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그림과 단순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으로 엮어진 그림책 보기의 행복이 어린 시절에만 허락된 것이라면 얼마나 우울한 일일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일다 독자 중에는 약속시간이 남으면 여전히 서점의 그림책 코너를 기웃대는 분도 계실 것이고 어린 사촌이나 조카, 자녀들이나 손주, 혹은 친구의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장을 팔락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럴 때면 깨닫게 되지요, 어린 시절만큼 놀라운 힘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림책의 마력은 강력하다는 것을.
사실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들을 언뜻 읽어보면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이 결국 여자가 예쁘면 왕자님이 알아서 찾아오고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된다는 뻔하디 뻔한 스토리입니다. 이런 책은 아무리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채색되어 있다 해도 아이들이나 자신에게 기꺼이 선물하기에는 뭔가 아쉽습니다. “뭔가 좀 다른 그림책이 없을까”하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그림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래 소개되는 책들은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 해도 좋을 책들입니다. <종이 봉지 공주>(로버트 먼치 글, 마이클 마첸코 그림/비룡소)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림책의 고전으로는 <종이봉지 공주>가 있지요. 내용은 ‘동화 고쳐 읽기’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예측 가능합니다. 용에게 납치된 왕자를 구하러 가는 공주, 드레스가 아니라 종이봉지를 입은 공주, 힘이 아니라 지혜로 용을 물리치는 공주, 마지막 결말도 당연히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가 아닙니다. 이런 스토리는 지금에 와서는 살짝 진부한 면도 있지요. 하지만 먼 옛날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통쾌함과 신선함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바비인형 판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신데렐라>가 아직도 힘을 떨치고 있는 시대에 자의식 강한 어린 소녀에게 이 책을 쥐어주면 신선한 충격이 되지 않을까요? 깜찍한 만화체 일러스트는 귀엽고 편안합니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공정해지려 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더라도, 노을 지는 황야를 홀로 춤추듯 뛰어가는 종이봉지공주의 실루엣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해방감을 남깁니다. <돼지책>(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웅진 닷컴)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림책의 고전에 <종이봉지 공주>가 있다면 이제 ‘새로운 고전’으로 남게 될 작품이 <돼지책>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학교와 직장 때문에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않는 남편과 아들들이 있지요. 직장일과 가사일로 지친-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음울한 노란 빛 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어머니이자 아내.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아들들이 집에 오자 이처럼 지칠대로 지친 여성은 사라지고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메모만 남겨져 있습니다. 가사일이라곤 조금도 할 줄 모르는 남편과 아들은 점점 돼지로 변해가지요. 재치 있는 내용에 어울리는 재치 있는 그림체가 독자들을 키득거리며 읽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움찔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든지 이 책을 본다면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에게 꼭 읽게 하고 싶을 것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섬세하고 정확한 일러스트와 함께라면 전달되지 않을 내용은 없죠. 색채 하나하나가 주인공들의 심리와 사건의 변화를 깊고 풍부하게 살려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고여덟 살의 남자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 이런 책이 아니라면 무엇이 있겠어요? <빨간 늑대>(마가렛 섀넌 글, 그림/베틀북) 어린 공주 로젤루핀은 탑에 갇혀있습니다. 임금님은 바깥 세상이 공주가 살기에는 거칠고 험하다면서 탑에 가둬놓았어요. 공주의 생일날, 알 수 없는 상자가 도착하고 거기에는 ‘네가 원하는 것을 짜렴’이라는 쪽지와 색색깔의 실타래가 들어있습니다. 공주는 상자에 쓰여진 자신의 이름을 보며 빨간 실을 꺼내요. “계속 이 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커다란 빨간 늑대가 되겠어.” 공주는 빨간 늑대가 되어 돌탑을 부수고 나갑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춤추고 노래하고. 