은벗들’이 1999년 발표한 ‘북한 식량 난민의 실태 및 인권 보고서’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딸을 파는 사례가 등장한다. 이 경우 여성은 빈곤 속에서 가족을 위해 인신매매를 스스로 수용하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하기도 한다. 여성은 가난을 이유로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 받거나 매매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상대편 배우자에 의해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호주 난민심의재판부는 딸의 의사에 반하는 결혼을 요구했던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여성에게 난민지위를 승인했다. 또한 캐나다 연방법원에서도 강제정략결혼에 동의하지 않는데 따른 아버지의 학대를 피하기 위해 도망친 여성의 사안을 다루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제규범을 위반한 박해다. 세계인권선언은 결혼이 배우자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혼인이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한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에 의해서만 혼인할 권리와 최소 연령이 달하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을 권리에 관한 협약’도 있다. 인신매매 역시 국제법상 권리를 위반한 박해에 해당한다. 국제관습법과 ‘인신매매금지 및 타인의 매춘행위에 대한 착취금지에 관한 협약’이 인신매매에 대한 규정을 하고 있다. 이 협약은 체약국이 인신매매를 하거나, 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자를 처벌해야 할 의무와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학의 잘 사는 집 자식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여자들은 자기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로 몰아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자들은 그 시달림을 받지 않기 위해 몸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몸에 아이가 들어서면 몰래 병원에 가서 지운다고 이야기했다.” (권혁, 1999년) 위 사례에서 말하는 ‘시달림’이 지속적인 정신적, 육체적 학대와 성폭력으로 이어질 때 이는 박해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위해가 그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거나 보호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협박, 구타, 성폭력은 박해에 대한 공포를 형성할 수 있다. 가정폭력도 생명권, 신체의 자유, 안전의 권리 등 본질적 권리를 위반하는 ‘박해’다. 따라서 일상적인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은 북한여성들에겐 난민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정치범 수용소의 성고문 및 강제낙태 “내가 중국에 갔다온 지 오래기에 줄 것도 없기에 인차 인사드리지 않아서 저는 온성군 집결소에 잡혀서 죽을 고생을 다 겪었습니다. 그들은 잡아 넣은 그날부터 저하고 묻는 말은 ‘너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 이쁜 낯을 가지고 날날이풍 했다고 대답하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나는 날날이풍이 뭔지도 모른다고 같이 소리치니, ‘이년이 우리맛을 못보았구나, 검사하면 날날이풍은 나타난다. 너 처녀가 옳은 가 보자’고 하여서 옷을 벗겼습니다. 나는 내 있는 힘을 다하여 고함쳤지만 두놈이 달려들어 저를 쫄닥 벗기고 저의 젖에다 전지형을 했습니다. 저는 삽시간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의 하신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그들에게 심문 당하여 두달 지났습니다. (생략)” (25세 여성, 함북 온성군. 노옥재, ‘북한 식량난 속의 여성의 삶과 인권’, 북한여성의 삶·꿈·한, 민주평통 북한연구회·(사)좋은벗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침해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형성할 만큼 수용자의 자유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탈북자의 현실은 형벌 그 자체보다 형벌이 집행되는 방식이 더 박해적이라는 데 있다. 성고문을 비롯한 성폭력도 이에 해당한다. ‘좋은벗들’의 노옥재 사무국장은 “강제송환 당한 여성들이 당하는 고문과 강한 처벌은 북한여성들을 포함한 주민들에게 커다란 두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난민에 대한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성폭력 가이드라인은 송환 후 재통합단계에서 ‘떠났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정부나 군대 등의 타겟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특별히 여성들은 물질적 도움, 신분증, 혹은 다른 형태의 문서에 대한 대가로 성적 강탈을 당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성고문은 세계인권선언의 ‘신체의 자유’와 ‘안전의 권리’ 및 ‘고문과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박해에 해당한다. 또한 공무원이 직접적인 관여가 없거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사인(私人, non-state)에 의한 고문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가 국내적 구제조치를 다하지 않은 경우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또 다른 인권침해로 강제낙태가 있다. 피에르 리굴로는 “소련의 굴락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산모와 아이를 격리시키는 반면, 북한에서는 강제낙태를 시행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바로 옆 감방에서 한 중년 여성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직전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이송,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긴급입수수기>, 월간조선) “두 명의 임산부가 있었는데 한 명은 임신 8개월, 다른 한 명은 6개월이었다. 일하는 도중에 고통스러워하자 구치소 밖의 병원에 보내졌다. 그녀는 다음날 홀쭉해진 배를 한 채 돌아왔다.” (전춘하, ‘나의 남편은 북한의 경찰관이었다’, <긴급입수수기>, 월간조선) 강제낙태는 몸에 대한 자율권과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고 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침해를 가져온다.