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여성이 겪는 ‘박해’

탈북여성의 난민자격 가능성-2

민최지원 | 기사입력 2004/01/05 [04:16]

북한여성이 겪는 ‘박해’

탈북여성의 난민자격 가능성-2

민최지원 | 입력 : 2004/01/05 [04:16]
북한여성들이 겪는 ‘젠더(gender) 박해’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박해를 받는 여성들이 ‘난민’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등 일상의 폭력

인신매매와 강제결혼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박해’ 유형이다. ‘좋은벗들’이 1999년 발표한 ‘북한 식량 난민의 실태 및 인권 보고서’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가 딸을 파는 사례가 등장한다. 이 경우 여성은 빈곤 속에서 가족을 위해 인신매매를 스스로 수용하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하기도 한다.

여성은 가난을 이유로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 받거나 매매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상대편 배우자에 의해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호주 난민심의재판부는 딸의 의사에 반하는 결혼을 요구했던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여성에게 난민지위를 승인했다. 또한 캐나다 연방법원에서도 강제정략결혼에 동의하지 않는데 따른 아버지의 학대를 피하기 위해 도망친 여성의 사안을 다루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제규범을 위반한 박해다. 세계인권선언은 결혼이 배우자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혼인이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한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에 의해서만 혼인할 권리와 최소 연령이 달하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을 권리에 관한 협약’도 있다.

인신매매 역시 국제법상 권리를 위반한 박해에 해당한다. 국제관습법과 ‘인신매매금지 및 타인의 매춘행위에 대한 착취금지에 관한 협약’이 인신매매에 대한 규정을 하고 있다. 이 협약은 체약국이 인신매매를 하거나, 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자를 처벌해야 할 의무와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대학의 잘 사는 집 자식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여자들은 자기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로 몰아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자들은 그 시달림을 받지 않기 위해 몸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몸에 아이가 들어서면 몰래 병원에 가서 지운다고 이야기했다.” (권혁, 1999년)

위 사례에서 말하는 ‘시달림’이 지속적인 정신적, 육체적 학대와 성폭력으로 이어질 때 이는 박해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위해가 그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거나 보호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협박, 구타, 성폭력은 박해에 대한 공포를 형성할 수 있다. 가정폭력도 생명권, 신체의 자유, 안전의 권리 등 본질적 권리를 위반하는 ‘박해’다. 따라서 일상적인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은 북한여성들에겐 난민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정치범 수용소의 성고문 및 강제낙태

“내가 중국에 갔다온 지 오래기에 줄 것도 없기에 인차 인사드리지 않아서 저는 온성군 집결소에 잡혀서 죽을 고생을 다 겪었습니다. 그들은 잡아 넣은 그날부터 저하고 묻는 말은 ‘너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 이쁜 낯을 가지고 날날이풍 했다고 대답하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나는 날날이풍이 뭔지도 모른다고 같이 소리치니, ‘이년이 우리맛을 못보았구나, 검사하면 날날이풍은 나타난다. 너 처녀가 옳은 가 보자’고 하여서 옷을 벗겼습니다. 나는 내 있는 힘을 다하여 고함쳤지만 두놈이 달려들어 저를 쫄닥 벗기고 저의 젖에다 전지형을 했습니다. 저는 삽시간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의 하신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그들에게 심문 당하여 두달 지났습니다. (생략)” (25세 여성, 함북 온성군. 노옥재, ‘북한 식량난 속의 여성의 삶과 인권’, 북한여성의 삶·꿈·한, 민주평통 북한연구회·(사)좋은벗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침해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형성할 만큼 수용자의 자유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탈북자의 현실은 형벌 그 자체보다 형벌이 집행되는 방식이 더 박해적이라는 데 있다. 성고문을 비롯한 성폭력도 이에 해당한다. ‘좋은벗들’의 노옥재 사무국장은 “강제송환 당한 여성들이 당하는 고문과 강한 처벌은 북한여성들을 포함한 주민들에게 커다란 두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난민에 대한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성폭력 가이드라인은 송환 후 재통합단계에서 ‘떠났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정부나 군대 등의 타겟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특별히 여성들은 물질적 도움, 신분증, 혹은 다른 형태의 문서에 대한 대가로 성적 강탈을 당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성고문은 세계인권선언의 ‘신체의 자유’와 ‘안전의 권리’ 및 ‘고문과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박해에 해당한다. 또한 공무원이 직접적인 관여가 없거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사인(私人, non-state)에 의한 고문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가 국내적 구제조치를 다하지 않은 경우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또 다른 인권침해로 강제낙태가 있다. 피에르 리굴로는 “소련의 굴락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산모와 아이를 격리시키는 반면, 북한에서는 강제낙태를 시행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바로 옆 감방에서 한 중년 여성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직전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이송,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긴급입수수기>, 월간조선) “두 명의 임산부가 있었는데 한 명은 임신 8개월, 다른 한 명은 6개월이었다. 일하는 도중에 고통스러워하자 구치소 밖의 병원에 보내졌다. 그녀는 다음날 홀쭉해진 배를 한 채 돌아왔다.” (전춘하, ‘나의 남편은 북한의 경찰관이었다’, <긴급입수수기>, 월간조선)

