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서 ‘명문대’라는 표현은 편의상 언급된 기사 등의 표현을 그대로 따온 것일 뿐이며, 그 단어가 포함하고 있는 상징과 가치평가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편집자 주>
‘美 명문대생 연세대 합격’ (경향신문) ‘美존스홉킨스서 연대 재입학 김소정양’ (매일경제) ‘美 최고의대 존스홉킨스 휴학 후 연세대 합격한 김소정양’ (한국경제) ‘美최고의대 하차하고 국내대학에 재입학’ (연합뉴스) "한국서 의사 돼 봉사할겁니다" (조선일보) ‘존스홉킨스 의대생 국내의대에 재입학’ (세계일보) ‘美 명문의대 중도 포기한 김소정 양’ (국민일보) 연초에 ‘미국의 명문 의대’를 중도포기하고 국내 의대로 재입학한 여학생의 기사가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한국에서 의사를 하고 싶다는 결심은 그 학생 개인에게는 큰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기사거리가 되어 전국민에게 알려져야 될 만한지는 의문이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게 부상하고 있는 ‘미국 명문대’ 신드롬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던 한국 언론의 명문대 타령과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학벌주의까지. 언론이 부추기는 명문대 지상주의 “서울대 나오면 분식집을 해도 잘 된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서울대 나와서 분식집 차려’ 라고 언론에서 그 분식점을 광고해 주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서울대를 필두로 한 ‘명문대’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왔고, 입시철이면 서울대 합격생들의 사연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해왔다. 올해도 벌써 학내 종교자유를 요구하던 강의석군의 서울대 수시 합격 소식이 화제가 되었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실험이 알려지면서 서울대 농생대 수시합격생들의 등록율이 높다며 언론은 합격생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아마 정시 합격자가 발표되고 나면, 언론은 또 뭔가 관심을 끌만한 서울대 및 소위 사립 명문대 합격생들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학벌이 곧 보증수표이자 계급이라도 되는 양 평생 따라다닌다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보도행태는 이미 수 십 년 묵은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최근 한국에 새로운 명문대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듯 하다. 지난 몇 년 사이, 언론은 소위 영미권 ‘최고명문대’ 합격생들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찾아낸 것이다. 미국대학입학이 한국의 새로운 아메리카 드림으로 부상한 것은, 민족 사관고등학교를 시작으로 특수목적고 출신 등이 한국에서 공부해서 미국 명문대를 갔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인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을 화제로 만든 것도, 한국의 대표적인 병리적인 특징인 학벌주의를 앞장서서 부추기고 있는 것도 언론이다. 우수한 개인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시설과 교수진, 탁월한 교육환경에서 공부해서 사회에 기여한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국비를 들여서 유학도 보내주는 판국이 아니냐고. 하지만 단언하건대, 지금의 미국명문대 신드롬은 그런 차원이라기 보다는 한국이 오랫동안 앓아온, 그리고 점점 더 계급적인 문제가 도드라지고 있는 입시 병의 확장 버전에 불과하다. 작금의 이 아메리카 드림의 핵심은 ‘부모 하기 나름’의 결과로, ‘영어’로 공부해서, 미국 명문 ‘학부’로 합격증을 받는 데 있다. 입시병과 중등교육 파행의 연장선 이런 상황은 합격생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극명하게 보여진다. 하버드에 자식을 입학시킨 한 학부모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길,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영어공부 어떻게 시켰느냐?”라고 한다. 현재 언론에 소개된 미국 명문대 합격생들의 책은 어림 잡아도 <공부9단 오기10단>, <공부불패 예리의 게으른 공부법>, <짱글리쉬>, <너나 나나 할 수 있다> 등으로 여러 권이 꼽히는데 그 중에서 또 흥미로운 것은 자녀를 미국 명문대에 진학시킨 부모들의 수기도 출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 토종 엄마의 하버드대 프로젝트> (딸이 미국 10개 명문대 합격 후 하버드대 입학했다는 어머니), <우리 아이 외국인학교 보내기> (큰 딸을 미국 명문대 진학. 두 자녀 외국인학교에 보냈다는 어머니)라는 책이 출판되어 있고, 합격생이 쓴 <공부9단 오기10단>에는 어머니의 특별기고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법’이 실려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제 한국사회에서 ‘하버드대’니 ‘아이비리그’니 하는 것들이 어떤 상징을 대체하고 있는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매년 불과 몇 천명만이 입학 가능한 서울대, 그리고 몇몇 수도권 대학을 상징으로 두고 학교며 학생이며 학부모며 가릴 것 없이 온 나라가 앓아온 입시병과 중등교육 파행과 유사하다.