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과 관련해 여러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경기 연천군 모 사단 전방부대의 총기사건은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군의 기강이 무너졌다’고들 개탄합니다. 자유분방한 신세대 군인들이 보수적인 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니, 군에 기강을 확립하는 방안을 만들라고 촉구하기도 합니다.
군의 문제와 ‘기강’은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관계로 보입니다. 육군훈련소에서 병사들에게 인분을 먹였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맞는 게 두렵다"며 한 사병이 휴가 나왔다 군에 복귀하지 않고 자살한 사건에 대해서도,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들 합니다. 군내 성폭력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우리 군은 이를 ‘성적 군기문란’이라고 규정하면서 군의 기강을 다잡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우려는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국민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인지 “배가 고파서” 월남을 했다고 말한 북한병사 한 명이 두만강 대신 비무장지대의 철책을 뚫었을 때, 우리 사회는 전쟁이라도 나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일련의 사건들이 군의 기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군의 기강이 해이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군기를 잡으려는 문화가 이 같은 사태들을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군의 기강을 중시하는 가운데 병사들 개개인의 상황과 처지는 무시되고, 군기를 잡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야기해왔으며, 군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피해가 발생해도 문제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끝간 데까지 가고야 마는 비극을 낳아왔다고 말입니다. 또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해나가려 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군의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는 쪽으로 대책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심각한 군의 인권침해 문제를 되풀이해서 발생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분명하게 이야기해서, 인권문제를 ‘인권’이라 칭하지 않고 ‘기강’의 문제로 접근했을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가 몇 해 전 군 장성급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들이 신세대 병사들에 대해 했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대화의 요지는 요즘 애들이 돌출행동을 많이 해서 난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갔다가 지뢰가 터져 다리 한 쪽을 잃어버린 사병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고, 그 부모도 자기 자식이 잘못했다고 사죄를 했다며 “골 때리는 애들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위가 웃음바다가 되었지요. 그 때 제가 의아하게 생각한 건 그 ‘웃음’이었습니다. 얼마 전 버스 안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군 시절 겪었던 황당한 사연이 소개되는 것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상사의 온갖 엽기적인 행각들을 다 겪어내고,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사연을 아주 재미있다는 듯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성진행자는 한 수 더 떠서 여성진행자에게 “원래 군대란 곳이 그런 곳이거든요” 하면서 능청을 떨었습니다. 아무리 아픈 경험도 지나고 나면 그 통증은 아물고 추억으로만 덮이게 되는 것일까요. 유독 군에서 겪은 가혹한 행위들은 사람들에게 때로 자랑처럼 내세워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군에 다녀와야 ‘인간’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사회 곳곳에 군 문화와 비슷한 유형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징병제가 안고 있는 폭발직전의 문제들을 위태롭게 가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총기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도, 막상 군이 안고 있는 문제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질라치면 ‘군기’를 내세우며 “군대는 노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로 더 이상 생각이 진척되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이런 분위기 역시 강력한 군사주의 문화의 소산일 것입니다. 신세대 병사들이 군에 적응을 못해 큰일이라며 군의 기강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들 속에서, 자살이나 타살과 같은 인간의 생명과 직접 관련된 문제를 목도하면서도 ‘철없는 젊은이들이 진짜 힘든 일을 겪어봐야 하는데…’ 식의 발언이 난무합니다. 자신의 엄했던 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요즘은 많이 나아졌는데 그것도 못 견딜 정도로 허약하냐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권침해는 겪어보아야 할 일이 아니라, 겪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특정 조직의 기강을 잡기 위해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저항해서 찾아야 하는 권리입니다. ‘안보’라는 것도 국민 개개인을 안전하게 하는 것,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 조직이 안보의 이름으로 사회에서 성역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면 이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군에 입대해 무기사용법을 배워 그 무기로 함께 생활하던 부대원들을 사살한 김모 일병의 행동을 보며, 사람과 무기가 가까이 있을 때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평화운동가들은 ‘무기와 병력을 통한 안보는 오히려 폭력과 전쟁을 낳아왔으며, 이젠 세계가 무기를 버리는 안보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군대가 있는 곳에 평화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대가 있다는 논리를 반박해왔습니다. 군의 인권문제를 ‘기강잡기’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도 명약관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군에서 고질병적으로 되풀이 되어 왔던 사건, 사고들이 군 내부 정책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징병제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일이란 점을 성찰해야만 합니다. 쌓이고 쌓여 온 군 내부의 희생과 병폐, 군에 몸 담지 않아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인권침해 위협에 대해 더 이상 눈감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한 발 나아가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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