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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악순환 끊어내는 힘은 ‘교육’
네팔 어린이노동자 학교보내기 운동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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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먼주 타파(여, 30세)씨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한국에서였는데, 19살이었고 의정부 한 의복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 손가락 3개를 절단 당하는 사고로 인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해고당한 상태였다.

이주노동자 실태 고발한 최초의 13인

먼주 타파씨처럼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보상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13명이 1994년 1월 9일부터 2월 7일까지 경실련 강당에서 ‘13명의 양심의 행진’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을 상담했던 외국인노동자피난처와 함께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국내 노동법을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하는 최초의 행동이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던 상황에서, 그들이 일하는 열악한 상황과 노예적인 노동환경,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실태를 고발하고 나선 사람들의 중심에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먼주 타파, 햄 나라얀 쉬레스타, 히라 소바 등. 그들은 한국의 공장 한 켠에서 두들겨 맞고, 손이 잘리고, 강간당했다.

당시 13인의 행동에 의해 국내외 여론이 형성되고 비난이 밀려오자 정부는 “산업재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귀향한 노동자들이 현지 국가에서 보상을 신청할 경우 보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귀향한 노동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알리길 꺼려했다. 한국 대사관들이 한 일은 현지 신문의 작은 귀퉁이에 잘 보이지도 않은 광고 몇 줄을 쓴 게 고작이다.

네팔에서도 계속되는 ‘이주노동운동’

외국인노동자피난처는 귀국한 산재노동자들을 직접 찾아 한국정부에 보상신청을 하도록 하는 절차를 도왔다. 그리고 현지의 노동조합들이 이주노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네팔의 최대의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GEFONT가 나섰고, 노동조합 내에 이주노동자센터를 따로 두어 사무실 한 켠을 빌려 쓸 수 있게 됐다.

세계적으로 1년에 1억 이상 인구가 모국을 떠나는데, 이중 6천3백만 정도가 경제적 이유에서 이주한다고 한다. 직접 이주노동을 하는 사람은 약 3천만 명 정도로 이중 30~40%가 아시아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이다. 네팔 젊은이들은 말레이시아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싱가폴로, 부루나이로, 홍콩으로, 인도로, 멀리는 유럽과 중동까지 국가를 가리지 않으며, 영국 용병으로 가는 것부터 가사노동자까지 무슨 일이든 하러 떠난다. 이주노동자 한 명이 부양하는 가족을 평균 5인(대가족제도, 농경사회)으로 감안하면, 인구의 절반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 생계를 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팔 노동조합 내 이주노동자센터가 만들어졌을 때 처음 이 일을 담당한 사람은 암릿뜨 구릉씨로, 그 또한 한국에서 일하다 오른팔을 절단 당한 산재노동자였고 현재 호주로 이주노동을 떠난 상태다. 이후 담당자는 바로 한국에서 ‘13명의 양심의 행진’을 벌였던 먼주 타파씨였다. 그는 1994년 한국에서의 끔찍했던 노동경험과 잘려진 손을 가지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보고 오열하는 어머니 앞에서 흘릴 눈물조차 남지 않았다고 했다.

먼주 타파씨는 네팔로 돌아온 후 해외로 이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다 지금은 해외로도 옮겨갈 형편이 안 돼 국내에서 이주노동을 하는 어린이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억압적인 어린이 노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네팔의 어린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부터 얻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이주노동자센터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고,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장으로도 일했던 샤말 타파씨가 맡았다.

어린이노동자가 교육 받을 수 있다면

아시아는 생산과 소비, 노동이 거대한 경제시스템 속에 움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먼주 타파씨가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정머리 없는 남의 나라로 가서 노동자로서의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억압적인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주 타파씨는 KOPILA(‘피지 않은 꽃봉우리’라는 뜻, kopila.org)를 결성, 네팔의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함께 월급의 5%를 떼내 어린이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NGO인 ‘한반도 인권.민주화.통일.화해센터’와 연대해 몇 명의 어린이노동자와, 한국에서 산재 당해 사망한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학교보내기 운동인 ‘희망의 언덕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 ‘희망의언덕’ 프로젝트 대상자는 한국에서 노동하다 갑자기 사망한 수닐 마하르쟌(1993년 사망, 당시 23세)과 아내 사누 마하르쟌(1993년 당시 20세)의 딸 수니레 마하르쟌(14세)이고, 또 다른 대상자는 한국에서 자살한 이주노동자 락스미 칸타 수베디의 두 아들이다. 다른 두 명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노동하는 어린이들이다.

현재 5명의 아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에 다니고 있고, KOPILA는 “어린이노동자 학교 보내기 운동을 더욱 확산시켜 점차 그 대상자 수를 넓혀갈 계획”이다. 네팔에서 1명의 어린이노동자를 학교에 보내는 데에는 한 달에 우리 돈으로 약 2만원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네팔의 일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국민은행 438901-01-300620 (예금주: 바보들꽃)
*희망의 언덕 사업을 하는 단체 바보들꽃: http://book.foolwildflower.or.kr/index.php/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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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27 [00:54]  최종편집: ⓒ 일다
 
maru 05/09/27 [15:20] 수정 삭제  
 
모국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 참 좋은 일 같아요. 먼저 갔다온 사람들이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노동운동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잘 되었던 한국에서는 왜 그런 활동이 없었을까 싶네요. 우리도 과거 이주노동의 경험이 많은데 말이죠.
폴리 05/09/27 [17:12] 수정 삭제  
  교육은 인간이 권리를 찾기 위한 첫번째라고 생각해요.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
길위에서다 05/09/29 [10:10] 수정 삭제  
  베트남노동자들도 베트남에 돌아가 이주노동운동 단체를 만든다면 좋겠다.
특히 한국으로 결혼해서 오는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해주면 좋겠다.
toto 05/09/29 [21:18] 수정 삭제  
  우리가 이들에게 진 빚부터 갚는다는 의미에서 동참하고 싶군요.
가객 06/07/15 [11:19] 수정 삭제  
  상담을 하다가도, 이런 기사를 보다가도 문득문득 떠올립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첫걸음은 '교육'이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기는 분들을 뵙자면 든든한 기분도 들고 죄송한 맘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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