자, 그리고 아이들 그림책으로서는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가족간의 갈등과 아이들의 판타지를 다룬 동화는 화해와 귀환으로 결말짓죠. 그러나 이 <빨간 늑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빨간 늑대는 자기와 같은 늑대친구들을 찾아 숲으로 가다가 털실이 나무에 걸려 다시 공주가 됩니다. 공주를 찾은 임금님은 더 튼튼한 돌탑에 공주를 가둬버리죠. 값비싼 새 옷과 함께요. “털실로는 아빠 목도리나 짜렴.” 그러나 공주가 밤새워 뜬 것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장, 왕관을 쓴 회색 생쥐가 창 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멀리 분홍 꽃나무에는 공주의 분홍 드레스와 분홍신과 금관이 걸려있습니다. 흰 속옷만 입은 붉은 머리의 공주가 친구들에게로 달려갑니다. 손에 손을 잡고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이 공주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네요. 어떤가요? 유쾌한 해방감이 몰려오나요? 그렇다면 반드시 이 책을 찾아보세요. 이 책의 일러스트는 그 해방감을 증폭시켜줍니다. <종이봉지공주>가 깜찍하고 <돼지책>이 섬세하다면 <빨간 늑대>는 강렬합니다.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자유’가 그림 속으로 흘러 들어가 춤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자유, 여성의 자유, 어린이의 자유가 선명한 색감 속에서 힘차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림책답기’도 하고요. <엄마가 된 마녀 루시>(리오넬 르 네우아닉 글, 그림/행복한아이들) 커다란 판형에 아기자기한 표지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책장을 몇 장 넘겨본다면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책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준비 없이 비혼모가 된 마녀 루시의 당혹감과 엄마 되기의 과정이 유쾌하고 독특한 일러스트에 실려 그려져 있습니다. 마녀 루시의 사랑은 지극히 육체적입니다. 전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사랑을 원했다기보다는 섹스를 원했습니다. (이 책은 ‘사랑에 빠진 마녀 루시’의 속편입니다. 하지만 전편을 반드시 볼 필요는 없어요) 전편에서 사랑 찾기에 실패한 마녀 루시는 드디어 이 책 첫 장에서 지옥의 악마와 눈이 맞습니다. 이때 그림은 침대에서 나신으로 뒹굴고 있는 루시와 악마를 슬며시 보여주지요. 그러나 지옥의 사랑은 빨리 식습니다. “아내로 남고 싶으면 나를 위해 집안일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애교를 부려봐”라고 말하는 악마와 헤어지고 루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세상에, 루시는 이미 임신을 한 후였어요. 네, 이런 만만치 않은 내용입니다. 루시는 처음에는 당혹하지만 자신의 딸을 다시없는 마녀로 키울 생각에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딸 엠마는 아기천사에 가까웠죠. 이에 대한 루시의 반응은 일반적인 모성신화를 뒤집습니다. 자기의 삶을 바꿔놓은 아기에게 이렇게 소리지르는 엄마를 그림책에서 본 적이 있나요? “이 재수없는 녀석! 너한테 진절머리가 나. 네가 태어난 다음부터 모든 게 엉망진창이 돼 버렸어. 딴 데로 가버려! 보기도 싫어!” 끝은 해피엔딩일까요? 루시는 묘지박사에게 잡힌 딸을 구해내고 엄마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오래오래 행복하게’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처럼” 젊은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고민을 판타지 형식을 빌어 코미디로 빚어놓은 듯한 작품입니다. 익살스런 그림체와 세부묘사가 만화를 읽듯이 혹은 재기 발랄한 단편영화를 보듯이 즐겁게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자, 지금까지 신나게 웃고 곱씹으며 볼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했습니다. 정확히는 ‘통쾌함’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빠진 책도 있어요. 지면상 잘라낸 책으로 <치마를 입어야지, 아멜리아 블루머!>(섀너 코리 글, 체슬리 맥라렌 그림/아이세움)도 있습니다. 초기 여성운동가로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웠고 잡지편집장이었으며 코르셋으로 졸라맨 드레스 대신 바지를 입고 다닌 아멜리아 블루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올바른 숙녀’가 되길 거부했던 그녀의 의상혁명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블루머 바지 유행은 사라졌으나, 결국 그녀의 정신은 지금 여성들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암시하죠. 산뜻한 어투와 산뜻한 그림이 읽기 편하지만, 사실 지나치게 패셔너블한 일러스트는 오히려 내용과 반대의 효과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강한 아멜리아와 생각 없는 숙녀들을 비교한 듯한 삽화도 살짝 거슬리구요. 하지만 관심 가신다면 한 번 들춰보세요. 초기 여성운동가를 다룬 그림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하며 언급할만한 일이니까요. 다른 분들에게는 제가 느낀 불편함이 소소한 것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그림책은 ‘뻔하다’라는 편견을 가뿐히 넘는 통쾌한 이야기의 세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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