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을 통해 유출된 이후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속칭 ‘연예인 X파일’(광고모델 DB 구축을 위한 사외 전문가 Depth Interview) 사건을 바라보며, 사회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네들의 세계는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 며칠간은 연예인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됐습니다. 언론과 광고기획사, 그리고 대중이 연예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무척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연예인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해있는 듯 합니다. ‘기획’부터 문제였다 혹자들은 이 사건을 두고 광고기획사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는 얘길 하기도 합니다. 억대의 광고비용을 들이는데 위험을 줄이는 차원에서 연예인의 사생활 정보를 캘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죠. 또 혹자들은 이번 사건을 ‘유출’의 문제로 바라봅니다. 회사 내부 파일이 외부에 새나가지 않게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밖으로 유출된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광고기획사의 잘못인지, 리서치회사의 잘못인지, 인터뷰에 응한 기자들의 잘못인지, 혹은 문건을 유출한 사람의 잘못인지, 인터넷에 유포한 네티즌들의 잘못인지에 대해서죠. 아, 이미지 관리를 제대로 못한 연예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고,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성격을 문제 삼는 네티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법적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건 당사자인 연예인들에겐 여론이 어떤가가 가장 중요하고 무서운 것일 텐데, 연예기획사나 연기자노조 등의 행보는 이익집단 정도로 읽힐 수 있고 그 자체로 여론을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몇몇 연예인들을 제외하곤 당사자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형편일 테죠. 긁어 부스럼일 테니까요. ‘연예인 X파일’은 “유출됐기 때문에 문제”가 아닙니다. 이 파일이 기획된 것에서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연예인은 ‘이미지’를 팔아 장사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사생활’을 담보로 잡혀도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연기자는 연기에 대해, 광고모델은 모델로서의 역할에 대해 언론과 대중에게 평가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자신의 성격과 취향에 대해서까지 인신공격을 당하고 모욕을 겪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광고기획사가 광고모델을 평가하기 위한 자료와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연예담당 기자들을 통해 연예인들에 대한 각종 루머를 모으고, 성격을 분석하고 재단하며, 사생활을 추적해 들어가는 것이라면 응당 문제가 있습니다. ‘연예인 X파일’의 작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광고회사로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인권(프라이버시권) 의식이 낮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광고기획사는 사건에 대응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연예인 X파일’은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됐고, 그로 인해 확산됐습니다. 각 매체들은 대중들이 이 파일의 내용을 ‘진짜’라고 믿는다는 설문결과를 발표했고, 그로 인해 ‘연예인 X파일’의 내용은 신뢰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 파일의 제작자인 광고기획사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고 나서야 사과문을 발표하고, “파일 내용이 대부분 풍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해당 기업이 이렇게 늑장대응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지금 해당 광고기획사 측은 파일작성에 도움을 준 언론인이 속해있는 언론사를 찾아 다니며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해당 파일에 대한 신뢰성 여부를 조사하는 설문에 대해 “모기업 계열사가 제작한 것이니 믿을만한 정보일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사실 모기업 계열사답다는 얘기는 이 부분에서 던져야 할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색저널리즘과 관음증, 그리고 가학성 ‘연예인 X파일’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바로 ‘전문가’라는 칭호입니다. 광고기획사가 광고모델을 선정하기 위해 필요로 한 ‘전문가’는 대부분 스포츠 신문의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문적’인 정보들은 다름아닌 연예인들에 대한 루머와 뒷담화입니다. 연예인들의 연기력이나 이미지 선호도, 발전가능성에 대한 평가도 전혀 공정하지 않고 허술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욕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신공격적인 내용들입니다. 특히 외모에 대한 모욕적인 평가들, ‘불여우네’, ‘가식이네’, ‘멍청하네’. ‘결벽증이네’, ‘엄청 밝히네’, ‘맛이 갔네’ 등등의 악담(연예인이 아니라도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런 식의 잣대를 들이댔을 때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을 연예인에 대한 정보랍시고 주고받는 사람들이 광고기획과 관련된 ‘전문가’라는 점. 이 부분에 대해 짚고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연예인 X파일’은 그 동안 많이 보아왔던 ‘~카더라’ 통신의 연장입니다. 보고 싶지 않아도 가판대며,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눈에 띄고 있는 그 유명한 ‘A양, B군’ 스캔들이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100여건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고 보면 되겠죠. 이번 파일작성에 도움을 준 기자들이 ‘전문가’가 된 것은 그들이 연예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연예인에 대한 루머를 보도하고 이리저리 요리하며 확장, 재생산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황색저널리즘의 문제점과 언론의 횡포에 대해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계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연예담당 기자들도 다른 언론인들 못지 않은 대우를 받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해당 언론인들의 자긍심과 책임감도 커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A양’과 ‘B군’을 좋아하는 언론인과 언론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팔아먹는 장사치’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의 배경으로 대중의 ‘관음증’이 깔려있습니다. 대중들이 연예인에게 바라는 ‘이미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어찌 보면 사람을 초월한 ‘무엇’입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의 욕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것들, 특히 ‘흠집’을 잡고 싶어하며,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몰라도 그만인) 연예인의 사생활이 술자리의 안주거리이자 직장인의 점심메뉴입니다. 나아가 ‘연예인 X파일’ 사건에서 연예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여론을 지켜보며, 대중문화가 ‘관음증’을 넘어 ‘가학성’을 띠고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연예인 X파일’의 내용을 작성한 사람들이나, 이를 토대로 작성자와 비슷한 논조로 루머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성차별적 편견과 동성애 비하적인 시선은 기본이고 남을 깎아 내리고 비아냥거리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중의 ‘광음증’과 ‘가학성’이 황색저널리즘을 키우는 힘이란 것을 생각했을 때 우리 각자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과 ‘가학성’이 비단 연예인들을 대상으로만 표출되고 끝나는 문제일까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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