강제낙태는 몸에 대한 자율권과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고 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침해를 가져온다.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채택된 북경여성선언과 행동강령도 여성폭력에 강제불임과 강제낙태, 피임제의 강제 사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강제낙태는 생명, 자유, 안전에 대한 권리,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 등 국제법상 일순위 권리를 위반한 박해다. 강제낙태와 관련된 법이나 정책이 박해할 의도를 갖지 않더라도 집행을 위해 사용된 조치가 인권에 반한다면 박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강제낙태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국경을 넘은 임산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여성, 송환 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될 여성, 집결소나 수용소의 성고문을 피해 국경을 넘은 여성에게 강간, 성폭력, 강제낙태는 ‘난민’으로 인정 받기 위한 ‘박해의 내용’으로 구성될 수 있다.

여성의 월경행위에 대한 가중처벌

북한은 월경(국경을 넘음) 행위를 ‘사상오염’과 같은 정치적 성격으로 파악하여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송환되면 국경지역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는다.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것으로 의심되지 않는 단순한 월경자는 국경지역 및 살던 지역의 집결소로 보내진다. 집결소에서의 조사결과에 따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노동단련소, 교화소,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구금된 청년남성의 구류기간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장기간(2-3개월)이고, 여성의 구류기간은 길면 1주일, 짧으면 1-2일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성은 1년-15년 형의 더 중한 형벌을 받는다. 왜 임신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처벌 정도가 달라질까. 이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구성원의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민족을 계승하는 주체로서 남성은 이주에 강한 제재를 받게 되지만, ‘이등 국민’ 여성은 이주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한 처벌을 받는다. 다만, 여성이 ‘남성 민족’의 혈통을 계승하는 재생산 기능을 담당할 때 비로소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인정 받는다. 결국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성에 대한 가중 처벌은 민족의 부계혈통의 순수성을 상실시킨 것에 대한 처벌로 이해할 수 있다.

불법출국 또는 불법체재에 따른 형벌에 대해 UNHCR 핸드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정 국가의 법은 불법출국을 하거나 또는 허가 없이 외국에 체재하고 있는 내국민에 대하여 엄격한 형벌을 부과한다. 불법출국 또는 허가 받지 않은 해외에서의 체재 때문에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난민으로 인정함이 정당하다’. 중국에서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성에 대한 가중형벌은 균형을 잃은 처벌로, ‘박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국가보호 실패

무엇이 박해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박해의 행위자가 반드시 국가여야 하는가의 논쟁은 중요하다. 젠더 박해는 국가 기관보다 사인(私人, non-state)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캐나다 연방법원은 판례를 통해 ‘박해에 대한 정부의 공모는 필수조건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다만 정부기관이 박해 받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국 난민여성법률구조단은 ‘망명 결정에 대한 젠더 가이드라인’에서 ‘박해=심각한 위해+정부보호의 실패’ 공식을 제안했다.

