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Must be pretty”
‘예쁜 백인여성’, 외국어 학원 채용공고
서민자 | 입력 : 2005/03/21 [22:05]
<필자 서민자님은 한국여성민우회 상근자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 상담실로 한 여성이 전화를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그 여성은 인터넷에서 00외국어 학원의 외국인 강사채용공고를 보고 매우 불쾌했다는 얘기를 하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상담을 했다. 채용의 기준은 ‘예쁜 백인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우회는 사이트에서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학원장에게 메일을 보내, 위의 채용공고는 직무수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용모를 채용기준으로 하는 성차별적 채용공고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하고 있으니 즉시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날 밤 학원장은 답변을 보내왔다. 첫 마디는 ‘너희 같은 여성단체가 언제부터 외국인의 평등권까지 신경을 썼느냐’는 항의성 어조였지만, ‘법 위반이기도 하고, 모집공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정하겠다’고 했다.
다수 사람들이 이주 여성노동자는 ‘여성노동자’가 아니고, 내국인과 다른 어떤 존재에 불과하며 어떤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명시적으로 남녀를 차별하거나 여성의 용모를 채용기준으로 제시하는 공고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채용공고는 용모자격을 구구절절 적나라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주 여성노동자는 ‘눈요기’로 취급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주 여성노동자가 반발을 하더라도 그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저런 공고를 낼 수 있었으리라.
무엇보다 이러한 채용공고의 내용은 여성의 일에 대한 한국사회의 통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어강사의 성별은 여성이어야 하는데, 그 여성에게 필요한 유일한 자격요건은 예쁜 용모와 체격이다. 거기에 ‘백인’이라는 요건이 덧붙여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의 기준을 반영한다. ‘왜 예쁜 여성강사만을 필요로 하는지’ 의구심이 생길 법하다. 그런데 뒤이어 ‘예쁜 여성강사가 성인 수강생들에게 섹시한 말을 해줄 줄 알면 충분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이없는 대목이다. 강사로 일할 여성노동자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성인 수강생들에게 섹시한 말을 하는 예쁜 여자여야 하는 것이다.
모집 채용 시 여성들이 겪게 되는 차별은 여성이 ‘사무실의 꽃이면 충분하다’는 차별적인 인식과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그러한 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지속되고 있다. 노동시장은 기혼보다는 미혼여성을, 되도록이면 졸업한지 얼마 안 된 어린 여성을 채용하려고 한다. 여성의 자아실현은커녕,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제시하고 비전을 찾고자 하는 어떠한 욕구도 없이 잠시 일터에서 예쁜 인형으로 존재하기를 이 사회는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회적 신화로 존재하는 것이리라.
영어학원의 성차별적인 채용공고는 어떤 이주 여성노동자가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차별적인 인식과 여성의 노동에 대한 편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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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2005/04/04 [16:12] 수정 | 삭제
- heain 2005/03/27 [16:02] 수정 | 삭제
- matchbox 2005/03/26 [07:29]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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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 2005/03/23 [01:16] 수정 | 삭제
- 파파야 2005/03/22 [12:48] 수정 | 삭제
- joyce 2005/03/22 [00:49] 수정 | 삭제
- 바람 2005/03/21 [23:14]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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