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걸작’ 여성가수 3인3색

한국 여성음악인 재조명-8

주문정언 | 기사입력 2004/04/18 [21:52]

‘저주받은 걸작’ 여성가수 3인3색

한국 여성음악인 재조명-8

주문정언 | 입력 : 2004/04/18 [21:52]
얼마 전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던 방준석, 이승열의 <유앤미 블루>란 듀오 앨범이 재발매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들으며 뒤늦게 발견한 그들의 걸작을 다시 부활시킨 것에 뿌듯해 했다. 나도 그 소식이 기뻤지만 동시에 부럽기도 했다.

<유앤미 블루>와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을 음악적 능력을 가진 정혜선, 코러스계의 숨은 실력자이던 조화롭고 절묘한 가창력의 신윤미, 또 지금도 다시 찾기 힘들 독특한 색깔의 목소리를 가졌던 ‘쉘부르’ 출신의 통키타 가수 손지예 등도 충분히 조명될 가치가 있는 ‘걸작’이다.


고수들보다 빛나던 신인, 정혜선

정혜선은 1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으면서 한때 정말로 뛰어난 여성뮤지션으로 손꼽혔던 인물이다. 그러나 유재하 가요제에서 불렀던 ‘나의 하늘’과, 그의 앨범이 발매됐던 당시 리뷰들의 호평은 이제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있다. 정혜선이란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그러나 아쉬워만 할 순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혜선과 같은 재능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

그의 목소리는 한번 들었던 사람이면 아마도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강한 마력을 갖고 있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 역시 예사롭지 않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수상 이후, 1992년 하나음악에서 조원익의 프로듀싱으로 만들어진 1집 앨범엔 ‘나의 하늘’ 외에도 ‘오 왠지’나 이국적인 느낌의 ‘해변에서’ 등 명곡이 실려 있다. 전곡의 작사, 작곡을 혼자 해냈고, 조동진, 김영석, 조규찬, 장필순 등 최고의 세션들이 의기투합한 앨범이었다.

‘생짜’ 신인인 정혜선은 그 앨범에서 수많은 고수들의 이름을 뒤로한 채 단연코 빛난다. 최고의 세션을 둔 신인가수가 그렇게 확실한 자기 색을 드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발매 이후 쏟아진 찬사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정혜선 노래를 한번 들어본 사람들은 마니아로 남았다. 이들은 애타게 정혜선 2집을 기다렸고, 1995년 다 만들어진 2집 앨범은 당시 하나음악의 부도로 발매되지 못했다. 몇 군데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록 곡들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2집의 ‘아침 신문’은 지금 들으면 거슬릴 수도 있는 순진한 정치 의식이 담겨있지만, 그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특이한 리듬은 대단하다. 특히 ‘꿈속의 꿈’이란 노래는 그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곡으로, 목소리 색깔이 듣는 사람에게 소름 끼칠 정도로 착착 달라붙는 느낌을 준다.

정혜선은 음악을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그것을 표현해 내는 목소리가 정말로 예사롭지 않다. 원초적인 느낌 때문에 간혹 한영애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 풋풋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낡은 LP 판이 직직 긁히는 듯한 거침과 어딘지 모르게 자기 파괴적인 기교의 창법, 그러면서도 내면의 맑은 울림과 풋풋함이 공존한다.

<유앤미 블루>의 앨범 재발매 소식을 들으며 제일 먼저 정혜선을 떠올렸다. 그렇게 훌륭한 음반을 내고도 좋지 않은 가요계의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는 지금 결혼과 함께 가정주부 역할에 묻혀있다. “새로운 자유, 상상의 기쁨, 그리고 지키고 싶은 믿음이 있기에 세상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음악을 하기로 했지만 그 길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욱 긴장된다”고 했던 그다.

