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아이들을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십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자율권 존중보다는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이는 부모 말에 따르는 게 미덕이다. 지난 5월 한 신문은 가정의 달 특집 기사에서 요즘 아이들의 문제로 “어른들의 말씀에 ‘왜요?’라고 반문하는” 것을 꼽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들은 유독 바쁘다.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완성된 미래를 보장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뱃속에 담고 있을 때부터 좋은 대학, 유명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부업을 하고, 조기유학을 보내려고 기러기 아빠/엄마가 되는 것쯤 보통 일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 ‘캥거루족’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자식들을 일컫는 말이다. 노동연구원은 지난해 10월 30~40대에도 여전히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가정이 67%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가족간 경제적인 지원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것들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는 분명 문제가 있다. 자식에 대한 경제적, 정서적 희생은 한편으로 부모에게 ‘소유’ 개념을 부채질한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라며, 자식이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품 안의 자식’이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품 안의 자식’들은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 <엄마는 미친 짓이다>의 저자 주디스 워너는 저서에서 “애 둘을 낳고서도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저녁을 먹으러 외출하면서, 남편과 둘이서 휴가를 다녀오면서도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프랑스 육아문화를 전하고 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육아는 아이가 성년이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의 한시적인 일이며, 부모는 인생의 인도자가 아니라 경험의 조력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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