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박재령님은 모스크바 유학생으로, ‘러.여.인.’(재러 한인업소 내 불법 성매매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입니다. -편집자 주>
모스크바 성매매 실태를 살펴보면 한인남성들의 '맹렬한' 자기중심적 성의식 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물리적 구조를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기업과 공관의 접대문화다. 모스크바에는 한국 대기업들을 포함한, 유수 기업체의 지상사가 존재하며, 이 지상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접대'를 주요 기업활동으로 행하고 있다. 모 기업의 경우, 한 지사에 한 달에 3만불 가량을 접대비로 지출한다. 연간 수 조원에 이르는 돈을 향응접대에 쏟아 붓는 대한민국의 관행은 모스크바에서 더 심도 있게 재현된다. 이곳 한인사회에는 아무런 사회적, 이념적 제약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접대비는 무한정 나온다” ![]() 기업의 접대 대상은 결코 러시아측 바이어가 아니다. 순전히 한국에서 오는 정,관,재계 인사들과 기자들이다. 한인 가라오케에 성매매 문제가 가시화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어느 기업체 직원은 말했다. '여기서 접대비는 거의 무한정 나온다'고. 이들은 접대 명목으로 유명인사들과 더불어 숱하게 즐기고 있다. 사회에서 배제된 현지 여성들의 위치 한편, 기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둔 여성의 경우 '접대는 남편 회사생활의 불가피한 부분'이라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사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모스크바의 대기업 지상사 직원가족들은 예외 없이 지상사 직원인 남편, 전업주부인 아내, 아이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한 달에 4천~5천불 가량의 주택보조금, 연간 2만불 가량의 아이들 교육비, 자동차 등을 기업으로부터 지원 받는다. 국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특혜를 누리는 지상사 가족들, 그 중에서도 주부들은 남편이 종사하는 기업체에 그 어떤 불만도, 문제의식도 갖기 힘들다. 모 대기업의 경우, 자사 해외주재원 부인들의 현지에서의 경제사회활동을 금하고 있다. '부인이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교육에 매진해야 남편이 아무 걱정 없이 회사생활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당한 조건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불만은 회사측의 특혜에 가까운 경제적 지원으로 인해 무마된다. 이렇게 해서 지상사직원들의 부인들은 남편이 종사하는 기업의 수혜자로서 기업측의 논리와 이해관계에 길들여지게 된다. 사회생활로부터 소외된 직원부인들이 자신의 남편이 가담하는 가라오케 성매매 실태를 제대로 접할 기회는 차단되어 있다. 한편 지상사 여직원들의 인사는 대부분 공채가 아닌 현지채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지채용 직원들은 일종의 계약직원으로서 위에서 언급된 경제적 수혜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 여직원들의 업체에서의 위치가 취약한 것은 자명하다. 이들은 기업의 비정상적인 접대관행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되, 당연히 그 현장에서 제외되며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한다. 업주와 대사관, 공생관계? 얼마 전 모 기업 모스크바 지사 사무실을 모스크바의 유명 가라오케 주인이 대낮에 방문한 일이 있다. 그는 지사 간부에게 수 천불에 달하는 외상값의 일부를 받아낸 후 돌아갔다. 업주들은 기업체를 방문해 떡을 돌리고 업소의 잦은 이용을 당부하곤 한다. 한 업주는 ‘러.여.인.’의 발족을 주도한 친구가 한국대사관 측에 가라오케 불법 성매매 관련 민원을 청구했을 당시, 대사관에도 방문하여 외교관들에게 영업상의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이들은 이렇게 당당하게, 의리 있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동안 ‘러.여.인.’ 회원들은 주변의 몇몇 남성 기업체직원들로부터 성매매 반대 운동에 대한 관심과 동의를 얻은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일개 직원으로서 기업의 관행을 거스를 수는 없으므로 가라오케 출입을 자제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결국 이들은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한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에 반하는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매매는 기업체의 접대관행과 직결되며, 개인의 도적적 용단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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