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 이후 새삼 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우울증의 실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정도가 진전된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이은주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많은 논의들이 증명한다. 노출연기, 소속사와의 마찰부터 시작해서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김정일 지령설'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우울증 그 자체가 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 우울증은 병이 진전될 경우 충분히 자살에 이르게 만들 만큼 무서운 병이다.
<보이는 어둠>의 지은이이자 소설가 윌리엄 스타이런은, 우울증을 불치병에 비유한다. 회복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윌리엄 스타이런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으며 한동안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어렵사리 회복된 그는 <보이는 어둠>에 우울증의 초기 증세와 병세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느꼈던 괴로운 경험,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과 관련된 책들이 그 특성상 병의 증세를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구체적인 심리상태와 환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불편함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면, 이 책은 그 같은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지은이는 우울증이 쉽사리 표현 가능한 것이었다면 그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동정심과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 기초해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우울증은, 익사 혹은 질식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고 고백한다. 초기에는 일상에 대한 막연한 낯섦을 경험했던 그는 점차 지나치게 민감한 상태 속에서 상식 밖의 괴상한 행동을 저지르는 한편 육체적인 통증 또한 겪게 됐다. 끔찍한 불안이 발작적으로 엄습하는 가운데, 그는 비로소 자신의 고통이 허탈감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심각한 병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광기의 날개가 펄럭이는 것을 느꼈다." 불면증과 그로 인한 피곤, 목소리의 변모, 성욕과 식욕의 둔화와 같은 우울증에 수반되는 증세를 겪으면서 그는 자신이 다양하게 바뀌는 고통을 기록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게다가 우울증은 불치병처럼 손쉬운 치유책이 없는 병이니 만큼 계속되는 고통을 견뎌야 할 목적을 가지기란 어렵다. 중증의 우울증 상태가 되면서 그는 일상 자체를 포기하려는 충동에 시달리고, 천천히 죽음을 준비한다. 이 모든 행위는 연극적인 것인데, 제 2의 자아가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제 2의 자아는 일종의 유령 같은 관찰자로서, 그가 다가오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무너지고 마는가를 관찰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우울증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을 성격파탄이나 나약한 자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987년 프리모 레비가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극악한 나치의 수중에서도 견뎌낸 사람이 나약하게도 자기를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울증에 시달렸던 지은이는 화가 나서 <뉴욕 타임즈>에 격심한 우울증의 고통은 앓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따라서 우울증의 본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있어야만 우울증으로 인한 무수한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독자란에 기고했다. 말기 암 희생자들을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을 수 없었던 비극적인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계속되는 자살 충동 속에서 지은이는 갑작스레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스스로 입원을 결심한다. 그는 적정한 약물치료와 입원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적정한' 정도가 환자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우울증에서 회복된 후 그는 우울증의 원인을 알아보지만 엄청나게 많은 가설들을 확인하고, 오히려 이 수많은 가설들이 우울증의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찾자면, 자신의 경우 상실에 대한 '불충분한 애도'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경우 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전과 열세 살 때 겪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불충분한 애도'가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신병에 대한 금기가 심한 한국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으며, 동시에 치료를 요하는 질환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은 분명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지은이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의 끈질기고 헌신적인 격려가 필요할 것이라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모독이지만, 반복해서 그런 격려를 보여주면 위험에 빠진 사람은 대부분 구출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끈질긴 격려를 보내기 위해서는 우울증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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