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북경여성선언과 행동강령도 여성폭력에 강제불임과 강제낙태, 피임제의 강제 사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강제낙태는 생명, 자유, 안전에 대한 권리,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 등 국제법상 일순위 권리를 위반한 박해다. 강제낙태와 관련된 법이나 정책이 박해할 의도를 갖지 않더라도 집행을 위해 사용된 조치가 인권에 반한다면 박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강제낙태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국경을 넘은 임산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여성, 송환 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될 여성, 집결소나 수용소의 성고문을 피해 국경을 넘은 여성에게 강간, 성폭력, 강제낙태는 ‘난민’으로 인정 받기 위한 ‘박해의 내용’으로 구성될 수 있다. 여성의 월경행위에 대한 가중처벌 북한은 월경(국경을 넘음) 행위를 ‘사상오염’과 같은 정치적 성격으로 파악하여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송환되면 국경지역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는다.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것으로 의심되지 않는 단순한 월경자는 국경지역 및 살던 지역의 집결소로 보내진다. 집결소에서의 조사결과에 따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노동단련소, 교화소,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구금된 청년남성의 구류기간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장기간(2-3개월)이고, 여성의 구류기간은 길면 1주일, 짧으면 1-2일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성은 1년-15년 형의 더 중한 형벌을 받는다. 왜 임신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처벌 정도가 달라질까. 이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구성원의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민족을 계승하는 주체로서 남성은 이주에 강한 제재를 받게 되지만, ‘이등 국민’ 여성은 이주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한 처벌을 받는다. 다만, 여성이 ‘남성 민족’의 혈통을 계승하는 재생산 기능을 담당할 때 비로소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인정 받는다. 결국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성에 대한 가중 처벌은 민족의 부계혈통의 순수성을 상실시킨 것에 대한 처벌로 이해할 수 있다. 불법출국 또는 불법체재에 따른 형벌에 대해 UNHCR 핸드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정 국가의 법은 불법출국을 하거나 또는 허가 없이 외국에 체재하고 있는 내국민에 대하여 엄격한 형벌을 부과한다. 불법출국 또는 허가 받지 않은 해외에서의 체재 때문에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난민으로 인정함이 정당하다’. 중국에서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성에 대한 가중형벌은 균형을 잃은 처벌로, ‘박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국가보호 실패 무엇이 박해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박해의 행위자가 반드시 국가여야 하는가의 논쟁은 중요하다. 젠더 박해는 국가 기관보다 사인(私人, non-state)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캐나다 연방법원은 판례를 통해 ‘박해에 대한 정부의 공모는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다만 정부기관이 박해 받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국 난민여성법률구조단은 ‘망명 결정에 대한 젠더 가이드라인’에서 ‘박해=심각한 위해+정부보호의 실패’ 공식을 제안했다. 북한 사회의 가정폭력, 성폭력, 강제결혼 등이 ‘박해’임을 증명하려면, 국가보호가 실패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탈북자들의 공통된 증언은 북한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제도나 법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보호 실패’를 의미한다. 성폭력에 대한 제도화된 규제를 북한에서 마련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집행단계에서 실질적인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가 무능에 의한 보호의 실패로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여성에 대한 국가보호 실패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2001년 B규약 관련 제2차 국가인권보고서 심의에서 북한 정부 관계자는 “50여년 동안 여성매매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여성 인신매매의 발원지’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인신매매에 연루된 사람들을 공개처형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공개처형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을 보고, 국가가 여성을 보호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뉴질랜드 로저 헤인즈 판사는 정부가 사인(私人, non-state)의 박해에 대한 시스템을 갖췄다 하더라도, 생명과 자유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는 개인에게 난민지위가 부여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인신매매나 성매매 등에 대한 형벌이 집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박해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공포가 개인에게 남아있다면, 이는 국가 보호 실패를 의미한다. 정부의 비효율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신청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도록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강간, 성폭력, 가정폭력, 강제결혼 등 사인(私人, non-state)에 의한 박해에 대해 북한 정부는 제도적으로 ‘묵인’하고 있다. 이러한 법과 정책의 미비는 명백한 국가보호 실패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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