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근로환경의 문제로 보자

직장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적용하면-3

최이윤정 | 기사입력 2004/06/14 [00:27]

성희롱, 근로환경의 문제로 보자

직장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적용하면-3

최이윤정 | 입력 : 2004/06/14 [00:27]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예방과 규제가 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피해 구제도 불충분하다. 이 같은 현실에서 직장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식하고 산재보상제도를 적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효과를 지닐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이 직장내 성희롱을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해결 방법과 함께 직장내 성희롱 문제 해결을 위해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실질적인 방안으로서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가지는지 살펴보겠다.

‘사적인 문제’에서 ‘노동문제’로 드러내기

그 동안 직장내 성희롱의 고통으로 인한 피해와 후유증들은 노동 환경 안에서 적극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개인적인 문제로만 인식돼왔다. 여전히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피해자 비난과 이를 사적인 문제로 보는 사회적 편견과 통념 때문에, 피해자는 성희롱 피해를 드러내지 못할뿐더러 그 이후에까지 불이익을 받아왔다.

이러한 피해와 고통을 산업재해로 보는 것은 직장내 성희롱을 사적인 문제로 보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와 문화를 변화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기대된다. 노동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상 사고’라는 점을 분명히 하여 그에 대한 산재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노동자 권리로서 인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전한 ‘작업환경’ 위해 성희롱 예방 가능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의 과실 여부에 상관없이 노동자에게 보상을 보장하도록 사용자의 무과실 책임을 지우는 것이 기본이다. 산재보상보험이 사용자의 보험료를 재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산재보험 비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전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산재보상제도가 직장내 성희롱에 적용되면, 사용자는 성희롱 예방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직장내 성희롱을 ‘노동재해’로 인식함으로써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위한 직장내 성희롱의 예방은 지금보다 강조될 것이다. 현재 산재 예방이 산업안전의 차원에서 정책적, 제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듯이, 직장내 성희롱 예방도 산업안전 정책의 일부로 포함되면 기업 내에서 직장내 성희롱 예방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공할 것이다.

직장내 성희롱을 작업환경의 ‘위험요인’으로 보고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시행하게 되면,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철저한 감독과 규제를 통해 물리적인 도구나 위험물질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처럼 노력을 강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업환경의 관리 감독의 일부로서 물리적 요인 외에 직장 규율, 사내 고충처리절차, 작업공간의 분위기, 직장내 성비 등 직장내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한 작업환경 요인의 측정, 관리 방법도 가능하다.

또 일상적인 직장 분위기 정도로 인식되던 ‘직장 문화’를 ‘작업환경’으로 인식하게 되어, 그간 허용해오던 관성화된 폭력과 차별에 대한 수정 조치도 이뤄질 수 있다. 직장내 성희롱은 조직위계적 권력을 이용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방을 성적, 인격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권력 행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직장내 권력관계에 기인한 성폭력 자체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작업환경이 조성되면 피해자는 문제제기의 분명한 수단을 가지고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잠재적인 가해자가 성희롱을 단념하게 되는 효과를 얻음으로써 성희롱 예방에 실질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산업재해 예방 정책이 “무재해 정책(zero accident policies)”으로 표방되어 사업주가 산업재해 예방에 적극적인 관리와 감독의 자세가 필요하듯, 직장내 성희롱에 대해서도 기업 내에서 무재해 정책에 입각한 적극적인 예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직장내 성희롱에 대해 사업주는 성희롱 불관용 원칙(zero tolerance sexual harassment policy)을 천명하고 희사 곳곳에 “성희롱이 없는 회사(harassment-free workplace)”라는 게시물을 부착하여 성희롱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 방법은 노동자, 고객, 외부인 등 기업의 성희롱 예방에 대한 인식을 확고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 실질적 피해 구제

현행법에 따를 때, 산재 근로자는 산재보상제도에 의해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근로자는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무과실책임을 주장함으로써 근로자 개개인이 사업주와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 없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해보상을 받게 되어, 이후의 사회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업무상 재해'로 요양중인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해고가 제한되고 근로관계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치료와 사회복귀가 가능하다. 직장내 성희롱의 산재보상은 사용자 책임과 민사상 손해배상 과정을 둘러싸고 실제로 조직 내에서 받는 불이익이나 고용차별의 경감 효과 및 신속하고 실질적인 구제를 기대할 수 있다.

산재보상을 통한 직장내 성희롱의 피해 구제는 치료비에 해당하는 요양급여, 일시 장해에 의한 휴업급여(임금의 70%지급), 영구 장해에 의한 장해급여, 사망에 대한 현금급여 등이 가능하다. 현재 남녀고용평등법 상의 직장내 성희롱 관련 조항에 치료, 치유를 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회사의 규정이나 협의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산재 적용을 통해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을 때까지 치료가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한 결과, “현재 산재보상 내용에서 치료에 의한 요양급여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부분에 한해서 지급되기 때문에, 성희롱의 치료가 될 수 있는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 치료 등은 보험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현재 보상체계에서는 제외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비교해서, 미국 연방정부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성희롱 문제로 치른 경제적 비용인 2억 6천 7백만불 중에서 약 10분의 1인 2천 6백만불이 성희롱 이후의 정신적 심리적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병가 등 포함)이었다. 또한 미국의 경우 급여 내용에 치료비 외에도 생계비, 직업과 심리상담, 재활과 직장복귀를 위한 비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부분은 향후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적극 고려하여 보상 내용과 체계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성희롱 피해를 근로환경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피해자에 대해 적대적인 환경에서 피해자가 먼저 이와 같은 피해 구제를 요구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피해 구제 방안이 제도화되고 성희롱 피해를 산재보상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되어 있다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에 대해 보다 신속하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구체적인 치료 체계를 통해 피해자에게 일어나는 실질적인 노동권(건강권) 침해를 막을 뿐 아니라, 적절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피해자 비난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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