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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
‘해뜨는 집’의 김명희, 은재식씨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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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를 만난 건 딱 4년 전이다. 이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건 아마 그들을 만나기 2년쯤 전이었을 게다. 그때 나는 추운 계절에 회자될 만한 따뜻한 얘깃거리를 찾아야 했고 문득 예전에 지나치면서 들었던 한 부부 얘기가 떠올랐지만, 막상 찾으려고 보니 누가 어디서 그 얘기를 나에게 해주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기억을 추적해 이 부부의 소재를 파악했다.

당시 나의 기억 속에 있던 이야기는 ‘비혼 남녀들이 입양, 양육을 하기 위해 일시적인 부부관계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 정도였다. 왠지 연말연시면 언제나 등장하는 가족 중심의 따뜻한 미담기사 거리와 달리 뭔가 다른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설렘마저 느끼며, 이들 부부를 만나러 갔었다.

“우리 정말로 결혼했어요.”

2000년 대구시 산격동.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에는 다섯 살 난 여자아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 그리고 어른 둘이 함께 살고 있었다. 막상 만나고 보니, 들었던 내용과 달라진 상황이 있었다. 비혼이라고 들었던, 생후 4개월이 된 혜진이의 엄마 김명희씨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는 은재식씨는 비혼이 아니었다. 결혼을 했단다. “에이, 사실대로 말해요. 괜찮아요”라고 했더니 “정말로 결혼했어요. 하하하…” 둘 다 부끄러운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비혼인 채로 세 아이의 엄마 아빠 역할을 하던 두 사람은 어쩌다가 정말로 결혼했다. 산격동 집에서 두 사람은 대안가정 ‘해 뜨는 집’이라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 부부는 마침 생후 4개월부터 양육하던 혜진이(당시 5세)의 입양절차를 알아보고 있었다. 생부가 양육할 형편이 안되어 위탁 양육되고 있던 초등학교 남매와 부부를 포함해 가족은 모두 다섯이었다.

허름한 곳이긴 했지만 월세가 아니라 전세로 그곳으로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건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던 은재식씨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자금’ 명목으로 2천만 원을 구해 와서 가능했다. ‘해 뜨는 집’을 처음으로 시작한 1995년에는 한 푼의 돈도 없이 월세로 시작했다. 그때 자원봉사를 하던 대학생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주었고, 냄비, 프라이팬 등등 필요한 물품들은 주위의 도움으로 채워졌다. 당시 도움을 주던 사람들은 한편으론 “돈도 한 푼 없이 뭘 먹고 삽니까?”라는 걱정도 함께 건네곤 했다고 한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지 5년 만에 은씨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자금을 받게 된 경위가 재밌다. 은씨의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 대학원까지 나온 아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결혼하지 않느냐? 결혼할 사람은 있냐”고 닦달하였다. 이에 은씨는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씨알도 안 먹히는 독립선언이었지만 평소 은씨 부모님의 걱정을 잘 알던 이모님이 “일단 혼자 살면 여자가 생기든지, 동거를 하든지 할 것이다. 그러면 된다”라고 옆에서 부채질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결혼은 생각도 없이 대안가정을 꾸려 살던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 데에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이번엔 김명희씨 부모님이 딸의 결혼을 걱정하고 맞선을 주선하는 등 강경한 자세로 돌변하였고, 은재식씨의 마음에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의 아빠 은재식은 엄마 김명희에게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은재식씨의 마음에서 일어났던 일은 지금도 잘 알 수는 없다. 돈이 없어도 화목한 ‘해뜨는 집’의 엄마아빠 역할을 더욱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김명희씨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각하게 되었는지. 무뚝뚝하고, 표현력이 부족해 혜진이마저 답답해하는 아빠 은재식씨에게 명쾌한 설명을 듣기는 어려웠다.