그런 정혜선을 찾는 많은 팬들은 오늘도 앨범을 구하러 황학동 시장이나 하나음악의 인터넷 사이트, 심지어 정혜선에게 개인 메일을 보내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정혜선 팬 사이트 소식에 의하면 미발매된 2집과 더불어 1집 앨범의 수록 곡들까지 묶은 3집 앨범을 낼 계획이 있다고 한다. 언제까지 그의 앨범을 기다려야 할지 조바심도 일지만, 그의 재능이 자유롭게 펼쳐질 날이 실현된다는 확신만 있다면야 기다림도 견딜 만 하다.

‘칵테일 사랑’의 그 목소리, 신윤미

1987년 MBC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하나’란 여성 듀오를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그들 소식도 접하기 어렵지만 그때 대학가요제에서는 ‘작품하나’ 못지않은 대단한 여자 가수가 탄생했다. 그가 바로 신윤미다.

신윤미는 1987년 MBC대학가요제에서 ‘겨울비’란 곡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신윤미를 가장 쉽게 떠올리게 하는 음악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건 바로 마로니에 3집의 ‘칵테일 사랑’이다. 신윤미의 목소리로 음반 작업을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송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를 대신한 다른 가수가 방송에서 이 노래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그러나 정말 이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봄의 프리지아 향기’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 신윤미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라면 그를 쉽게 잊지 못할 거다. 청아한, 그러나 급격하게 뻗어가는 힘을 가진, 그저 넘겨 들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신윤미다.

이화여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신윤미는 대학가요제 이후 1988년 첫 독집을 발표했다. 이 독집 앨범에는 작곡을 공부한 ‘음악도’답게 스스로 작사, 작곡 능력을 선보였다. ‘새장을 열고’, ‘귀로’, ‘돌’, ‘왠지 우울할 때’, ‘창밖에 비친 겨울’ 등 곡들을 만들었고, 그 중에서도 ‘새장을 열고’는 지금까지 신윤미 마니아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신윤미의 독집 중 가장 대표적인 곡은 1992년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이젠 됐어’다. “하지만 이젠 됐어. 그대가 지금 있잖아~”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신윤미 특유의 맑지만 힘 있는, 또 그 목소리를 컨트롤하는 재능이 엿보인다. 그래서인지 신윤미는 코러스로 각광 받던 가수이기도 했다. 공일오비 3집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5월 12일’에서 그의 절묘한 코러스에 멤버들은 찬사를 보냈다. 또 박광현 4집 앨범의 코러스와 드라마 <파일럿> 주제곡 코러스, 윤상 2집 part 2의 ‘고백’에서 피처링을 하기도 했다.

1994년 마로니에 3집에 참여해서 ‘칵테일 사랑’같이 지금까지 사랑 받는 곡을 부르던 신윤미는 그 뒤 유학을 떠나면서 잠적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나 팬 까페를 통해 접한 신윤미의 소식은 그가 여전히 ‘음악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던 신윤미는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목회활동과 더불어 뉴욕 소재 플러싱 교회의 지휘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애플 프러덕션의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에는 뉴욕 ‘더글라스 메너’에서 가을 콘서트를 성황리에 치렀다는 소식도 있다.

이 외에도 일년에 한번 정기적 콘서트와 ‘신윤미의 노래세상’이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예전의 대중적인 가수에서 조금은 종교적 색채가 짙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팬 까페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그의 글에서는 가슴 벅차게도 여전히 ‘노래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음악인으로서의 신윤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그의 그리운 목소리가 전파를 탈 어느 날이 올 것이 기대된다.

묘한 음색의 통기타 가수, 손지예

앞서 얘기한 가수들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아마 손지예인 듯싶다. 통기타와 청바지 세대에 명동하면 떠오르는 ‘쉘부르’에서 노래를 부르던 손지예는 1989년 데뷔앨범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이문세나 전영록도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실력파 가수들만을 선별하던 ‘쉘부르’는 1970년대부터 유명한 곳으로, 신계행, 양희은, 변진섭, 박강성, 송창식, 김세환 등 지금도 음악계에 통기타 가수로서 확실한 계보를 잇는 가수들이 거친 곳이기도 하다.

