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이장애(食餌障碍)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며 온통 체중과 먹을 것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 대인공포증이 있어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나 또한 식이장애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2년 동안 체중이 15킬로그램이나 불었다. 원인은 먹는 것에 비해 움직이지 않아서지만, 왜 그런 방식으로 지냈는지를 생각해보면, 하는 일에 대해 의욕과 전망이 없어지면서 웬만하면 집에서 머물면서 먹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원래 통통한 편이었는데 15킬로그램이 더해지니 누가 봐도 뚱뚱하다고 할만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이른바 ‘뚱뚱한 여성의 삶’이 시작됐다. 원하는 스타일이나 브랜드의 옷을 살 수 없게 됐고, 음식점이나 옷 가게, 대중교통 시설 등. 어딜 가나 무시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말이다. “왜 그렇게 살이 쪘어?” “지금 몇 킬로그램이니?”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걱정스럽게…. 알고 지내던 사람들 대부분이 다양한 말투로 내 몸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았다. “무슨 힘든 일 있냐”고 묻는 이도 없이, 왜 그렇게 살이 쪘냐는 질문만 했다. 그런 말들을 반복해 듣는 동안 내 몸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됐고 누구도 만나기 싫었다. 그리고 나서 세상을 둘러보니 온통 살을 빼라는 메시지로 넘쳐났다.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살 빼는 방법들, 체중 감량 성공기, 잡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이어트 상품들, 광고에 나오는 일정 체중이상 넘으면 입을 수 없는 옷들, 심지어 버스 앞 좌석 등받이에조차 다이어트 광고가 붙어 있었다. 실제 해보지는 않았지만 잡지에 나온 상품들을 비교도 해보고 TV 프로그램의 살 빼는 방법을 남들 몰래 보기도 했다. 살은 내 인생에서 제일 큰 문제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도(?) 그 후 내겐 체중문제만 골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다른 문제들이 생겼다. 그것을 해결하는 동안 체중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 지금은 내가 다시 열정을 가지고 해야 일이 생기면서,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심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서 대인관계가 이전처럼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것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고비와 난관을 겪게 마련인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주위에선 외모에 대한 평가가 무성한 것이다. 이때 여성들은 자신의 문제를 바깥으로 보이고 평가 받는 것, 즉 외모 탓이라고 생각하고 다이어트나 성형수술에 매달리기 너무나 쉽다. 그러나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체중 조절 후 다시 체중이 늘어날까 늘 초조해하며 자신이 먹는 것을 스스로 감시하기도 하고 성형수술 중독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또 체중을 줄였더라도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다이어트 폭격에 대응해 자기 배려,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교류, 사회 참여 등으로 맞선다면 좀 다르게 사는 방법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을까. 그렇게 인생을 바꾸니 살이 좀 빠졌냐고? 실망스럽게도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운동도 시작했고 많이 걷고 있으니 건강해질 것이고, 언젠가는 내게 맞는 체중을 찾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인생이 점점 충만하게 채워지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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