북한 사회의 가정폭력, 성폭력, 강제결혼 등이 ‘박해’임을 증명하려면, 국가보호가 실패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탈북자들의 공통된 증언은 북한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제도나 법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보호 실패’를 의미한다. 성폭력에 대한 제도화된 규제를 북한에서 마련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집행단계에서 실질적인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가 무능에 의한 보호의 실패로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여성에 대한 국가보호 실패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2001년 B규약 관련 제2차 국가인권보고서 심의에서 북한 정부 관계자는 “50여년 동안 여성매매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여성 인신매매의 발원지’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인신매매에 연루된 사람들을 공개처형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공개처형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을 보고, 국가가 여성을 보호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뉴질랜드 로저 헤인즈 판사는 정부가 사인(私人, non-state)의 박해에 대한 시스템을 갖췄다 하더라도, 생명과 자유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는 개인에게 난민지위가 부여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인신매매나 성매매 등에 대한 형벌이 집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박해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공포가 개인에게 남아있다면, 이는 국가 보호 실패를 의미한다. 정부의 비효율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신청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도록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강간, 성폭력, 가정폭력, 강제결혼 등 사인(私人, non-state)에 의한 박해에 대해 북한 정부는 제도적으로 ‘묵인’하고 있다. 이러한 법과 정책의 미비는 명백한 국가보호 실패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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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4/01/11 [00:55] 수정 | 삭제
  • A가 남편으로부터 상습적인 강간을 당했다고 가정하죠. 혹은 B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상습적으로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고 생각해보죠.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적 국가와 이러한 폭력에 가담한 현지주민/남편은 이 행위에 대해 부인하거나 정당화할 겁니다. 그리고 적대국, 남편/현지주민, 국가, 마초, 동성애 혐오주의자, 경우에 따라서 NGO까지(어디까지 그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행위자들은 저마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안을 주장하고요.

    이 때 피해자 A, B는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증언을 번복할 수도 있고 일관성없고 분열적인 말들을 토해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도망쳐온 탓에 뚜렷한 증거도 없습니다. 강간의 경험을 난민심사관에게 증명한다는 것은 두배로 어렵습니다. (탈북자이든 아니든) 난민 신청자가 증언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렵습니다.

    또 국가의 문호를 거의 닫고 있는 이민정책 때문에 대부분 국가는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관행입니다. 이 엄격한 절차로 인해 아무리 타국가가 정치적으로 탈북자에 대해 우호적인 난민정책을 편다해도 심사를 통과하는 이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더욱더 배타적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에서 탈북자를 난민으로 받아들인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신청서를 제출할 수조차 없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성별에 따른 박해를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전 논쟁 자체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단비 2004/01/08 [23:26] 수정 | 삭제
  • 이번 논쟁과 관련하여 서로의 의도에 대해 색깔 입히기가 진행되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였는지 생각해볼 때 이번 기사와 관련하여 제가 처음 쓴 글의 일부분에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번 일다 기사에서 '월간조선'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그 기사의 내용을 '젠더박해'의 근거로 제시했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이것은 그간 이북 인권에 대한 일다의 지속적인 기사들이 반북적 정치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위의 제 글이 일다의 기사에 대해 '반북'이라는 정치적 색깔을 입힌것 같아 이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월간조선'의 기사 내용을 인용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좀 충격적으로 와닿았다는 점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저의 다른 주장들도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탈북증언'에 대한 문제제기는 계속되며 '탈북증언' 만을 근거로한 이북 인권 이슈화에는 문제가 있다는 저의 주장은 계속됩니다. 또한 '탈북증언'이 '반북'적 정치성을 내포한다는 주장도 계속됩니다. '탈북증언'에 바탕한 이북 인권 이슈화는 계속 정치적으로 휘말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이북 인권을 이슈화하려면 이북 사회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라는 방법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얘기이고요.
  • player 2004/01/06 [21:15] 수정 | 삭제
  • 단비님은 또,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인권 담론?들이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증언을 배제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계신데요.

    단비님, 중국에 탈북자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고 많은지 아십니까? 이 사람들은 정치적인 신념을 이유로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1%도 안 될 겁니다. 대부분 다 배가 고파서 나온 사람들이에요.