입양에 대한 통속적인 개념이 바뀐다면…

그로부터 4년 후. 우연히 한 기자에게 예전에 썼던 이들 부부 기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시금 이들을 떠올리게 됐다. 당시 인터뷰 후, 나는 예전에 가지고 있던 가족, 결혼, 사랑 등에 대한 일련의 사회적 각본들에 대해서 재고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갈 수 있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후속 인터뷰를 위해 은재식씨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우리복지시민연합에 들어서자 새삼 지난 세월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가정집을 개조한 사무실도 한 채 얻어, 1층은 우리복지시민연합이, 2층은 대안가정운동본부가 나누어 쓰고 있었다. 그리고 ‘해 뜨는 집’ 가족들은 그때 살던 대현동에서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사무실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족 구성원에도 변화가 있었다. 위탁되었던 남매는 생부에게 돌아가고, 그 후에 다른 두 아이가 위탁되었다가 한 아이는 생모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생후 4개월에 이들 부부에게 와서 입양되어 이제는 9살이 된 혜진이와 3년째 같이 살고 있는 유현이(15세)까지 네 식구가 되었다.

1층에서 은재식씨와 지난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윗 층에 있던 대안가정센터 사무국장 김명희씨가 내려오며 “이게 몇 년만이냐?”고 인사를 건넨다. 김명희씨는 대안가정운동본부를 열어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과 위탁가정들을 연결해주고, 대안가정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지원하고 상담하는 등 거의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듯 했다.

4년 전에는 없었던 유현이는 풍물캠프에 가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혜진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함께 시작된 인터뷰는 밤 12시가 되도록 계속 됐다. 혜진이는 자신이 입양되었단 걸 알고 있다. 애초부터 “어디서 귀동냥해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우리와 함께 얘기를 하면서 아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숨기지 않았다. “혜진이와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입양의 개념은 혜진이가 나이가 조금 더 들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통속적인 개념들을 만나게 되면 변화를 겪을 수도 있겠죠”라고 덧붙이는 은재식씨의 얼굴에는 걱정이 비치지는 않는다. 혜진이가 우리들이 하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인터뷰하는 동안 혜진이는 내복 바람으로 학교에서 배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고, 자기 얘기가 나올라치면 엄마한테 안겨 “내 얘기 하지 말라”고도 하다가 어느새 잠들어 아빠의 품에 안겨 침대로 옮겨졌다.

가슴으로 산고를 치러 만든 가정

얘기는 이리로 저리로 옮겨가기를 몇 번. 한국에서 돈 벌려면 사회복지시설이나 사립학교를 만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복지 마피아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얘기며 시설들이 가지는 인권 문제 등으로 갔다가 시계를 바쁘게 쳐다보며 인터뷰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이 동료가 됐던 건 한국의 복지제도와 시설문제 등을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특히 ‘해뜨는 집’은 두 사람이 각자 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받은 충격과 상처를 치유하면서 ‘가슴으로 산고’를 치러 만든 가정이다.

각자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들을 듣다 보니 새벽 3시를 넘겼다. 김명희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애육원에 가서 일을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이 일에 들어섰다. 은재식씨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선배의 권유로 고아원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그 후 봉사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은재식씨는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글씨를 못쓴다며 편지를 써달라고 졸랐다. 아이가 숙제로 받은 편지는 미국에서 원조품을 보내온 사람에게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아저씨가 보내준 나이키 신발 고마워요”라고 써달라고 했다는데 편지를 다 쓰고 나서 은씨는 “나이키 신발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윗집에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윗집은 원장사택을 일컫는 것이었는데, 이때 순진한 학생이었던 은씨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고아원 등에서는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부식비나 물품들은 원장 가족이 떼먹는 건 비일비재했다. 나이키 신발에서 받은 충격으로 시작된 관심은 그 후 사회복지시설들이 건축비, 인건비, 부식비, 판공비 등을 떼먹는 큰 비리문제와 인권문제까지 알게 했고, 지금의 복지부문의 시민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다.

“모든 것을 팽개쳐두고 지금의 나 자신까지도 부수어버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아니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을 곳으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곳으로…”

김명희씨가 예전에 써놓았던 일기 ‘고통’ 중 한 부분이다. 삼십 대 초반에 시작한 보육사 생활은 그에게 우울증을 남겼다. 물론 “이 고통 뒤에는 다시 회복할 날들을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래서 자신이 보살피던 아이들이 중3 졸업하는 걸 보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한번씩 미친 듯이 아이들이 보고 싶어 밤에 친구의 차를 몰아 그곳으로 달려가 자는 아이들을 보고는 바다로 뛰쳐나와 펑펑 울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다 주지 못하는 자신을 벼랑 끝에 몰아대며 학대하기도 했다. 그때 썼던 일기장에는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이 가득 적혀있다.

