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대신 돌 깨는 아이들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의 현실

김요한 | 기사입력 2005/09/27 [00:47]

수업대신 돌 깨는 아이들

네팔 어린이노동자들의 현실

김요한 | 입력 : 2005/09/27 [00:47]

<필자 김요한님은 ‘외국인노동자피난처’ 활동가로 활동했고, 현재는 한반도 인권.민주화.통일 화해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네팔 내 어린이 노동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이번 9월 6일부터 14일까지 네팔을 방문했습니다. -편집자 주>



어린이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약 10년 전 한 어린이노동해방운동가의 죽음을 통해서다. 1995년. 한국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한 후 보상 받지 못한 채 귀향한 이주노동자들을 찾아 정부에 보상신청 절차를 밟게 하기 위해, 네팔 이곳 저곳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라디오를 통해 네팔처럼 가난한 이웃나라인 파키스탄에서 어린이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살해당한 어린이노동운동가 이크발 마시

이크발 마시는 당시 12살 어린 소년이었다. 이크발은 어린 나이에 카펫공장에 끌려가 노예노동과 흡사한 노동을 했다. 많은 아시아 나라에서 작은 손이 필요한 일들에 어린이들이 동원돼 축구공이나 카펫 등을 만들고 있다. 공장 안에 몇 시간째 감금된 채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린이노동자들의 노예노동은 뉴스나 사진을 통해 국제사회에 보고됐다.

이크발 마시가 만드는 카펫 또한 서구 강대국들과 아시아 개발도상국들 같은 물질소비 수준이 높은 국민들에게 수출된다. 12살이 된 이크발은 노예노동에서 해방된 뒤 어린이노동해방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그는 길거리에서 사살당했다. 당시 이 어린 노동운동가를 죽인 사람들은 아마도 어린이노동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있던 업주가 아니었을까 추정됐다.

유니세프는 전세계적으로 2억1천1백만 명의 5~15세 어린이노동자들이 있다고 발표했다. 어린이노동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아프리카로, 전체 5~14세 어린이 중 41%가 노동을 하고 있다. 아시아는 21%, 카리브해 지역은 17%다. 그러나 아시아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전체 어린이노동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ILO는 네팔에만 5~14세 어린이 중 41.7%인 2백6십만 명이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중 36%은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고 종일 노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 중 12만7천명은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고, 5만 7천명은 부모의 빚 등에 의해 강제 노동하는 아이들이다.

이들이 일하는 장소는 평균 14시간 이상 노동하는 섬유수공업 카펫트 공장부터, 광산, 차 플랜테이션(하루 26Kg을 수확해야 1달러를 받을 수 있다) 등 짐꾼, 돌 찧기, 건설현장, 벽돌공장, 가정부, 상점, 노점, 그리고 성 산업까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심지어 이웃나라인 인도로 이주노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인도의 어린이들이 네팔에 오기도 한다.

가난한 나라의 이주노동은 국가에서 국가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 국가 내부의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해 부유한 국가의 국민들이 소비할 물품들을 생산하거나 국내 부유층을 위해 노동한다. 이 노동의 사슬 가장 밑바닥에 가난한 어린 노동자들이 있다.

하루 노동으로 연명하는 어린이들

네팔에서 먼저 다란 지역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건설자재로 쓸 돌을 채취하는 일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만났다. 현재 네팔은 현 국왕과 이 체제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인 마오주의자들과의 내전이 확대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암울하고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란의 어린이들은 오늘의 양식을 해결해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6살 사르비나가 일하고 살아가는 곳은 물도 흐르지 않는 강 옆의 얼기설기 엮어진 움막이다. 빗방울조차 막아줄 수 없을 것 같은 그 집에서 사르비나는 언니 네트라와 부모와 함께 산다. 집안에 돼지들도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8년 전에 사고로 다리를 쓸 수 없게 됐고, 어머니는 돌을 찧는 일을 하다가 파편 때문에 시각장애가 생겼다. 14살인 네트라 또한 5살 때부터 노동을 시작했고, 올해 겨우 초등학교 2학년에 입학했다.

자매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강가로 가서 돌을 운반한다. 작은 머리에 바구니를 묶고 강가에서 돌을 담아 비척비척 맨발로 일터까지 왔다 갔다 하기를 말없이 반복한다. 이들이 태어나서 배운 것이 있다면 “죽도록 일하지 않으면 굶는다”는 것이다.