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이 있다면 ‘영어교육’이다. 지금 가장 앞장서서 이 새로운 아메리카 드림을 전파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예를 잠시 들어보도록 하자. 다음은 불과 한 달간 조선일보가 다룬 ‘미국명문대 관련’ 기사의 일부다. 국내 수재들 "서울대는 싫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명문대 수시 직행 /올해 외국어고 민족사관고서만 198명 예상 (2004.1.6 조선일보), 하버드大와 한국대학 무엇이 다른가 (2004/12/14 조선일보), 특목고 해외유학반 매년 급증… 올해만 美명문대 50여명 합격 /고교입학때부터 외국대학 갈 준비 전국 500명 추산 (2004.12.17 조선일보), “두 아들 美 명문대 보낸 엄마의 자녀와 대화법” (2004.12.27 조선일보), “미국대학 입학하려면: 수시·정시 나눠 모집 SAT·토플 등 성적 외 봉사활동·에세이 중시” (2005.01.05 조선일보) 미국명문대를 향한 판타지 이 정도 되면 사태의 심각성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간 수능 수석합격자 등이 그렇게 말해왔듯이, 언론은 합격생들이 특별한 사교육 없이 그저 열심히 공부했을 뿐인 ‘평범한’ 집의 ‘평범한’ 학생임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 나가본 적도 없는 토종이라거나 원래는 열등생이었다거나, 영어학원 좀 따로 다니고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 정도 나온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율성을 강조하고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전에도 수석 합격자가 과외 안 하고 학원 안 다녔다고 한다고 한국에서 언제 사교육 시장이 풀 죽은 적 있었던가. 연일 언론이 바람을 잡아준 덕에 사교육 시장은 이 학벌계급사회의 아이템 확장에 점점 더 신이 날 듯 하다. 최근에 ‘서울대 준비반’ 따위의 현수막을 달고 달리곤 했던 초중등학생 보습학원이 어느새 ‘아이비리그를 향해서’라는 현수막으로 갈아치운 것을 목격했다. 또한 보습학원인 종로엠스쿨은 이름부터 노골적인 아너스 클라스(Honors Class)라는 학원브랜드를 선보이며 ‘특목고 국제반 대비’, 미국 유학준비를 위한 SAT(미국대학 입학시험), 토플 등을 대비하겠다고 장담한다. 윤선생 영어교실의 TV광고가 “자녀의 미래를 바꿉니다”라는 카피로 한국인 미국 명문대생들을 광고에 대거 출연시킨 것도 근래의 일이다. 대구, 경북 지방에는 각종 영어 학교가 생길 예정이고 역시 ‘미국 대학 입시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데, 대구 경북 지방의 학원가가 이런 학교 입학을 위해서 어떻게 움직일지 불 보듯 뻔하다. 언론에서도 장단을 맞춰서 대구지역 ‘미국명문대 합격생’을 여기저기서 다뤄준다. “대구에서 공부해도 아이비리그 통해요" (2004.12.13 매일신문)라는 것. ‘세계최고의 명문대 하버드에서의 로맨스’를 그렸다는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는 미국 명문대를 향한 판타지를 드러내놓고 채택한다. 서울대 출신의 김태희가 “서울대를 넘어 세계 최고의 명문대 중 하나인 하버드 의대생으로 등장”(경향신문)한다고 화제를 모았던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영어발음을 두고서 기사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소위 ‘프레피룩’이라는 패션을 소개하는 언론의 설명은 설상가상이다. "중상류층 자녀들이 모인 미국 동부 명문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입는” (연합뉴스), “깔끔하면서도 엘리트다운 느낌을 주는 패션 스타일” (헤럴드 경제)을 주인공들이 “명문대생답게”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하버드’를 둘러싼 묘사들을 보고 있자면, 이 드라마가 왕정 사회의 귀족 계급들의 연애를 다루는 역사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학벌주의’ 문제의식 없는 언론 신문과 텔레비전만 보고 있자면 한국 사회의 미국 명문대를 향한 관심과 열정은 이미 도를 지나쳐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한국사회가, 언론이 이토록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과연 ‘교육’인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핵심은 알아주는 ‘명문대’이고 그것이 보장해 주리라고 믿는 미래와 지위다. 그나마 열심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성취지위라고 사회구성원들이 믿어왔을 때에는 기회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님도 알고 있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만 보내도 부모 허리가 휜다는 사교육비 문제도 하루 이틀이 아니며, 고교등급제 파문 등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졌듯이 ‘학벌’ 그 자체는 이미 반복 재생산되는 귀속 지위에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으로 인한 현실의 차별과 박탈감은 한국에서 ‘장애’ 다음으로 국민들이 심각하게 느끼는 차별요인이고 이 학벌주의와 관련된 문제들은 한국 언론 스스로도 익히 지적해왔다. 언론은 지겨울 정도로 이어져온 서울대/수도권 사립 명문대 타령도 모자라서 이제는 미국 명문대까지 끌어들이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이는 결과적으로 정규교육의 파행과 학부모 부담의 가중 그리고 무엇보다 사교육 시장 배 불리기에 기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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