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녹색 삶’ 일구는 공동체

L.A 에코빌리지의 실험

전홍기혜 | 기사입력 2005/07/11 [22:21]

도심 속 ‘녹색 삶’ 일구는 공동체

L.A 에코빌리지의 실험

전홍기혜 | 입력 : 2005/07/11 [22:21]
<필자 전홍기혜님은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L.A 한복판인 버몬트 가(avenue) 인근 비미니 플레이스에는 도심 속 생태마을 '에코빌리지'(eco-village, www.ic.org)가 있다. 13년 넘게 지역의 비영리단체에서 일해 온 로이스 아킨(Lois Arkin, 여성, 68)씨는 1992년 L.A ‘4.29 폭동’으로 폐허가 된 이 곳에 환경친화적 공동체인 에코빌리지를 만들었다. 아킨씨와 에코빌리지 주민들은 대다수 현대인의 삶의 터전인 도시를 바꾸기 위한 의미 있는 실험을 하며 살고 있다.

L.A 폭동 일어났던 폐허에 생태공동체 만들어

“처음 에코빌리지를 만들려고 했을 때는 다른 생태공동체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좀 떨어진 농촌에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92년 여기에서 시민폭동이 일어났다. 이 근방은 당시 화재로 피해가 컸는데, 이것을 보면서 ‘우선권을 어디에 둘 것인가’ 생각하게 됐다.

여기서 시작해 우리 이웃들을 먼저 바꾸자, 다시 이 지역을 복원시키자고 의견을 모으게 됐다. 그 전에 이 지역은 마약, 갱, 성매매 등 문제로 뒤덮인 곳이었다. 이웃간에도 서로 모르고 믿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주민들이 안전함을 느끼게 하자. 이게 첫 과제였다. 그래서 우리가 맨 처음 한 일이 낮에 건물 문을 열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중요했다. 비영리단체 자원활동가들이 와서 이웃주민들을 만나는 작업을 시작하고, 길거리 파티를 주선하고, 아이들에겐 거리에 과실수를 심게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이웃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킨씨가 얘기한 ‘주민들이 변화’는 에코빌리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에코빌리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 길거리에서 만난 이웃들은 모두 반갑게 아킨씨에게 인사했기 때문이다. 아킨씨가 이웃집과 가게에 불쑥불쑥 들어가 안부를 묻는데도 누구 하나 얼굴 찌푸리지 않고 반갑게 맞이했다.

“내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도시형 에코빌리지의 큰 장점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누구나 지금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스스로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교외로 나가 생태공동체를 꾸릴 경우 경제적 뒷받침을 위한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땅도 사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한다. 물론 소비를 줄이긴 하겠지만, 돈을 벌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이게 쉬운 문제는 아니고,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까진 소수다. 경제적 지속성과 유지를 위해 도시형 에코빌리지를 선택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생태적 삶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있으니까 자신이 사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하면 된다.”

L.A 에코빌리지 주민들은 아파트 2개 동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1996년 40채 규모 아파트를 50만불(한화 5억 원 가량)을 주고 샀고, 1999년 옆에 있는 8채 규모 아파트를 샀다. 당시에는 시민폭동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집값이 비교적 쌌다. 아킨씨는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아파트 구입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혼자 쓰기에 딱 알맞은 규모의 방엔 개인 부엌이 딸렸다. 방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인류학을 전공한 아킨씨의 방은 책으로 가득 차, 마치 작은 도서관같다. 40채 규모의 아파트 옆에 있는 작은 아파트는 한 채가 3~4인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에코빌리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부근 임대료의 약 1/3 수준의 돈만 내고 살고 있다.

에코빌리지 아파트에 거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늘 넘치기 때문에 실제 입주하기 위해선 상당 기간 기다려야 하고, 또 공동체 성원이 될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인정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 곳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에코빌리지 회의와 각종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는 등 열의를 보인다.

생활을 단순화시키는 심플리빙 운동도

도시형 생태공동체기 때문에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직업을 갖고 있다. 교사, 컴퓨터 기술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맡아 하고 있다. 화학을 전공한 라라 모리슨(Lara Morrison, 54)씨는 에코빌리지 안에 있는 채소밭에 콩, 감자, 호박, 브로커리 등 40여종의 채소를 키운다. 컴퓨터 컨설턴트이자 가수인 브래드 마워즈(Brad Mowers, 51)씨는 직접 베틀로 옷감을 짠다.

때문에 이들의 삶은 평범한 도시인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근본적인 차이일 것이다. 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최대한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는 삶을 지향한다. 이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은 자급자족을 지향하며, 폐수나 쓰레기는 순환해서 사용하고 있다. 강제는 아니지만 에코빌리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동차 증가 숫자가 인구 증가보다 6배 많다”고 아킨씨는 지적한다. 아킨씨는 10여 년째 차 없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생활을 단순화시키는 ‘심플리빙’(www.simpleliving.net) 운동도 벌인다.

에코빌리지에 사는 사람들은 일요일 저녁마다 공동식사를 한다. 각자 음식을 마련해 오는 일종의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의 형태로 진행되는 공동식사는 주변 이웃들에게도 열려 있다. 같이 사는 이웃들이 먹을 것을 나누면서 더 나은 에코빌리지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다.

이 곳에 사는 이들이 목표는 작은 변화와 충격으로 이웃들을 변화시켜 에코빌리지를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다. 아킨씨가 돌아다니며 반갑게 인사하는 이웃들은 모두 에코빌리지의 이상과 가치에 동감하고 있는 동조자라 할 수 있다.

에코빌리지 아파트 옆에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재활센터가 있는데, 아킨씨는 이들을 “훌륭한 이웃”이라고 말한다. 사실 에코빌리지가 들어서기 전 동네사람들은 여느 다른 동네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안전 문제나 부동산가 하락 등을 이유로 동네에 재활센터가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었다. 에코빌리지는 사람들의 이런 생각들을 바꾸어 놓았다. 아킨씨는 “지금 이 작은 곳에서 하고 있는 시도가 결국엔 전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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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m 2005/07/20 [01:03] 수정 | 삭제
  • 외국에선 특히 그래요..
    나이도 중년이 넘어가는 사람들 중에 참 지혜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여유가 있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죠..
    나도 나이 들어갈수록 그런 지혜를 배워서 잘 살다 생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여기 나온 분들도 그런 분들인 것 같네요.
  • 마늘 2005/07/13 [11:33] 수정 | 삭제
  • 가족을 뛰어넘는 관계들로 서로 지지해줄 수 있고 서로 돕고 부지런하게, 조금은 가난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 crazy 2005/07/12 [14:39] 수정 | 삭제
  • 그런 생각 드네요.
  • 수경 2005/07/12 [10:22] 수정 | 삭제
  • 녹색 공동체에 대한 기사들 좋아요. ^^
    미래의 소박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