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풀뿌리 지역운동 현황과, 여성들의 지역정치 참여활동을 되돌아보고, 현재 지역 현안엔 어떤 것이 있으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성의 의정참여와 지역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지역정치의 전망을 그려보고자 한다. 필자 이오순님은 부안에 살고 있으며 부안지역 소비자모임과 의정참여단에 참여하고 있고, 2005 부안영화제의 조직위원으로 일했다. 비닐쓰레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땅은 숨쉬고 싶다'를 제작했으며, 이 영화는 이번 부안영화제에서 주민공모작 부문에 상영됐다.-편집자주>
그 동안 우리는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이 지역에선 졸부들이 정치를 장악했고 그 정치력에 의해 평범한 생활인들은 막대한 피해자가 됐다. 모두 잃어버리고 뒤통수를 맞고서야 지역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핵폐기장 유치, 지역민들 아직도 상처 깊어 부안은 핵 폐기장 유치 건으로 된통 당하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반핵 싸움을 하며 당한 고통이라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를 통해 큰 교훈을 얻은 셈이라서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이라고 허허 웃는다. 실제로 부안사람들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당했다. 시위 도중에 다친 상처로 인해 병원을 전전하며 제대로 일상생활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도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마음의 상처가 가장 크다. “5년 동안 사탕 들고 논두렁 밭두렁 댕김서 사정혀서 찍어줬덩만, 고것이 핵사탕 아녔나벼?" 부안 사람들이 김종규 군수를 두고 말하는 우스개 소리다. 뽑아놓고 보니까 군민을 위한 군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90%가 넘는 부안군민들의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기가 막혔다. 반핵싸움이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노 대통령은 ‘물 반 고기 반(부안군민 반, 전경 반)’의 공포정국을 조성하고, 김종규 군수한테 전화 걸어 “용기 내라”며 격려까지 했다. 공약 믿고 여기 저기 연락해서 대통령 만들어 놨더니, 국민 앞에 공약한 환경 현안들(천성산 고속철도 터널공사나 해양수산부장관 때 반대했으나 대통령이 되고 번복한 새만금 사업 등)을 번복하고 오히려 기존보다 더 후퇴시켜 놨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억장이 무너졌다. 군민들이 바라던 바는 일부 건설업자나 재벌들처럼 이권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벼슬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다만 군민들이 편안한 맘으로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얘기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나눌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욕심이 과했을까? 왜, 그 자리에만 올라가면 자기 꼴리는 대로 군민이나 국민들을 짓밟으려고 하는지 도무지 분해서 살 수가 없다. 여성들 반핵 싸움에 나서다 그제서야 이런 물음을 가졌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뽑아야 군민 편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습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자치학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여자고 남자고 성당에 모여 공부를 했다. 전문가를 모셔오고 현직에 있는 여성정치인도 불러와서 속을 털어놓고 토론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지방자치를 공부했고 정치인들의 속성들을 파헤쳐 보았다. 부안은 반핵 싸움에서 많은 걸 잃었지만 소득도 얻었다.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우리 여성들이었다. 부안의 여성들은 자식들에게 아름답고 안전한 땅을 물려 주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앞장서서 싸웠다. 여성이 강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좋은 예였다. 수 천 년을 아녀자로 남자들의 보조자로 살아온 이 땅의 여성들이 반핵싸움을 하면서 그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렸다. 매사에 남자들보다 한발 먼저 나가서 정부와 억척스레 대항했고, 우리 자식들과 우리 지역을 지키기에 혼신을 다했다. 그런데 살펴보면, 부안 토박이인 나는 철든 이후에 부안에선 아직껏 국회의원, 군수, 군 의원, 조합장 등 선출직에서 단 한 명의 여성후보도 보지 못했다. 남성보다 결코 못나고 못 배워서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은 남성들의 보조자로 살아오면서 가치를 무시당해 왔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동네 일에서도 여자가 나서면, 버릇없고 건방진 사람으로 취급했다. 우리 여자들끼리도 여자들의 지혜와 정치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해온 것도 사실이다. 나부터 정치 같은 것은 다른 사람이 해 주길 바라고, 이왕이면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남성” 이 해 주길 원했던 것 같다. 어느 샌가 우리 몸과 마음 깊숙이 밴 이런 슬픈 현실이 너무나 속상했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당장 준비해야 된다. 생활정치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생활 속에서 우리가 느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실천하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여성들이 그 동안 쌓아온 경력이 얼마인가?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정치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 중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훈련시켜서 지역살림꾼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맡겨놨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한마디로 엉망진창 아닌가? 여성들의 무대가 된 부안영화제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러보면 우리는 작으나마 모임들을 갖고 있다. 소비자모임, 환경모임, 독서모임, 산악회, 농민회, 의정참여단, 기타 등등. 소비자모임 두리반에서는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비닐봉지 한 장 줄이기 위해 우선 빈 그릇과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면서 장을 보기로 했다. 관제언론들의 왜곡보도에 맞서 용감하게 카메라를 잡은 부안영상팀 “줌마”들도 있었다. 2005 부안 환경영화제에서도 조직위원 대부분 여성이었고, 조직위원장과 사무국장까지 여성으로 짜여서 그야말로 여성들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부안여성들이 직접 만든 작품이 4편이나 상영됐다. 두리반 활동을 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공부한 결과 올해 부안영화제에 출품해 상영하게 되는 성과를 남긴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도움을 준 남성들도 많았다. 또 2.14주민투표 성공의 튼튼한 뿌리가 된 “아줌마 홍보단”들이 이후 군 살림을 감시하는 “의정 참여단”으로 변신해 활발한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건전한 모임들이 연합체를 이뤄서 교육하고, 힘을 다져간다면 여성들이라고 못할 리 없을 것이다. 목소리 모을 ‘조직’ 반드시 필요해 지난 여름, 부안군청에서는 다시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운 변산해수욕장 입장료 할인행사를 했다. “비키니 입은 여성은 모든 입장료 10% 할인.” 그 좋은 이름 변산해수욕장을 수영복 이름으로 바꾸더니 결국에는 이런 황당한 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여성들의 벗은 몸을 상품으로 내놓았던 군수에 대해 사람들은 “이런 발상을 한 것만 봐도 군수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여성운동 모임 등 어떤 조직도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성명서나 항의서 한번 전달하지 못하고 우리들의 생각을 표현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참 안타까웠다. “이럴 때 조직을 갖고 있었다면” 이라는 아쉬움은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 계기가 됐다. 부안 군민들은 모두 반핵투쟁 과정 속에서 귀중한 자산 하나를 얻었다. 군수와 군 의원을 잘 뽑아야겠다는 결심이다. 옛날처럼 “누가 되면 어쩌냐?”라는 식의 무관심은 사라졌다. 무엇보다 정치에 관심이 높아졌으며 여성들의 가치를 무조건 과소평가하는 부분도 훨씬 개선됐다. 이제 이런 분위기에 힘 입어 여성들의 활발한 정치활동을 위해 많은 여성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머지않아 부안군수에 우리가 원하는 여성후보가 당당히 당선되는 야무진 꿈도 꾸어본다. 또한 남성들이 여성들의 보조자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도 역시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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