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속에서 미끄러지는 기형인간들

음울한 ‘고딕문학’과 카슨 매컬러스

김현주 | 기사입력 2005/01/17 [20:01]

욕망 속에서 미끄러지는 기형인간들

음울한 ‘고딕문학’과 카슨 매컬러스

김현주 | 입력 : 2005/01/17 [20:01]
“엄마는 내가 안경을 쓰게 될까봐 몹시 두려워하여 시력검사를 받는 동안 검사판의 글씨를 속삭여 읽어 주었는데 그 때문에 엄마는 병실 문밖으로 쫓겨나가게 되었다.” (카슨 매컬러스 자서전)

딸이 정숙하고 아름다운 숙녀처럼 보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바람대로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 1917~1967)는 그 ‘끔찍한’ 안경을 쓰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그녀가 문학작품을 통해서 생산해낸 수많은 비정상적인 인간들과 그들의 어긋난 욕망까지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 같다. 1917년 미국 남부 조지아 주 출신의 카슨 매컬러스는 극단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즉 범죄자, "난쟁이", "벙어리", "꼽추", "거인", 성적으로 무능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부 고딕(Southern Gothic)’ 소설들을 창조해 낸다.

남부고딕, 일상적인 공간과 괴이한 사건의 결합

‘고딕 소설’이란 18세기 후반, 서양에서 중세 고딕 문화와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긴 낭만주의 문학의 한 사조다. 고딕 소설은 주로 중세의 사원이나 성당의 비밀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산하고 이교도적이며 비현실적인 환상 등을 주제로 다루었는데 여기서 여성은 악마적인 힘의 무기력한 희생자로 그려지곤 했다. 고딕 소설 작가에는 패니 버니(Fanny Burney),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등 여성 작가들이 유난히 많으며, 여성 독자층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 고딕 소설은 질이 낮은 대중소설로 폄하되었으나 최근의 페미니즘 비평의 입장에 의해 재조명 받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메리 셸리나, 브론테 자매 등의 소설들도 고딕의 전통 아래 있다. 18세기의 고딕 문학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루었던 데 반해, 20세기의 남부 고딕은 미국 남부지방의 전형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이거나 괴이한 사건들을 결합시킨다.

‘남부 고딕’의 주요작가로 일컬어지는 매컬러스는 18세기의 소설가들처럼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광기의 소유자, 공포와 악의 근원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의 인물들은 음산하지만, 육체의 배신 때문에 사회에서 고립된 외로운 인간들로 보인다. <슬픈 카페의 노래>(The Ballad of Sad Cafe)는 6피트 2인치의 키에 남자와 같은 근육과 힘을 가진 "사팔뜨기" 아멜리아, 뻔뻔스러운 성격에 추한 모습을 하고 있는 "꼽추" 라이먼, 그리고 아멜리아의 전 남편이었던 악마적인 범죄자 마빈 메이시 세 사람의 관계를 다룬다.

매컬러스 작품에 등장하는 ‘기형인간’들

아멜리아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는 중에도 ‘작업복의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없어’ 불쾌함을 느끼는 여성으로, 남편이 성관계를 시도하는 순간 혐오감을 느끼고 남편을 쫓아버린다. 남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아멜리아에게 성관계는 강제적으로 여성을 강요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아멜리아는 이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신 아멜리아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키가 아멜리아의 허리 밖에 오지 않고,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때문에 아멜리아가 성관계에 대핸 부담이 없이 일방적인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꼽추" 라이먼이다. 하지만 아이 같은 라이먼은 음산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마빈 메이시의 악마적인 매력에 이끌려 아멜리아를 배신한다.

<결혼식의 멤버>(The Member of the Wedding)에 나오는 백인 여성 프랭키도 엄청난 거구의 소유자로 자신의 몸을 혐오하여 자신의 키를 줄이기 위해 발에 칼을 들이댄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도 나이를 알 수 없이 어린 아이 상태로 머물러 버린 인물로 이는 역시 그와의 성관계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프랭키는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 때 범한 너무 많은 실수들을 자신이 직접 수정하는 상상을 하는데, 그의 새로운 세상은 성(性)을 개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곳이며 자신이 완벽하게 소속될 수 있는 클럽이 존재하는 곳이다.

