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세계

비정함과 슬픔이 배어있는 ‘자연’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2/07 [16:18]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세계

비정함과 슬픔이 배어있는 ‘자연’

김윤은미 | 입력 : 2005/02/07 [16:18]
황량한 우주와 디스토피아(가공의 이상향,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적 미래가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 이 만화에서 우주를 가로지르는 열차 모티브는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에서 따온 것이다.

생명과 자연이 자아내는 투명한 서정성

미야자와 겐지는 생전에는 인정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원작 <은하철도의 밤>은 SF적인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인상적인 세계를 펼친다. 가난하고 외로운 소년 조반니와 친구 캄파넬라는 밤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하늘거리는 용담꽃, 수정 같은 모래, 인광처럼 빛나는 은하의 물, 타오르는 전갈의 붉은 불이 둘러싼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이별, 죽음과 같은 인간이 홀로 감당해야 할 숙명적인 상황들과 조우한다.

투명한 아름다움과 숙명적인 슬픔의 절묘한 융합. 이것이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가 갖추고 있는 미학적 세계다. 겐지의 서정적인 자연의 세계는 세밀한 묘사와 환상적이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설정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세계는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 역시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도깨비와 같은 익숙한 동화적인 존재도 겐지의 동화에서는 낯설게 다가온다. 겐지의 자연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서 볼 수 있는, 생명 그 자체의 흐름이 인간을 압도하고 포용하는 ‘비인간적인’ 자연에 가깝다.

사실 생명의 흐름이 느껴지는 자연은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거리감이 커서 자칫하면 ‘한가로운 전원생활’이라는 안락한 신화가 되기 쉽다. 그러나 겐지의 자연은 신비롭긴 하되 그 신비함 속에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고 동물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현실의 비정함과 슬픔이 깊게 배어있어 안락한 신화의 단계를 밟지 않는다.

겐지는 학창시절 농학을 전공하고 이후 농학교사, 농촌문예활동가로 일하면서 동화를 썼다. 이를 고려해 볼 때 그가 세밀한 관찰력에 근거하여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밭 가장자리>는 개구리의 눈으로 본 자연풍경을 그린다. 개구리의 눈에 비친 옥수수는 파르스름한 머리털과 70개의 이빨을 가진 유령 같은 존재이며 인간은 머리 위에 16개의 손이 달린 존재다.

전래동화적인 느낌이 강한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인간들은 찹쌀떡을 매개로 늑대와 산도깨비, 숲, 산과 차례차례 관계를 맺는다. 이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위계질서는 깨지고 자연 풍경과 인간의 삶에서 우러나는 서정적인 감성은 하나가 되어 흐른다.

부조리한 먹이사슬의 법칙에 접근

그렇다면 이 서정적인 겐지의 세계가 주목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겐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화나 잔인한 일화를 같은 비중으로 간결하게 다루면서 단숨에 핵심에 접근하다. 그 핵심에는 먹이 사슬의 법칙이 있다. 함께 관계를 맺는 이상 서로 정들기 마련인 생명의 속성 상 먹이사슬은 참으로 골치 아픈, 부조리한 문제다. 생태주의에서 한 생명이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것은 꽤 까다로운 논제에 속한다(미야자와 겐지는 채식주의자였다).

게다가 인간 사회는 먹이 사슬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해서 자연을 착취해왔다. 동물들에게 총을 쏘면서 쾌감을 느끼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의 폭력적인 인간들은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이들이 혼나는 과정에서는 지극히 겐지다운 섬뜩한 유머가 발휘된다. 이들은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 밥을 먹으러 가서 별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다가 어느새 자신들이 동물들의 먹이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겐지는 이 문제를 감정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먹이 사슬의 법칙 속에서 생명은 본질적으로 슬프다. 애정과 사랑, 행복에 대한 추구 역시 그 감정을 가지기도 어렵지만 언젠가는 상대의 상실로 인해 사라질 것이기에 슬프다. 겐지는 인간적인 동물 혹은 자연에 가까운 인간 주인공을 통해 이 문제를 지독하게 고민한다.

