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특수한 문화와 사회적 병폐에 대한 분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군사주의’입니다. 우리는 성별화된 강제징집제도가 시행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도 군대 가라(혹은 ‘가자’)는 이슈가 물 위로 떠오르면서 ‘여성’과 ‘군대’가 간만에 묶여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기존의 군대도 여성들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강제징집에 따른 군대 내 인권침해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 전체 사회를 뒤덮고 있는 군사주의 문화와 우상화 된 ‘국가안보론’, 사회적 평등과 복지를 위해 쓰여져야 할 예산의 막대한 부분이 흘러 들어가는 국방비,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더욱 강고해지는 성별화의 문제, 기형적인 성 산업과의 연관성 등 군에서 파생된 문제는 전체 사회구성원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그대로 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국민을 강제로 군인으로 만드는 제도가 21세기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군에 대해 논할 땐 그 ‘무서움’을 기저에 깔고 이야기해야지, 복합적인 문제들의 일부분만을 건드리며 단순화시켜서 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더욱이 정치인이나 정책입안자가 그렇게 하는 모양새는 ‘생색내기’나 ‘여론장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성역을 허무는 최근의 변화들 우리 군은 창설 이후 사실상 성역으로 존재해왔지만, 최근 변화의 물결을 감지케 하는 흐름들이 있었습니다. 의문사와 자살, 성폭력과 같은 인권문제에 군 외부로부터의 개입이 시도되었고, ‘육군 부대 총기 난사 사건’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이후 국방개혁 움직임과 연결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육군은 시범적으로 몇 개 대대에 출퇴근 복무를 실시하겠다고 하고, 위계가 엄격한 군 사회에서 군번을 앞세운 폭력이 난무하기 때문에 입대 동기들만의 소대를 시험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비군 복무 기간을 줄이거나 없애자는 주장도 전체 군 병력 축소와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저 ‘남자만 겪어서 억울하다’ 차원이 아닌, 군대의 위계질서와 강제징집 돼 겪었던 폭력에 대한 ‘피해자’로서의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전과 다른 모습입니다. 지난 8월, 예비역 군인들이 군부독재 청산과 국방개혁, 남북화해 등에 기여하겠다며 기존 재향군인회에 대한 대안으로 ‘평화재향군인회’를 출범시켰는데,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와 국방에 관련한 사안들이 이제 더는 쉬쉬할 성역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흐름들입니다. 여기에, 군에 ‘여성참여’를 늘리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언론이 고의적으로 개념을 모호하게 사용해서 그렇지, 공식적으로 국방부와 군을 비롯한 정계에서 ‘여성의 의무병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강제징집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 군 복무 참여를 늘리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국방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의도가 어떻든 그냥 무시되어 버릴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사회적인 조건이나 성별에 의한 공사영역 구분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해소되었는가와 관련해 언젠가는 떠오를만한 문제였다고 봅니다. 왜 ‘남성’만 징집 대상이 되느냐의 문제 제기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답하지 않았지만, 특정 성별의 사람만이 징집되는 것이 평등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성별의 사람만이 ‘수입이 없는 노동’을 책임지고 있는 현실이 평등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또한 군 복무와 가사노동, 보살핌 노동 등이 비등하게 견주어질 만한 사안도 아니며, 그렇게 해서 ‘샘-샘’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군을 남성집단의 영역으로, 남성집단만의 이해관계 속에 남겨둘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봉착하게 되는 난제는 우리 군이 ‘성별화’의 문제뿐 아니라, 강제징집제도가 파생시키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강제징집이 필연적으로 인권침해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군사주의 문화의 확산에 저항해야 하는 시점에서, ‘국민의 40% 이상이 징집되는 사회에서 국민의 80% 이상이 징집되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여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다할 기회를 주자며 현역이 아닌 사회봉사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사회봉사란 말 그대로 사회봉사의 영역과 관점에서 고민되어야지 징병제의 일환으로 더 확장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국방의무를 