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법 부녀·간음 등 용어 바꿔야

성폭력특별법 시행 10주년 기념 토론회서 제기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07/11 [16:37]

성폭력법 부녀·간음 등 용어 바꿔야

성폭력특별법 시행 10주년 기념 토론회서 제기

김윤은미 | 입력 : 2004/07/11 [16:37]
성폭력이 나쁘다는 것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성폭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엔 얼마나 공통점이 있을 지 미지수다. 페미니즘에서 얘기하는 성폭력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물리적인 성적 행위뿐만 아니라 정황적, 언어적, 공간적 폭력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한편 통념상의 성폭력은 아직도 피해자가 거의 죽을 지경에 처할 강간 수위의 폭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 두 개념은 좀처럼 마주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페미니즘에서도 성폭력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불평등한 권력관계에는 남녀의 불평등만 포함되는가? 아니면 여타 불평등이 모두 포함되는가? 또한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의 개념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하는가? 7일 열린 성폭력특별법 시행 10주년 기념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선 성폭력 문제와 반성폭력 운동의 향방을 둘러싼 논란들이 제기됐다.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부재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변혜정 소장은 ‘성폭력 개념, 놓을 것이냐? 다시 잡을 것이냐?’ 제목의, 이목을 끄는 발제를 했다. 변혜정 소장은 현재 반성폭력 운동이 처한 문제점에 대해, 운동의 결과 “성폭력이 나쁘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정작 왜 나쁜지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변 소장에 따르면, 한국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성폭력을 ‘성적인 의미를 강조한 폭력’으로 규정했고, 이후 ‘폭력’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법적 해결을 위해 주력해왔다. 때문에 이 법에서 여성들은 고통스러운 피해자로만 존재할 뿐 욕망을 말하는 주체가 되지는 못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개념 역시 법과 손을 잡으면서 성적 자유를 가진 개인들의 권리 문제로 이해되며, 성 중립(gender-blind)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성폭력에 대한 급진주의적 접근은, 데이트 강간이나 아내강간처럼 성폭력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성애적 성관계의 폭력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역시 여성들을 단일하게 ‘피해자화’하는 효과를 낳는 한계를 보였다. 변혜정 소장은 성폭력이 왜 나쁜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어떤 여성에게는 성폭력이지만, 어떤 여성에게는 아닌 맥락의 차이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이유정 변호사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경험을 법에서 얼마나 포괄할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여성의전화 정춘숙 부회장은 오히려 “성폭력이 대 여성폭력의 본질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 가정폭력 예방교육, 성매매 예방교육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폭력특별법, 남성 피해자 포괄해야

이유정 변호사는 현 성폭력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가 아닌 ‘사람’으로, ‘간음’이 ‘구강성교와 항문성교 및 성기가 약간이라도 삽입되는 경우를 포괄하는 성교’ 개념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성기 삽입중심 성교 개념을 벗어나는 한편, 남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에도 이 법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슈화 된 군대 내 성폭력이나 동성 간 성폭력 문제가 제기하는 것처럼 객체를 여성으로 제한하지 않게 되면, 성폭력을 대 여성폭력으로 간주해 온 것과는 어느 정도 상충된다. 즉 성폭력은 ‘젠더’(gender)라는 변수를 포함하면서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보다 더 큰 범주로 이해될 수 있다. 변혜정 소장은 성폭력을 젠더 폭력으로 다룰 것인가, 아니면 더 넓은 성폭력 개념을 구성할 것인가가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라고 말했다.

한편 여성부가 법무부 등 관련 부처들이 진행하는 산발적인 반성폭력 정책을 통합해서 여성단체들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동성폭력피해센터 심의에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한 명도 포함되지 못한 일이나, 1366시스템으로 인한 일선에서의 혼재도 지적됐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유경희 소장은 “여성부는 피해자 지원 시스템이 곧 피해자 지위강화 시스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폭력특별법이 지닌 법적 한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나 현 반성폭력 운동이 처한 난점에 대해 토론회 참가자들 대부분 의견을 같이 했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연구나, 검찰 등에 대한 실제적인 교육 등 새로운 교육문제도 제기됐다. 성폭력의 개념 확장부터 실제적인 사건 해결에 이르기까지 성폭력특별법 시행 이후 10년 간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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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2004/07/14 [17:47] 수정 | 삭제
  • 피해자들을 두번 죽이는 끔찍한 단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음.
  • Gmira 2004/07/14 [16:52] 수정 | 삭제
  • 경찰, 검찰, 법원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아닌가 싶네요.
    해석의 문제가 큰데, 법률 문항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인것 같기도 하구요.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깨져야할 텐데 참 더디 갑니다.
  • 하나 2004/07/13 [10:15] 수정 | 삭제
  • 정조침해죄 규정은 폐지됐지만 아직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명시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성폭력이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범죄만이 아니라면 응당 부녀 표현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부녀에 대한 범죄라니 답답하네요.

    남성 성기삽입 중심으로 강간을 규정하고 나머지는 상당히 미약한 범죄로 규정하는 것도 정절 개념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지 않구요.

    그리고 피해자를 남성도 포괄하고, 가해자를 여성도 포괄한다해도 성폭력은 많은 경우 대 여성폭력이 아닐까요, 많이 대립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의 경험을 법에서 얼마나 포괄할 수 있을지는 저도 의문이 드는군요. 기사 보면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좋은 기사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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