<기러기 동자>의 기러기 동자, <쏙독새의 별>의 쏙독새와 같은 캐릭터는 먹이사슬의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다. 이들은 외부 세계에서 오거나 못생긴 외모를 가지는 등 처음부터 세계에서 소외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에 슬픔의 감정에 더욱 예민하다.

물고기를 먹으면서 아픔을 느끼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 어머니의 손을 보면서 슬퍼하는 기러기 동자는 세계의 슬픔을 모두 다 짊어진, 그래서 일찍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살기 위해서는 투구벌레를 먹어야 하고, 또 스스로가 매에게 잡아 먹혀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쏙독새는 결국 하늘로 날아올라 생명을 바치고 별이 된다. 별은 아름답지만, 먹이 사슬에 분노하고 별이 되기 위해 몇 번이고 지독스럽게 날아올랐던 쏙독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묘한 페이소스(pathos: 정서적 호소력을 지님)를 남긴다.

구전동화의 해피엔딩과는 다른 결말

자연을 대하는 이 낯설고 강렬한 급진적인 태도는 미야자와 겐지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겐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불교적 사상에 친숙했다. 그의 동화는 불교 특유의 생명 존중 사상과 자연에 대한 그의 관심이 결합된 산물이다. 그런데 그가 쓴 수많은 동화들은 일반적인 구전동화들의 행복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고 낯설어서 때문에 당대에는 인정 받지 못했다.

그는 농업학교를 퇴직한 이후 농촌에서 스스로 농사를 짓고 농민들에게 농사법을 지도하는 한편 악단이나 극단을 만들어서 농촌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실천들은 경찰 당국의 주의를 끌었으며 결국 겐지가 늑막염으로 발병하게 되면서 중단된다.

자신의 동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당대 사회의 문제를 겐지는 나름대로 자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인간사를 동물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처리한다. <흥쥐>, <쳇쥐>의 쥐 주인공들은 어딘가 꼭 있을 법한 말썽꾸러기 인간 캐릭터를 풍자적으로 구현한다. 흥쥐는 ‘쥐 경쟁 신문’을 보면서 똑똑한 척하다가 쥐 세계에서 내쫓기며, 쳇쥐는 힘없음을 빌미로 친구들을 괴롭히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어서 미움을 사 결국에는 천적인 쥐덫과 친구가 되어 쥐덫에 갇히고 만다.

이들 캐릭터는 꼴 보기 싫으면서도 미워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이들을 둘러싼 쥐 사회 또한 당대의 풍경을 효과적으로 조응한다. 또한 이 인간적인 쥐들이 어이없이 잡아 먹히는 잔인한 결말은 겐지가 생각하는 인간사의 비정한 부조리함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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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2/12 [00:29] 수정 | 삭제
  • 그거 유명한 동화잖아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인 줄 몰랐네요.
    일본의 전래동화로 알고 있었거든요.
    처음엔 읽고 너무 놀랐어요. 무서워서..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고,
    먹이사슬 속에 놓여있다는 걸 알려주는 내용이었다고 보는데..
    참 특이한 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 모로 2005/02/09 [02:36] 수정 | 삭제
  • 지난 번에 좋은 동화들 소개한 기사도 잘 봤어요.
    사회과학 책이나 소설류도 좋은 것들만 소개해주시는 것 같아서 많이 봅니다.
    아 참. 만화책도요..
  • 시안 2005/02/08 [17:33] 수정 | 삭제
  •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싶어요.
    미야자와 겐지 유명한 작가인데 한 번도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네요.
    일본작가라서 그런가.. 함 보고 싶네요.
  • kyung 2005/02/07 [23:48] 수정 | 삭제
  • 만화영화의 매니아였기 때문에 미야자와 겐지를 알게 됐다.
    원작은 만화영화와 상당히 다르지만 또 다른 매력에 빠져서 겐지의 다른 동화들도 읽게됐는데, 은하철도의 밤이 제일 좋았다.
    미완의 작품이라서 번역도 하다가 만 부분도 있었는데 그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