    이들 중엔 여전히 남한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도 많고, 대부분 굶지만 않았다면 북한에서 살았을 사람들이랍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북한에 가족, 친지들이 있고 자신이 먹여살려야 하는 이들(남편과 애들)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국경을 넘어 갔다가 다시 넘어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면, 단비님이 가정하고 계시는 '탈북자의 증언 vs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증언' 이런 식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적절치 않습니다.
  • player 2004/01/06 [21:14] 수정 | 삭제
  • 단비님. 제가 일다의 이 기사를 잘 이해한 것이라면, 어떤 나라든 젠더박해를 겪는 여성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든 젠더박해를 겪는 여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젠더박해'가 아예 성립되지 않나요? 특정 나라에만 성립이 되어야 '젠더박해'가 성립되는 건가요? 아니면 북한을 뺀 나라들에만 적용해야 하는 건가요?

    북한 사회에서 '젠더박해'를 겪는 여성이 있고, 그 때문에 국경을 넘었다면 그 여성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기사에 왜 동의하지 않으시나요? 단비님의 물음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북한여성들이 만약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지금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박해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난민신청을 하는 여성도 있을 수 있겠죠. 단비님은 그런 여성들이 구제받는 것에 반대하시나요? 그 여성들이 북한 여성이기 때문에?
  • 민최지원 2004/01/06 [20:31] 수정 | 삭제
  • '증언'을 "견고한 이데올로기?"로 고집하고 심도있게 생각했다면 '직접' 증언을 듣는 노력을 기울었어야 했을겁니다. 그만큼 부실합니다. 그런데 제 글의 주제는 국제협약상 '난민'으로 그 대상이 처음부터 '국경을 넘은 사람'에 한정됩니다. 처음부터 북한 사회 내부에 있는 사람은 전제되지 않습니다. 북한 내부를 보기 위한 논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북 사회를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물음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과의 공유를 위해서 단비님께서 여러 채널에 기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아주 작은 가능성'(애정인지는 몰겠지만?? ^^)이라고 말한 이유는 난민자격이 '개인'에 따라 심사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입증해야하는 사유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국가에 속했다는 것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 개인이 처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고려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젠더박해'라는 전제를 깔았을 때 제외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는 단비님 말에 그대로 동감합니다. 북한여성이 사례로 제시되었지만 '남한'여성도 북한 혹은 다른 국가의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사회에 '젠더박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젠더박해'가 세상 어느곳에서도 존재하지만, 모든 여성이 '젠더박해'로 인해 국가를 떠나서 난민지위를 신청하지 않습니다.

    '젠더'박해를 이슈화하기 위해 '이북'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북한 여성에 대해 쓰다가 난민법에 대해 알게 된거죠. 어떻게 생각하시든 상관없지만, 밝혀져야할 '저의'가 있어야만 할 것 같군요.ㅎㅎ 불행이도 일다에 쓰여졌지만 젠더박해가 '이슈화'된 적은 없습니다. 북한논쟁에서 여성주의가 가진 협소성으로 보나, 단비님이 말씀하신 '논의전개의 오류'로 보나 잠시 쓰여졌다가 소리없이 사라질 겁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정치권력의 항변(혹은 지역사회의 항변이나 현지인의 항변)'이 난민을 신청하는 '개인의 항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난민법은 '박해의 공포가 있는 구체적 당사자'(개인)의 요청에 의한 것이지, 국가정치권력이나 비관련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제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논의에 참여하시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민최지원 2004/01/05 [21:37] 수정 | 삭제
  • 단비님의 지적, 공감하는 부분 많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읽어주시고 평해주신 점도 감사드려요.

    우선, 일다라는 저널에 실린 글이지만, 글쓴이인 제가 자료들을 인용한 만큼 부족하나마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단비님의 물음이 '탈북자의 증언을 어떻게 볼것인가', '이 증언이 객관성과 진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이 부분을 지금도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은 아닐 것 같군요.

    '탈북증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이 부분을 들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공?? 저널^^' 일다가 이 후속작업들을 반영해서 현재 진행중인 이분법적 논의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충실했던 단 한가지는 '젠더박해'의 가능성이 탈북여성의 난민자격을 판단하는데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은 굳이 북한문제가 아니더라도 도처에 존재합니다.