“일종의 정신착란 초기 증상이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장애인복지신문 기자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우울증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은재식씨와 함께 깊이 공감하는 부분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설’이 아니라 ‘사랑과 보살핌’이다”라는 뜻만 가지고, 가슴으로 산고를 치러 ‘해뜨는 집’을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느끼는 순간 살아있다고 생각했어요. 고통일지라도. 이제는 안정감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요.” 30대 초반까지 사춘기였다는 김명희씨의 얼굴에서 이제는 고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연신 호탕하게 웃고, 그녀의 꾸밈없는 모습에서 옆에 있으면 그냥 자꾸 따라 웃게 된다.

“해뜨는 집을 시작할 때 한 선생님에게 얘기했어요. 내가 이것을 너무 열망한다. 내가 너무 이런 공간을 원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면 어떡하죠?”라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이런 내면적 두려움이 있긴 했지만 주위의 걱정과 염려에는 “각자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고, 할 수 없는 건 하지 않는다”며 씩씩하게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40대인 두 사람은 20대, 30대에 꾸었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가족이 되는 것도 과정과 시간이 필요해”

인터뷰 말미에 “같이 산다는 건 무엇이죠?”라고 물어봤다. “사랑해서, 사랑하려고 같이 살기도 하죠. 그러나 사랑할 수 없어도 같이 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어서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연애할 때도 과정이 있듯이, 가족이 되는 것에도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건너뛰기란 없는 법이죠. 고통스런 터널을 함께 지나가고, 기쁜 순간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죠. 어차피 불완전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새벽이 깊어갔다. 딸 혜진이와 아빠는 침대에 나란히 잠이 든 지 오래다. 엄마와 나는 거실에 이불을 폈다. 내가 천정을 마주하고 눕자 김명희씨는 “이 집 참 좋지요?”라고 묻는다. 그 말을 들으니, 무일푼으로 월세로 시작한 가정이 10년이 지나 20평 남짓한 새집에서 살게 된 사연들을 다 담고 있는 것 같아 눈물겹다.

그리고 참, 곧 7개월 된 아들이 또 입양된다. 이번 아들 양육에서는 아빠 은재식씨의 역할분담 비중이 꽤 큰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날 풍물캠프에 갔다가 돌아올 유현이는 올해 대안학교에 진학하려다가 경쟁률이 워낙 세서 떨어진 모양이다. 이들 부부는 고등학교는 대안학교에 꼭 보내 유현이에게 독립심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해뜨는 집’ www.sunrisehome.org
대안가정운동본부 www.daeanho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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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1/17 [15:20]  최종편집: ⓒ 일다
 
지미 05/01/17 [22:34] 수정 삭제  
  입양, 위탁이 한 인간의 삶 전체가 걸려있는 거라 쉽지 않은 일인데 용기있게 행동해나가시는 거 보니까 기쁘고 부럽네요.
훌라후프 돌리는 아버지도 인상적입니다. ^^
앞으로도 이런 대안가정 소개 기사 보고 싶어요.
stars 05/01/18 [01:09] 수정 삭제  
  저도 그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지라, 두 분의 얘기에 더 공감하게 되네요. 천하에 몹쓸 사람들이죠. 착한 일, 좋은 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등쳐먹는 사람들이니까요. 벼룩의 간을 떼먹는 사람들이 없어지기만을 바랍니다.
두 분이 대안가정 꾸려가시는 얘기가 참 아릅답네요. 아이들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처음엔 혼란스럽고 편견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더 강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05/01/18 [09:15] 수정 삭제  
  가족이 되는 것도 노력과 과정이란 거 입양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사랑도 노력인 것처럼요. 그렇게 힘들 때도 있지만 기쁨도 큰 사랑을 가꾸어가시는 모습 보기 좋네요.
티티 05/01/19 [00:08] 수정 삭제  
  해뜨는집 가족들의 이야기 재밌게 잘 봤습니다.
^^ 05/01/21 [00:25] 수정 삭제  
  특히 훌라후프 돌리는 사진이 맘에 들어요.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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