<황금 빛 눈에 비친 그림자>(Reflection in a Golden Eye)에 등장하는 군인 팬더톤은 양성애자이면서 신체적으로는 성불구자다. 그는 아내를 혐오하지만 아내의 아름다움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효과적으로 감춰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내와의 관계를 지속시킨다. 대신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착적으로 매력을 느낀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The Heart is a Lonely Hunter)에 등장하는 벙어리 존 싱어는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친구 안토나풀로스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나누어 주다가 친구가 죽자 외로움을 느끼고 자살을 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존 싱어 주위의 사람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존 싱어만이 자신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믿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존 싱어의 모습을 재창조한다. 하지만 이들이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존 싱어는 벙어리이므로 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욕망이며 자신들의 고립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일인 것이다.

사회에서 배제된 ‘괴물’들의 운명과 여성

매컬러스가 작품에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기형인간들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고딕 작가들 가운데 왜 여성작가들이 많은가’ 와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기형 인간(고딕 작가에게 있어서는 괴물)들은 관습적인 사회의 바깥, 즉 합리적 질서의 외부에 존재하는데 가장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들의 조각을 이어 붙여 창조해 낸 괴물처럼 이들은 말할 수 있어도 "벙어리"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회에 융합되고 싶은 욕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들의 유일한 표현 도구는 육체인데 이들의 육체는 공포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형 인간들이 분열증을 피해 자신의 육체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무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즉 고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모든 몸짓이 악마적으로만 해석되는 기형인간들의 고독한 운명은 사회에서 배제된 타자들의 운명, 혹은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고 대상으로만 간주되는 '괴물'인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과 동일하다. 이들의 욕구는 언제나 미끄러져버린다.

매컬러스는 고통에 자신에 시달리는 이 육체적인/정신적인 기형인간들에게 일어나는 음산하고 알 수 없는 기괴함을 묘사할 때 태연자약하게 아이러니와 유머를 결합시키는데 이는 이들의 비극을 더욱 잔인하게 비틀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여성의 몸’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

작가인 매컬러스는 자신이 창조한 고딕적 인물들처럼 소외되었거나, ‘고딕-아이스 퀸’(고딕 음악에서 창백한 표정을 한 여성 보컬들에게 자주 붙이는 별명)의 음산한 매력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아쉽게도(!) 매컬러스는 지나칠 정도로 화목한 남부의 중산층 가정에서 가족들의 사랑과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성장했다. 매컬러스 자신도 가족에 대해 평생 자랑스러워했으며 성공한 작가로서 수많은 친구들 속에서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육체적 한계와 고통들은 상당수 매컬러스 자신이 경험한 것이거나,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매컬러스가 그리는 여성들을 대부분 성관계, 진짜 성인이 되어 여성의 몸을 갖는다는 것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매컬러스 자신이 육체적인 관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매컬러스는 친구들에게 자주 자신이 성관계를 맺기에는 몸이 너무 약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성애를 포함하여 그녀의 수많은 연애관계는 대부분 육체적인 관계없이 진척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평생을 다양한 질병과 수술의 반복 속에서 살았던 매컬러스의 신체적 약점 때문이기도 하며 1970년대 이전의, 성의 해방을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욕구에 맞게 다루는 방법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창조자다운 힘을 지닌 작가

