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신학 “희망을 찾고 싶다”

13회 맞은 재일·일본·한국 기독여성의 연대

이허린 | 기사입력 2004/03/21 [21:58]

한국여성신학 “희망을 찾고 싶다”

13회 맞은 재일·일본·한국 기독여성의 연대

이허린 | 입력 : 2004/03/21 [21:58]
작년 12월 여성신학자 강남순 교수와 실천신학자 권희순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의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됐다. 부부교수는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정이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존재했던 여교수의 자리를 빼앗았다. 일부 교수와 총여학생회의 반발로 재심사가 이루어졌지만 권희순 교수만 재임용됐다. 결국 2004년 봄학기 교과에는 학부나 대학원 모두 여성신학 강좌는 열릴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신학대학 내 여성신학에 대한 냉대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수업시간 중 일부 남성교수들의 여성과 여성목회자에 대한 비하 발언과 여성신학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들이 있어왔고, 이러한 분위기는 여성조차도 여성신학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성신학자 강남순 교수가 재임용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대학원내 여성신학학회와 총여학생의 대응만으론 역부족이었고, 신학생들의 관심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집단차별’, 피해자면서 동시에 가해자

신학대학 안에서 여성신학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지금, 그러나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제13회 재일·일본·한국 여성신학 포럼(이하 포럼)을 되돌아보려 한다. 2월 24일~27일 강화도 바다의 별 청소년 수련원에서 열린 이번 포럼에는 목회자, 여성신학자, 평신도인 사회활동가, 그리고 비기독교인 등 다양한 위치의 재일·일본 여성들과 한국여성들이 참가했다. 신학대학과 교회에서 여성신학이 갖는 위치가 무엇일까 회의하던 시기에, 이 포럼은 내가 여성으로서 신학을 공부하고 여성신학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주었다.

포럼의 주제는 ‘현장에서 Racism을 생각한다’(부제: 지구화와 젠더)였다. 여기서 ‘Racicm’은 인종차별이라는 의미를 넓혀, ‘다양한 집단차별’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동안 여성신학의 논의가 남성/여성의 대결구도로만 이루어졌던 것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성이 남성에 의해 받는 차별과 희생만을 이야기해온 것에서, ‘racism’(집단차별)을 이야기함으로써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자신을 볼 수 있게 됐다.

한편 집단차별에 대한 논의는 재일·한국·일본의 각기 다른 역사적 삶 속에서의 여성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함께 열어주었다. 포럼의 한 축으로 역사기행이 진행됐는데 이것도 역사 속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자리로 기획된 것이었다. 제11회 포럼은 제주도에서 4.3항쟁의 아픔을, 제12회 오키나와에선 2차 세계대전과 미군에 의한 상처를, 이번 포럼에선 강화도에서는 침략과 항쟁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내년 2월 후쿠오카에서 열릴 포럼에서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일했던 탄광을 기행하며 재일한국인의 고난을 돌아볼 예정이다.

성매매 피해여성이여, 회개하라?

포럼 이튿날 전주대학교 기독교학부 객원교수 양현혜씨는 ‘세계화 시대 속의 한국사회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실태’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성매매는 세계화되는 자본주의 시장, 여성의 빈곤화,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성산업의 확산, 가부장적인 사회문화적 구조, 인종차별 등의 제반 문제가 압축되어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극한적인 폭력이다.

양현혜씨는 그 동안 교회가 성매매의 문제에 있어서 피해여성들을 정죄되어야 할 사람, 회개해야 할 사람으로 보았던 것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인권에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에 따라 교회의 자선, 선교사업, 인권운동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을 우리 안의 ‘일상적 파시즘’이라 표현했다.

셋째 날에는 해방신학을 바탕으로, 재일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겪는 정치, 정책적인 차별과 일본사회의 차별의식에 대해 장영자씨가 주제발제를 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저주하게 만드는 일본사회의 재일한국인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재일한국인은 30년 전 인권법에 위반되는 차별을 받았던 반면, 현재는 외적인 차별은 상당부분 해결되었지만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한국인의 국적을 갖고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위험 속에 있는 것이라 했다.