손지예를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영화<접속>을 이야기하면 될 것 같다. 그는 1997년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에서 방대식와 듀엣으로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를 불렀다. 유명세로 따지자면 <접속>처럼 손지예를 쉽게 떠올리게 하는 앨범은 없지만, 손지예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독집의 ‘이젠 사랑하지 않아요’다. 1991년 가을 심야 라디오 프로에서는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과 더불어 당시 손지예 독집 앨범에서 그의 자작곡 이던 ‘이젠 사랑하지 않아요’가 가장 각광 받는 선곡이었다.

그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음색’때문이다. 특별한 기교가 없는 창법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독특한 목소리가 노래에서 가장 잘 부각됐다. 복성 같은 느낌으로 묘하게 꺾이면서도 절묘하게 맑은 손지예의 색깔은 “이런 목소리의 가수가 있었단 말이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역시 하나음악 출신답게 1991년 손지예의 2집 앨범에는 손진태와 조동익이란 공동 프로듀서의 이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손지예의 목소리 역시, 정혜선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강력한 색깔을 뛰어넘는 마력을 가졌다. 손지예의 목소리는 그만큼 독특하다. 아주 맑으면서도 어딘지 쫀득한 느낌이 드는 그의 소리는 청아한 목소리의 강수지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섹시한 느낌이 들게 하는 약간의 비음이 섞였으면서도, 탁하거나 퇴폐적이지 않다. 상당히 묘한 조화를 이루는 목소리다.

손지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1988년 발매된 하나음악의 <하나 옴니버스 3집>에 있는 ‘외출’이란 곡이다.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유희열과 박주연, 박용준, 김현철, 박학기, 이병우의 곡과 함께 들어있는 이 앨범은 손지예의 독집에 비해 비교적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되는 앨범이다. 또 차인표 주연의 영화 <짱> 주제곡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재능있는 여성뮤지션의 부활을 꿈꾸며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재능 있는 여가수의 부재’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재능 있는 여가수들은 생각보다 많다. 이들에게 함부로 증발해 버렸다느니, 잊혀졌다느니 하는 말을 해선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음악을 지운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여전히 어딘가에서 음악활동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으며, 우리가 기억하는 한 이들이 가슴에 품은 음악을 언제든 다시 무대 위로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오히려 재능 있는 여가수들의 앨범이 재발매 되지 못하고 있는 건, ‘재능 있는 여가수의 부재’를 함부로 거론하는 평론가들의 무심함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뮤지션들의 재능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그들을 우리 곁에 다시 살아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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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4/04/23 [17:15] 수정 | 삭제
  •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힘을 주던 가수중의 한명이었어요.
    그녀의 코러스를 세심하게 걸러내고 거기에 집중했지요.
    '이젠 됐어'는 노래방에 갈때마다 불렀어요.

    아 그때의 로망이 떠올라요 ^^

    기사 고맙습니다.
  • 용기 2004/04/21 [14:02] 수정 | 삭제
  • 여성음악인 재조명.. 흠흠 벌써 향기로운 노래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요.
  • 동감 2004/04/20 [01:04] 수정 | 삭제
  • 정말 인상적이네요.

    "없다"라고 쉽게 말하는 무심함이
    있는 재능들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군요, 정말.
  • 제롬 2004/04/20 [00:54] 수정 | 삭제
  • 안그래도 최근들어 신윤미씨의 소식이 궁금하던 참이었어요.
    80년대에 코러스로 각광받으면서 여기저기 라디오 게스트로도 나오곤 했었죠.
    신윤미씨 소식을 들으니 무척 반갑네요. ^^
  • 페니실린 2004/04/20 [00:50] 수정 | 삭제
  • 중요한건 아닌데^^
    유앤미블루 "방준식"이아니라 "방준석"이에요

    기사 잘읽고 있습니다^^
  • 현현 2004/04/19 [13:58] 수정 | 삭제
  • 늘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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