또한 자주 동성애에 대한 묘사가 나오거나 집착적인 남편이 나오는 것도 실제의 삶에서 끌어온 것이다. 매컬러스는 20살에 군인이었던 리브스 매컬러스와 결혼했다. 하지만 리브스 매컬러스는 카슨 매컬러스처럼 작가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단 한번도 글을 완성 짓지 못했던, 필연적으로 절망 속에 살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카슨 매컬러스가 23세에 첫 소설로 성공적인 등단을 한 후 지속적으로 평단과 대중 양쪽의 갈채를 받는 소설들을 써 낸 것은 리브스 매컬러스에게는 엄청난 우울증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리브스의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도벽, 자살에 대한 협박 등에 지친 카슨 매컬러스는 결혼 4년 만에 이혼을 하지만 또 다시 4년이 지난 후 재혼을 한다. 두 번째 결혼에서도 같은 문제에 시달리던 카슨 매컬러스가 이혼을 준비하는 동안 리브스는 해외에서 진짜로 자살을 하는데 매컬러스는 남편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한편 매컬러스 부부의 공인된 외도가 똑같이 동성애였던 것도 흥미롭다. 매컬러스가 첫 만남에 완전히 반해버린 안네마리 클락 슈바르젠바하는 전형적인 ‘레즈비언-뮤즈’ 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반해서 소설 <올랜도>를 헌정했던 비타 색빌 웨스트처럼 잘 생겼다. 매컬러스도 안네마리에게 자신의 책을 헌정했다. 이런 공통점을 고려할 때는 꽤 섭섭한 일이지만 매컬러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는 아무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컬러스는 안네마리를 만나고 온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따귀를 맞았다고 한다. 물론 리브스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매컬러스는 남편의 따귀를 때리지는 않는다.

소아마비, 폐렴, 뇌출혈로 인한 뇌수술, 신체 마비, 일시적인 시력 상실, 의식불명, 가슴 절제.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컬러스는 나이가 들게 됨에 따라 자신이 창조한 기형인간들, 혹은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처럼 조각 조각난 신체를 보유하게 된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해갔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그녀의 전기작가 중에는 매컬러스가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고, ‘단 한번밖에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았다!’(?)며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평생토록 어긋난 의사소통 관계, 필연적인 인간들의 고립, 사랑의 비극성에 대해 소설을 쓴 작가이면서도 자신의 삶까지 완전한 비극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스스로 막아내는, 진정한 창조자다운 힘을 지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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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바 2005/02/27 [00:47] 수정 | 삭제
  • 연속 3개의 기사를 다 읽었는데. 넘 재밌고 흥미롭네요.
    문학과 영화, 음악까지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 '고딕'을 다룬 점도 흥미롭구요.
    고딕을 전혀 모르지만, 이 기사들을 보니 더 많이 알고 싶네요.
  • 소영 2005/01/26 [17:00] 수정 | 삭제
  • 매컬러스 자서전은 원서로만 있는 것 같습니다.
  • 2005/01/26 [01:16] 수정 | 삭제
  • 오호....

    근데 카슨 매컬러스 자서전을 구해서 볼 수 있나요?
  • 눈사람 2005/01/19 [22:58] 수정 | 삭제
  • 매력적이네요.
  • stella 2005/01/19 [02:25] 수정 | 삭제
  • 정말 유익한 기사였습니다! 감사. :)

    이 작가의 책이 국내에 번역본으로 나온게 있나요?
    아니면 비슷한 분위기의 여성작가가 쓴(남성작가도 괜찮지만;)
    고딕소설들을 추천좀 해주세요.

    이쪽에 관심은 많은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런지 찾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앤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밖에는 읽어본게 없군요.
  • ilda 2005/01/18 [23:01] 수정 | 삭제
  • 의견 참조하겠습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에서는 정확한 장애명칭이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명명으로 바꾸거나 옮겨 쓰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당 용어가 당시의 사회적 시선(차별적이고 왜곡된)과 작품의 내용을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성매매 여성을 해당 작품에 대한 평을 쓸 때는 "창녀"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비슷한 경우입니다. 이 기사에서 각 용어들에 대해 따옴표" "를 사용했어야 맞다고 판단하며, 그렇게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j 2005/01/18 [20:57] 수정 | 삭제
  • 난쟁이, 벙어리, 꼽추...

    다른 말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굳이 왜 저런 말로 쓰셨는지..
  • 소영 2005/01/18 [14:07] 수정 | 삭제
  • 이런 기사 반갑네요. 우리에게 잘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인데, 페미니즘 쪽에서 발굴해서 다시 읽기를 하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면 붐을 타고 몇 편 유명한 작품들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 기사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