교회 내 성역할 구분 등 다양한 차별

침례교회 목사 에다미쯔 이즈미씨는 교회 내 성차별에 대해 언급하며, 한 여성선교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남부침례파연맹의 선교사가 1889년 일본에 도착한 후 선교와 관련된 일본침례교회의 약 반세기에 걸친 역사에 대해 연구하다 만난 여성선교사인 나오미 엘레자베스 쉘이다. N. A 쉘은 일본 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선교부 지도층에 의해 고정적인 여성 역할(미션스쿨의 음악, 영어교사)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선교부의 지시에 여러 번 거부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그 지시에 순종하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쉘은 일본침례교회 이사로 최고의 표를 얻어 선출되기에 이른다. 전쟁 전에 여성선교사가 미션스쿨 교사 이외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 것은 오직 쉘뿐이다. 에다미쯔 이즈미씨는 쉘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지금의 일본도 목사라는 직업에 ‘고정된 유형’이 있고, 그 유형에 어긋나는 사람은 목사로 취급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체토의에선 집단차별의 경험을 난상으로 이야기하며 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들을 논의했다. 여성을 가족의 구성원(며느리, 아내)으로만 존재하도록 만드는 가부장적인 교회,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적 구별에 따른 목회자와 평신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 차별, 동성애자 목사가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의 경험이 이야기됐다.

여성신학은 평등한 교회 만드는 주체

포럼에서 “주제별 발제에 여성신학 연구가 세밀하게 들어있지 않았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여성신학의 방법론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이것이 교회에서는 어떻게 말해지는가, 성서는 어떻게 말하는가를 비판하려면 한 발 더 나아가 여성신학적인 연구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포럼이 갖은 의미는 기독여성의 연대가, 그것도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복잡한 위치에 있는 재일·일본·한국 세 국가 여성들의 연대가 13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다는 것에 있다. 스스로 피해자일 뿐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한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치유하려는 노력은, 현실의 차별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해와 치유의 감수성이 바탕이 되는 한, 한국여성신학도 수많은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한 교회와 사회를 만들어갈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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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ce Storm 2004/03/22 [19:49] 수정 | 삭제
  • 꾸준히 연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하는 학문이잖아요.
    한국 교회들은 연구하려 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아예 생각이라는 걸 차단해버리는 면이 있어요.

    신도들보고도 무조건 믿으라고만 하지요.. -_-;
  • 핑크 2004/03/22 [17:59] 수정 | 삭제
  • 아래 원리주의님 말씀대로 기득권이란게 참으로 무서운 것라서 그들에게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것은 소유한 어떤 것을 달라는것으로 들릴 겁니다. 그리고 부정한 불평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성경"을 들이대 이단취급해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안에 머물면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일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얘기할 순 없지 않나 싶네요. 그렇게만 얘기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종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사회가 다 그렇지요. 얼마나 가부장적인 구조입니까.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인간사회에 머물면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사회가 변화면 종교도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종교도 계속 유지가 되려면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한국여성신학이 힘을 가졌으면 좋겠고, 여성신학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기사가 읽힌다면 좋을텐데요.
  • 원리주의 2004/03/22 [15:02] 수정 | 삭제
  • 기득권이란게 참으로 무서운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것을 달라하면 나는 흠칫 놀라 그것을 지키려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것은 소유한 어떤것을 달라는것으로 들리는듯하다

    그리고 그 부정한 불평등을 지키려는 부당한 행동에 "바이블"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어 든다

    비 성경적이다라는 이단으로 해석되고 이단의 싹은 잘라 버린다

    부당한 그들이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다며 공격할때 성경이란 책은 너무도 강력하여 어쩌지 못한다

    종교안에 머물면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것은 이치에 맞지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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