공평하게 진답시고 남성 다수는 현역으로, 여성 다수는 사회봉사 영역에서 활용하겠다는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국방의무를 함께 한다고 하면서도, 다시금 생물학적 성차를 들이대 남녀 서열로 이어질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국가가 여성을 징집해야만 하겠다면,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군사주의 문화에 더 많이 찌들어 있고 이미 사회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여성인만큼, 오히려 역할을 바꾸어 보는 것이 이 사회엔 더 나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군축을 통한 ‘안보’를 원칙으로 삼자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결해야 하고, 무엇을 지향하며, 이에 도달하기 위해 현실적으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복잡하고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아직까지 별로 깊이 이야기된 바가 없다는 사실부터 짚어야겠습니다. 그것은 여성의 군 참여에 대한 사회적인 담론이 전체 군 시스템이나 안보론, 여성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있는 군대식 서열화와 위계질서 등과 별개로 ‘선정적’인 여론몰이로 단순화시켜 이야기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그리고 현실 가능한 방법과 단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먼저 고민되어야 할 것은 ‘군축’을 통한 국방개혁이며, 국가가 국민을 강제로 군인으로 만드는 강제징집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사회적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성역화 되고 우상화 된 징병제도에서 허상을 버리고, 실질적인 안보를 고민하고 지식을 쌓아 제시해야 합니다. 군 인권의 문제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제대로 된 국방력을 갖기 위해선 강제 징집을 통한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해야 한다는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도 묵살한 채, 정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만 강변하고 있으니 모를 노릇입니다. 또 ‘군가산제’처럼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마친 예비군의 ‘피해의식’을 고려해, 예비군 중에서도 일부를 위해 군 복무가 의무적으로 부과되지 않은 사람들의 노동권을 희생하게 하는 방식의 제도를 다시 도입하겠다는 움직임도 황당합니다. 사람들에게 억지로 노동을 시키는 현장에서의 집중력과 일의 효율성은 같은 일이라도 자신이 선택한 노동을 하는 경우와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사회화 과정 속에서 체득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군에 끌려가 ‘삽질’만 하다가 나오는데, 애국심과 신세대 군가로 이들을 위로하며 사기를 진작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기만입니다. 과연 징병제가 분단 상황 속에서 국민들을 지켜주었을까요. 오히려 강제징집제로 인해 생명과 개인의 안전을 빼앗긴 사람들의 수와 그 피해를 가늠해보면 일종의 전쟁을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군사주의가 가져온 폐해들을 왜 ‘비용’으로, ‘안보’의 수치로 계산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경제사학자인 모 교수가 일제 시대를 연구하며 인명피해와 인권침해를 계산에 넣지 않은 채, 일본의 지배가 근대적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북핵회담 성과, 모병제 논의할 때 노무현 정부는 정치개혁 못지 않게 국방개혁도 이루고야 말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국방개혁에는 필시 ‘군축’을 통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는 것이 포함돼있습니다. ‘군축’은 무기를 감축하는 것뿐 아니라, 군 인력을 감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숨 죽이게 만들었던 북핵 위기 이후 진행된 6자 회담이 그 결과의 구체성에선 2% 부족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단초라고 할 만큼 극적으로 타결됐습니다. 회담의 성과에 대해 경제적 효과를 언급하는 이들도 많지만, 지금이야 말로 현실 가능한 모병제로의 전환 방안이 제기되어야 할 때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의 원칙에 합의하는 마당에, 군 인력과 무기감축을 통한 국방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적절한 시기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이제 더 많은 군인들의 머리 수와, 더 많은 무기를 가져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케케묵은 국가안보론은 고리적 이야기로 돌리고, 군축과 대화와 평화협상을 통한 안보를 기조로 하는 새로운 틀 거리를 짜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이 짐 져야 할 역할과 의무, 그리고 관련 논의를 진행시키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여성들의 참여가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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