    탈북자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려는 미국의 입법 태도에는 단비님이 말씀한 정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탈북자의 난민지위인정에 대한 논조가 미국의 '대북강경노선'의 정치적 배경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동일선상으로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부시가 차도르에 대해 정치적으로 악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박해라고 주장했던 이슬람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인용자료가 이데올로기라는 '판별기'에 의해 선정된 '진실'은 분명 아닐 겁니다. '좋은벗들'인지 '월간조선'인지보다, 필자인 제가 고려한 것은 '아주 작은 가능성'에 있었습니다. 박해자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1%의 박해 가능성... 당신에게 혹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사실'일 지는 모르겟습니다.

    그 '박해'의 존재는 신청자가 그것을 주장할 때 비로소 '박해'가 됩니다. 저는 그 이전 단계에서 피박해자가 설명할 수 있는 법적 언어를 제공하는 할 뿐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예비되지 않은 어떠한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히잡이 모든 여성들에게 '고통'으로 읽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1명의 여성이라도 이것을 '박해'로 주장하기 시작할 때 최소한 그 여성에 대해서 고통은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침'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담보낼 수 있는 법적 언어가 존재해야 합니다. '침묵'은 '사실'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수많은 기제에 의해 비로소 '사실'로 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좌/우 어느쪽도 '젠더'박해를 난민자격조건으로 언급하고 않는다는 '사실'이죠.
  • ------ 2004/01/05 [19:49] 수정 | 삭제
  • '50여년 동안 여성매매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그런 북측의 발언은 문제가 있네요. 여성매매가 존재하지 않은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여성 인신매매와 성매매 문제를 덮어두려고 했던 것과 연결이 되면서요.
  • 프리다 2004/01/05 [10:07] 수정 | 삭제
  • 일다에서 탈북여성의 인권 얘기를 하기 위해서 다른 자료들 뿐 아니라 월간조선의 기사까지 인용하는 것은 기존의 우익-좌익/친북-반북의 잣대와 다른 현실적인 인권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단비님이 그런 관점을 이해하실런지 모르겠지만, 문장을 독해는 하시겠죠.

    북한 사회 얘기만 나오면 단비님은 탈북자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모든 탈북자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프간과 이라크 민중들의 증언도 거짓이라고 믿지 않으시렵니까? 미국의 강경보수파들은 아마 그들이 정치적으로 사주를 받아 거짓을 말한다고 할 지도 모릅니다.
  • 단비 2004/01/05 [08:08] 수정 | 삭제
  • 이번 시리즈의 앞 기사 '젠더박해'에 대한 난민 지위 인정에 관한 기사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떤 나라든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묵인하거나 유포하고 있다면 그런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북의 현실에 대해 오로지 '탈북증언'밖에는 달리 현실을 증거할 그 무엇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탈북증언'의 진실 여부를 가리려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정치적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민간인권단체(좋은벗들 등)의 조사에 근거했다하더라도 '탈북증언' 그 자체가 정치적 시공간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조사단체 자체가 '탈북증언'의 진실성과 객관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이번 일다 기사에서 '월간조선'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그 기사의 내용을 '젠더박해'의 근거로 제시했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이것은 그간 이북 인권에 대한 일다의 지속적인 기사들이 반북적 정치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래는 '탈북증언'에 바탕해서 이북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드러내는 한 사례이다.

    범민련 남측본부 '미국의 대북인권제기 자료집'에서 인용

    다음은 탈북자들도 자신들의 거짓말에 낯뜨거워한다는 역시 같은 자료집에서 인용된 내용이다.

    > 범민련 남측본부 '미국의 대북인권제기 자료집'에서 인용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정치범 수용소' 얘기는 탈북자들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고 탈북과정에서 들은 얘기들이라 한다. 역시 같은 자료집에서 인용한다.

    > 범민련 남측본부 '미국의 대북인권제기 자료집'에서 인용

    '젠더박해'에 대한 난민 지위에 관한 여성주의적 이슈화가 갖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탈북증언'에 근거한 이슈화는 '탈북증언' 자체가 갖고 있는 정치성으로 하여 그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나는 감히 예견한다.

    미국은 '이북 정권 붕괴'를 꾀하기 위해 탈북자들의 난민 지위 보장을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 <2003년 8월 4일 뉴스위크 인터뷰>

    분명 이 이슈화는 '미국의 이북 정권 붕괴' 혹은 '미국의 대북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일다에서는 그럴 의도는 아니였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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