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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중심주의’ 새롭게 고민하자
반성폭력 운동 딜레마 제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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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A대학의 총여학생회는 술자리에서의 성폭력 사건을 신고 받고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가해자는 끝까지 자신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늦은 밤 술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던 만큼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했다. 성폭력 대책위원회 측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대책위 활동은 '사실 입증'에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그 해결이 쉽지 않았다.

당시 대책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활동가는 ”피해자가 자신의 당시 상황과 맥락을 잘 전달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피해자에게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마치 2차 가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 상황을 맥락화해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과 피해를 의심하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왜 성폭력인가’ 설득력 가져야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가 주최한 ‘대학 내 반성폭력 문화 확산을 위한 워크샵’ 둘째 날 프로그램에서 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소장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볼 때, 피해자의 의미 체계에서 그 행위가 성폭력으로 의미화 된 ‘맥락’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까지 반성폭력 운동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큰 원칙 하에서 ‘피해는 피해다’라는 명제가 구체적으로 ‘왜’ 그것이 ‘그 여성’에게 피해인가를 질문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반성폭력 운동과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해 왔다. 이는 성별권력관계에 기반해 남성의 시각과 언어로 구성되어왔던 ‘객관성’을 해체하고, 성폭력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했을 때만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야기하면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의 말을 무조건 다 믿어주는 제멋대로주의인가’ 또는 ‘누군가 성폭력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건은 곧 성폭력 사건이 되는 것인가’라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반성폭력 운동의 과정 속에서 가졌던 딜레마에 대답하기 위해 피해자 중심주의가 새롭게 고민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그것을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게 된 ‘과정’과 ‘맥락’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도식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변 소장은 지적했다.

‘사건 해결은 이래야만 한다’는 도식적 접근 위험

B대학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했던 한 활동가는 자신이 담당했던 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겉으로 보기에는 대책위원회 활동에 협조적이었고, 피해자에게도 사과문을 몇 차례 전달했지만 피해자는 전혀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대책위를 구성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의 가해 ‘사실들(facts)'을 확인하고 그에 대해 성폭력으로 규정하여 해결하는 과정은 가해자에게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피해자가 성폭력이라고 하니 어쨌든 미안하다”는 태도 이상의 것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공개사과를 받고 가해자 재교육 프로그램까지 했지만 피해자와 지원자들 모두 사건이 해결됐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무엇을’ 문제 삼으려 했으며 피해자의 ‘무엇을’ 지원하려 했는가 등의 질문이 제기된다.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왜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말하게 되었는가 라는 구체적인 피해 형성의 과정과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는 무조건 나쁜 놈, 피해자는 ‘건드릴 수 없는’ 피해자로 고정시키면 그 피해의 ‘맥락’을 놓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여성’의 시각으로 성폭력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구체적인’ 여성의 경험에서 호명되고 서술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새롭게 고민해야 할 과제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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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13 [01:25]  최종편집: ⓒ 일다
 
니콜 04/09/13 [11:03] 수정 삭제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 터지면 그거 해결하는 데 대책위꾸리고.. 대책위 활동하는 게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아주 나중에 가서 진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했던건가..피해자에게 뭘 도와주고 학내에는 뭘 알리려고 했나.. 가해자는 모른단 식으로 나오는데.. 그런 생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리고 오히려 학내에서 여론이 더 나빠지거나.. 소송당하는 경우까지 있기도 한 학교도 있고 그럼.. 피해자중심주의가 항상 옳았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피해자 중심주의가 뭔지를 잘 몰랐다는 생각도 들어요. 도식화는 경계하자는 얘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학내에서 운동가들은 2년정도면 또 바뀌지만 계속.. 뭔가 또 많은 발전이 생길지도 모르죠.
04/09/13 [15:22] 수정 삭제  
  피해자가 너무 많은 기대를 갖게 되는 것도 나중엔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으로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해결에 한계가 있는데, 아주 실마리가 안 풀려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피해자와 지원집단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성폭력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엉뚱한 데서 싸움?이 터지기도 하고요.

성폭력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사회에서 반성폭력 운동은 참 힘들고 지난한 운동인 것 같아요.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막연한 믿음? 같은 것도 이제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운동은 좀 더 힘 받고 나아지길 바랄 뿐이죠.
........ 04/09/13 [17:07] 수정 삭제  
 
도식화된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요.
"가해자 사과문과 실명공개 자보화"가 마치 대학성폭력 사건의 해결지침인 것
처럼 생각되어왔던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워크숍에서도 실명공
개는 위험이 크고, 그런 게 지침처럼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었죠.

그것 외에도 대책위가 사건을 (실명은 빼고) 알려내는 과정에서도 왜 이 사건
이 성폭력인지를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는 식이 아니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도 피해가 있
었다고 봐야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더 황당한 경우는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왜 상황을 따지고 묻냐고 하
는 것이에요. 그런 질문이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면 '2차 가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나오죠. 그런 걸 2차 가해라고 해버리면 안 되지 않나요? 만약 정말 소송이
라도 하게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그런 것들 공유했으면 해요. 학단위 한 두곳만 아니구요.
dreamer 04/09/14 [14:31] 수정 삭제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요.
물론 이전의 상태로 회복될 수는 없겠지만요.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어린 사죄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성폭력 피해를 겪은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성폭력 대책위 꾸려서 가해자 미팅을 했을 때
가해자 측은 시인 아닌 시인을 하면서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문 쓰면 될 거 아냐" 이 따위로 나오면,
피해자는 더 상처를 받고, 대책위는 어려워지죠.
그렇게 나오는 놈들이, 좀 생각있다 하는 놈들 중에 특히 많은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죽어도 아니라고 버티다가 들통이 나고,
피해자와 대책위를 이상한 집단으로 모는 것보다 나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런 태도를 보면 그게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게 됩니다.

사과문을 받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건의 당사자와 외부에도 성폭력 사건의 정황을 제대로 설명해내고
이해시키는 건 꼭 필요한 일 같아요.
cool 04/09/22 [21:42] 수정 삭제  
  권리란 것이 항상 양쪽으로 날이 있어서,
한쪽의 권리가 향상되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죠.



피해자 중심주의를 새롭게 고민하면서,
가해자의 입장 역시 고려해주는건 어떨까요???
가해자도 역시 인권을 갖고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새삼 기억해주는것 말이죠.



사실 이렇듯 엄청난 "피해자 중심주의"가 적용되는 형사사건 분야가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아실테고,
이렇듯 엄청난 "권리"를 획득한 성폭력 피해자에 반비례해서, 가해자는 권리는 추락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 인정해야하겠죠.




그 과정에서, 분명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한 측면이 있을수 있다는 사실까지도요.

만약, 남성으로써 여성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남자들이 없지는 않다는 사실은 안다면,


여성들도 항상 여성중심으로만 사고하지 않는게 건강한 사회가 아닐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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