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시립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주부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의 일이다. 친구들을 사귀어 보겠다고, 또 그들과 어울려 책도 읽어보겠다고, 제법 야심찬 계획을 갖고 그 모임에 나갔다.
가입을 한 바로 직후는 마침 겨울방학이라서 독서모임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몇몇 회원들과 사적인 자리를 몇 차례 가졌고, 그녀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더욱이 비슷한 또래들인 그녀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나는 친구들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나를 제외한 회원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 몇을 가지고 있는, 평범해 보이는 전업주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흔하게 주변에서 보게 되는 주부들과는 달랐다.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 늘 부지런히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 경제적인 능력을 갖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매우 담담했다. 한번은 남편들과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화가 나고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경제적인 독립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다며, 자신들의 실존적인 상황을 과장하거나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말할 때 그들 속에서 여성들의 희망을 보았다.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한 후에라야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기에, 나는 그녀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한계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들이 좋았다. 그녀들이 우리 나라 사회에서 소위 중산층의 여유 있는, 배운 여성들임에 분명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평가했었고, 독서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견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시 새 학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독서토론이 시작되면서는 기존의 낡은 생각들과 틀을 지지하는 발언들을 자주 듣게 되었고, 그것이 너무나 견고하다는 데 무엇보다 놀랐다. 몇몇 회원들이었지만, 그들과 의견이 충돌할 때가 차츰 많아졌다. 여러 차례 건강하게 토론으로 펼쳐지지 못한 채, 꼬투리 잡기 식의 집요한 공방으로 치닫게 되면서는 나는 지쳐갔다. 그러다 급기야 지난 주, 한 회원으로부터 “윤하씨는 똑똑해서 그런가? 윤하씨, 만약 교사가 되었다면 전교조가 되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교양 있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 말을 했지만, 누군가의 의견을 “그래 너 잘났다”라는 식으로 받아 치는 것은 분명히 폭력적이다. 게다가 전교조는 그 당시 맥락에서조차 벗어난 비유였는데, 그런 상황에도 맞지 않는 비유를 끌어들인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 말은 ‘전교조는 문제가 있다’는 전교조에 대한 정치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인 언술’이다. 이런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잣대로 한 사람의 의견을 일축시키는 것은 분명 인신공격적인 태도임에 분명하다. 결국, 이런 상황에까지 이른 뒤에야 그 공간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많은 여성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그곳에 나갔다. 물론, 나는 그곳의 더 많은 사람들을 여전히 좋아한다. 그리고 그녀들을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 하나하나가 다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조직’으로 형상화될 때에는 사회적이고 계급적인 견고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가슴 깊이 깨달았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친구되기는 실패한 듯하다. 어쩜 애시당초 이런 시도는 부질없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가 될 것이다. 맞장구를 쳐가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시간이 없어 만나지 못하는 마당에야 이렇게 짜증나는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나의 부족한 인내심을 애써 변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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