“우리 애가 학교 가지 않았으면…”

인드라 버르데와(45세, 여)는 사르비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성으로 역시 같은 일을 한다. 인드라에겐 6살 딸과 8살 아들이 있는데 전 가족 4명이 한달 꼬박 돌을 깨 벌어들이는 돈은 2천2백 루피(한화 3만원 정도)다. 트랙터로 하나 가득 돌을 찧어 넣으면 1천1백루피(1만 5천원)를 벌 수 있다.

현재 인드라의 아들과 딸은 국제노동기구가 시행하는 ‘어린이노동자 학교 보내기’ 1년 프로그램 대상자다. 이 기간이 끝나는 내년에도 학교에 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인드라는 “아이들은 우리들 노동의 절반을 한다. 그들이 강가에서 돌을 날라 오고 앉아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공부시키고는 싶지만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이 더 걱정되는 것이다.

다란 지역뿐 아니라 네팔의 전 지역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도 카트만두의 다딩 계곡 5km 안의 거리만도 2천여 명의 돌 찧는 노동자들이 있다. 다딩 지역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장인 사누카지 알리씨는 “그 중 5백 명이 어린이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이들이 “더러운 주거환경과 위험한 노동환경 때문에 각종 질병에 노출”되는 것을 우려했다.

네팔의 어린 노동자들은 부모와 사회가 강요하는 노동 때문에 어린 시절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권리인 교육권, 건강권, 위생권, 복지권을 잃어버렸다. 어린이 노동력이 싸고, 다루기 쉽고,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그리고 이들 어린이들에게, 1923년에 제정된 아동의 권리선언의 5개 조항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네팔정부는 1992년 아동인권에 대한 헌장에 기초해 노동 현장에서 14세 이하 어린이 노동과 고용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른 3세계의 나라들처럼 빈곤이 악순환 되는 네팔에선 어린이 고용금지법은 단지 정치외교의 장에서 1세계의 눈치를 보거나 혹은 국내적으로 정치적 전시효과를 노린 문서일 뿐이다.

3세계 국가들 입장에선 어린이라도 고용해 이윤을 남기는 사업장을 눈감아주지 않으면 국가경제에 타격이 크고, 또 어린이들 역시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면 일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부강한 나라들이 값싼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여 그 잉여분을 수탈하는 것처럼, 가난한 나라의 고용주와 국가는 국내의 가장 값싼 노동인 어린이 노동이 가져다 주는 이점을 활용해 부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땀이 밴 상품을 소비하는 한국인

1세계나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어린이 노동에 대해 가난한 나라들의 무지한 정책과 정치적 혼란과 독재, 시민사회의 척박한 환경, 뿌리 깊은 가난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어린이 노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보다 부유한 국가 국민들의 소비욕구와 욕심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꼭대기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 에너지의 80%를 20%의 사람들이 쓰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가난한 나라는 점점 가난해지고 부유한 나라는 점점 많은 것을 소비한다. 한국이 몇 년 후면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여덟 번째 나라가 된다는 사실의 기저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더욱 착취당한다’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 안에서 부유한 국가의 국민은 가난한 국가의 어린이들이 만들어 놓은 상품을 값싸게 소비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누리고 있다. 노예노동과 다를 바 없는 노동환경 속에 일하는 어린이들의 비참한 생존의 책임에서 과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네팔의 일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국민은행 438901-01-300620 (예금주: 바보들꽃)
*희망의 언덕 사업을 하는 단체 바보들꽃: http://book.foolwildflower.or.kr/index.php/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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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위에서다 2005/09/29 [10:16] 수정 | 삭제
  • 눈을 감고 있어서 그렇지 아프리카와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서 일만 하고 권리는 누리지 못한 채 스러진다.
    그 책임이 우리에게까지 건너오게 되는 게 세계화 시대인데, 다들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지내다 뿐이지 실제로는.
    눈을 돌릴 곳도 없다.
  • 비자림 2005/09/27 [16:35] 수정 | 삭제
  • 몇푼돈에 동동거리고 늘 사고픈 물건에 애달아하는
    네 모습과 겹쳐진다....
  • maru 2005/09/27 [15:08] 수정 | 삭제
  • 반세계화 운동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가난과 착취의 연결고리에 대해 관심 갖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매기 2005/09/27 [13:23] 수정 | 삭제
  • 성장이 중지된다고 하던데 걱정이네요.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에선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계산하죠.
    부모조차도...
    학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 너무 마음 아프네요.
  • 구르미 2005/09/27 [01:36] 수정 | 삭제
  •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새 가해자에 속하게 되는 현실.
    끔찍한 현실을 눈 감아선 안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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